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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길길 Nov 17. 2024

신용의 부재

아무도 믿지 않는 세상

신규고객 : 안녕하세요 과장님 XX건설 소개로 연락드렸는데요. 자재 견적이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어느 날 내 휴대폰으로 걸려온 한 전화, 본인 거래처의 소개를 받았다며 전화한 그 사람은 여신거래를 요구하며 자신이 속한 회사가 업력도 오래되고 신용도도 좋은 회사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이게 뭘까...   크레탑을 조회해 보니 법인 신용카드 연체에 국세체납까지 있다.

 

나          : 부장님 방금 부장님 회사를 크레탑으로 조회했는데 조금 신용도에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정기 결제는 힘들고 선현금으로 넣으셔야 제품 출하가 가능합니다.

 

신규고객 : 참 경우가 없네요. 그 회사는 거래처 뒷조사나 하시고 면전에서 험담이나 하는 회사예요?

 

나          : ……. 전화 끊습니다.

 

대부분이 이렇다. 여신거래가 불가능에 가까운 거래처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면 십중팔구는 이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다. 신용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될수록 이런 반응은 더 심해지는데 더 굳이 말싸움할 필요가 없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일이 있고서 며칠 지났을까 그 업체는 당좌거래 중지라는 안내가 떴다. 한마디로 부도난 회사인 것이다. 만약에 내가 속한 회사가 객관적으로 신용에 문제가 있는 회사라면 제품이나 용역을 지급하는 회사에 현금을 마련할 테니 할인을 해달라는 식으로 접근했을 텐데 내가 너무 순진하고 바보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 여신거래 : 납품 후 즉시현금 지급이 아닌 일정기간의 신용을 담보로 하여 추후 정산하는 거래

* 크레탑    : 국책기관과 민간기관이 연합하여 만든 국내 기업 신용평가 정보 제공 플랫폼


신용도에 문제없다고 자신했던 회사의 신용평가 자료, 얼마 후 이 회사는 부도처리 되었다


코인사기’ , ‘티메프사태’ , ‘전세사기’ 그리고 한국 주식시장에서의 소액주주 뒤통수치기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불신의 늪은 이미 상당한 위험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사실은 극히 소수라고는 하지만 ‘당한 놈이 XX’ 이라는 식의 피해자를 무능력한 존재로 낙인찍는 몰지각한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한 놈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투로 들리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피해자에 험담을 하는 그들이 만약 피해자의 입장에 선다면 과연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시가총액이 조 단위가 넘어가는 일부 대기업들도 진작에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에 한몫한다. 그들의 사업 동반자라 할 수 있는 주주를 뒤통수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고 수법도 다양하다. 일방적 물적분할, 명분 없는 유상증자 기습발표, 전환사채 남발 등 한국은 합법적으로 주주들에게 쉽게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금융 후진국 중에서도 단연 최악의 후진국이다. 타 금융 선진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도 없고 만약 발생했을 경우 금융당국의 철퇴가 쏟아져야 정상인 사안이지만 한국은 개개인의 재산을 걸고 참여한 주식의 가치를 최고 경영자 및 일부 대주주에 의해 마음대로 가위질하는 것이 익숙하다. 이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인 현상이 개미 투자자들의 국장 탈출 후 미국 주식 시장 진출이다. 국장이 나락을 간다고 아무리 떠들어 대봐야 근본부터 어긋난 한국 주식 시장에 꾸준하게 투자할 사람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저평가된 회사의 가치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손쉽게 먹잇감이 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기를 쳐도 몇 년 살고 나오면 막대한 돈을 만질 수 있으니 해 볼만한 장사

이러한 사회 전반에 걸친 위험 신호는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10여 년 전 행해진 설문조사에서부터 이미 나온 지 오래이다. 아직 사회생활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학생들이 이러한 인식이 생기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사람들이 청년으로 자라나서 맞닿뜨린 실제상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세대, 성별, 계층 갈등 그리고 인구 감소까지 우리 사회에서 병폐로 자리 잡은 사회적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면 서로에 대한 신용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 상대방을 서로 믿지 못하는 전반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그것이 갈등과 분열로 자리 잡혔다는 것이 명백하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커서 지금 성인이 되어 있다

 

정직함이 바보가 되는 사회, 그것이 지속된다면 그 바보들을 비웃던 일부 똑똑하신 분들부터 자기들도 모르는 새 천천히 소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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