짧은 토론
대치동 학원가의 뒷골목을 걷던 중 어느 학생들의 무리들이 상가의 뒤편을 따라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다음에 가야 할 학원과 수강과목을 말하며 짐을 챙기는 학생, 아이폰의 타자방식이 다르다고 어떤 친구를 타박하는 학생도 있고, 전자담배를 피고 작은 간식을 먹으며 그들끼리의 언어로 소통하는 학생들도 있다.
수험생 시절이 오래전 기억이라 그들의 한국말이 이질적으로 들릴 정도로 꽤나 단단한 그들만의 성채를 쌓고 있다. 그리고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대치동 성벽 속에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각자의 진로를 탐색한다.
깊은 밤이 오는 시간, 늦은 밤 대치동 도로는 학부모님들이 끌고 나온 고급차들로 더욱 혼잡하다. 자녀들을 태우고 다른 학원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집으로 가는 길, 도로의 한편을 자리 잡고 가끔씩 갈길 바쁜 사람들과 실랑이를 하며 학원가에서 내뿜는 붉은빛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부득이하게 맞이한 대치동의 밤거리는 치열하게 자신의 미래를 향해 가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한 곳이다.
대치동에서 불과 3~4km 떨어져있는 가락동에 있는 청과물, 수산물 시장은 경매가 한창이다. 회센터에서 뜬 신선한 회를 먹으러 양념집으로 올라가는 길, 저 멀리 보이는 집하장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농 수산물들이 가득하다. 새벽까지 다다르고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시장의 노란 불빛은 더욱 불타오르며 상인들과 전동식 구르마를 더 바삐 움직이게 한다. 대치동이 미래를 본다면 가락동은 현재에 충실하다. 아마도 드론을 띄워 멀리서 밤중의 서울을 쳐다보면 이 동네들은 전국에서도 손꼽히게 타오르는 빛을 내보내는 곳일지도 모른다.
여기는 모두 다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누군가는 쓰라린 아픔을 겪으며 소리 없이 퇴장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원래 경쟁과 설득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왔다. 물질문명의 해갈(解渴)이 이런 치열한 경쟁을 더욱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풍요로움이 앞서 묘사했던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음은 부정할 수 없다.
나 : 우리가 이렇게 편리한 스마트폰 쓴 지도 얼마 안됐고, 투표는커녕 인권이라는 개념도 잘 없었고 옛날에는 맹장만 터져도 별 수도 못쓰고 죽었다고 하는데 과거에 비춰보면 우리는 옛날의 왕들 보다도 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어느 날 주말에 강남의 카페에서 독서토론을 하다가 내 의견을 말할 기회가 있어서 위와 같이 말했더니 참여자들이 알듯 말듯한 표정과 뚱한 표정 그 사이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아마도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설명이 더 필요할 거 같았다. 그 근거를 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듣게 되었고 내 머릿속에 있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서 나의 주장을 보강하였다.
참여자 1: 의견에는 일부 동의하긴 하지만 과거가 그렇다고 해서 현재가 과거보다 반드시 좋다고 할 수만은 없을 거 같아요.
다른 의견을 낸 참여자가 나의 의견에 반박하였다. 듣고 보니 또 그럴듯하다. 인간의 행복감이 의외로 단순하지 않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최고라고 하는데 간혹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도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때 며칠 전에 방문했던 대치동과 가락동을 떠올렸다. 나름 활기찬 기운이 나는 장소라고 생각했지만 그 경쟁 속에 참여하는 어느 누군가는 그 상황과 장소가 끔찍하게 싫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 : 맞습니다. 근데 케이크가 참 맛있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즉시 반격할 것도 없고 열띤 토론을 할 필요도 없다. 낮에는 생업에 매진했으니 밤에는 느긋하게 디카페인 커피와 초콜릿케이크와 함께 편히 앉아있는 게 최고다. 사실 토론회 오기 전에 배가 고파서 오래간만에 삼각김밥을 사 먹었는데 그 맛도 좋더라.
다음 모임에서 의견을 나눌 책을 정하고 토론회는 끝이 났다. 몇몇 회원들은 근방에서 맥주 또는 하이볼을 하러 간다고 하였다. 별달리 생각하고 말한 건 아닌데 몇몇 회원이 나보고 꽤 깊이 있는 의견을 제시해서 인상 깊었다고 하였다. 나무위키에서 본 거라고 답하고 이날은 인사하고 바로 지하철역으로 들어왔다. 지하철을 타니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면서 간다. 각각의 관심사가 다르겠지 생각하고 나도 아까 전에 이야기했던 책을 검색하며 집으로 향한다. 사람들을 보니 휴대폰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바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제 갈길을 잘 찾아간다. 세상은 문제없이 흘러간다. 나의 마음속이 문제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