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길길 Nov 13. 2024

각자도생의 방식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린다

체험단고수 : 안녕하세요 과장님~ 내일모레에 남양주 오리백숙 체험단 가기로 했는데 거리가 좀 멀어서요.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열심히 일하던 오후, 몇 달 전 지방 출장지에서 체험단 동행을 해서 알게 된 친구가 체험단 활동을 더 해보겠냐고 제안을 하였다. 네이버나 티스토리 같은 블로그에 식당이나 화장품 같은 기타 잡화를 리뷰하면 원고료를 받거나 제품을 협찬받는데 이 친구는 이 방면으로 상당히 커리어를 많이 쌓아왔다. 처음 만날 때 회사 명함을 얼떨결에 줬는데 그걸 보고 연락을 할 때마다 항상 ‘과장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내 입장에서는  먹기 힘든 고급음식을 공짜로 먹게 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바로 승낙하고 약속시간과 픽업할 장소를 정했다.

 

그날 약속장소에서 그녀를 픽업한 뒤 열심히 식당으로 가는 도중 그녀는 업무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포스팅과 관련해서 비용과 기타 조건에 대해 거래처와 열심히 협상을 하고 있었다. 얼핏 들어보니 포스팅 단가가 생각보다 꽤 높았다. 그녀는 운영하는 블로그와 인스타가 일일 방문객이 수천 명이 될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소위 ‘인플루언서’이고 협찬의 종류도 다양하다. 식당은 기본이고 의류, 화장품, 생활용품, 전시회, 지자체행사까지 그녀를 찾는 곳도 많고 그녀의 포스팅 자체 만으로도 꾸준히 좋아요를 찍는 팔로워도 많다.

 

일전에 그녀의 수입원 중 극히 일부인 포스팅으로 인한 광고 수익도 잠깐 볼 수 있었는데 과장을 조금 더 보태면 경차 한대 살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영향력은 상당하였다. 그리고 일부 알량한 블로거지들이 보이는 추태나 갑질은 전혀 없이 방문하는 거래처마다 예의 있고 성실하게 포스팅을 작성하기 때문에 업체와 인플루언서를 연결해 주는 에이전트나 방문 업소에서도 상당히 선호하는 귀하신 분이다. 나한테도 내가 영업하는 제품을 주제로 온라인 포스팅 컨설팅을 해줬는데 유의미하게 고객이 문의가 오기도 하고 실제 거래도 성사한 경우가 간혹 발생하여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선생님을 대하듯 깍듯하게 모시고 있다. 이날도 그녀가 앉을 좌석을 세심하게 청소하고 차내에 산뜻한 향의 디퓨저를 설치하여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그분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게끔 신경을 많이 썼다.

 

식당에 도착하고 프런트에 체험단으로 왔다고 밝히자 식당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리고 식당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좌석과 가장 단가가 높은 식사 코스를 제공해 주시는데 나는 아직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솔직히 좀 떨떠름하긴 하다. 돈도 한 푼도 안 내고 이런 VIP 대접을 받다니, 이 식당을 검색을 해보니 예약이 쉽지 않은 식당이었는데 이렇게 다른 세계에 온 거 같은 느낌을 받으며 대접을 받다니 이래서 사람은 일단 뭐든 성공하고 보자는 게 약간이나마 실감이 난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그녀는 아이폰과 갤럭시를 번갈아 돌려가며 사진을 찍는다. 나도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식사 도중 잠깐 대화 시간에 내가 찍은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자 내가 찍은 사진이 만족스럽다고 나중에 카카오톡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이렇게 영향력 있으신 분한테 인정을 받다니 흐뭇한 표정을 숨길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도 보여주고 블로그 유입 점수와 잠재고객 방문 성과도 분석해 준다. 이런저런 코칭도 받고 나서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 그녀는 나에게 말하길 어떤 행사 포스팅 제안 이 왔는데 나한테도 일부 수익을 챙겨줄 테니 서포트가 가능하면 연락 달라고 하였다. 당연히 냉큼 OK 하였다.

 

그녀의 원래 직업은 협찬 포스팅과는 관련이 전혀 없는 일이었는데 본래의 하던 일도 부업의 영향을 받아 좋은 성과로 이어져 아예 그녀의 회사에서 인플루언서 활동을 보장을 해주었다. 실제 그녀가 일하는 회사와 관련된 포스팅을 정기적으로 작성해 주고 자체적으로 인센티브를 받는다고 하였다.

 

살면서 이런 경우가 있다니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봐야 한다. 나도 그녀의 커리어패스를 보면서 머릿속을 이것저것 굴려본다. 솔직히 계산적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녀에게 무엇이 되었든 도움을 주어야겠지만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또 다른 청년은 부동산 경매 스터디에서 알게 된 친구이다. 평소 빌라나 오피스텔 같은 실 거주할 집을 경매로 싸게 사고 싶어서 가입한 부동산 경매 스터디인데 회원 중에 한 친구와 대화가 잘 통하여 이것저것 정보를 공유하던 중 이 친구도 본래의 직업 외에 본인의 위스키 바를 창업해서 일주일 내내 거의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지독한 것은 그 쉬는 날 하루조차도 이렇게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며 본인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그 친구의 혀를 내두를 정도의 악바리 근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 정신력을 리스펙 하는 차원에서 어느 날 시간을 내어 그 친구가 운영 하는 위스키바를 방문하였다.

 

위스키바 사장 : 어서 오세요 형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술로 대접하겠습니다. 결제 안 하셔도 좋으니 아무거나 골라주세요.

 

사장이 이렇게 말했지만 아무렴 엄연히 영업하고 있는 업장인데 공짜로 마실수는 없는 일, 알아서 눈치껏 너무 싼 거 고르면 속보이고 비싼 건 개념 없으니 1만 원 내외로 적당한 선에서 고르고 나중에 딴소리 못하게 가게 포스기를 직접 조작하여 바로 카드 결제해 버렸다. 괜찮다고 만류하던 사장도 알겠다고 한 뒤 내가 지불한 금액 이상의 좋은 안주를 내온다.


이 친구의 사연은 앞서 소개했던 그녀와 달리 정말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동생이 고향에 있는데 어머니도 돌보고 동생도 공부시켜야 해서 학창 시절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일도 해서 서울에서 이렇게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생 시절에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잠도 못 자고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한다. 건강이 염려될 정도라서 충분한 수면시간 정도는 확보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내었다. 그리고 감히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살면서 이 친구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위스키바 사장 : 제가 서울 올라와서 공부도 하고 일도 투잡, 쓰리잡도 뛰고 하는데 이런 거를 좀 못마땅하게 보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저보고 그렇게 해봤자 너는 본래 흑수저라서 앞으로도 별 다를 게 없다고 하대요. 그 이후로 몇몇 친구 하고는 연락을 안 하고 있습니다.

 

나               : 그런 존재들은 친구라고도 할 수도 없고요. 해보려는 용기도 없는 주제에  XX 씨를 질투해서 그런 겁니다.  그런 인연은 정리한 게 잘한 거예요.

 

정주영, 신격호 회장도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시작해서 대기업 집단을 이뤘다고 말하자 사장이 웃으면서 창업 1세대가 활동하던 그때하고 지금은 다르지 않냐고 돼 묻는다. 물론 다르기는 하다. 현대와 롯데가 성장할 때는 한국은 고도압축성장기였지만 지금은 1% 성장도 힘든 정체기에 접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위스키바 사장에게 블로그 포스팅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그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       : 사실 말하자면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 포스팅 같은 건 발에 채일정도로 흔한 것이고 크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알게 된 그 친구는 그 흔한 걸로 본인 회사에도 인정받고 부수입도 엄청나더라고요. 이걸로 당장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남들이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걸 가지고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 것도 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포스팅 같은 것이 이렇게 가게를 차리는 것처럼 초기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지도 않잖아요? 본인의 가게도 이런 방식으로 잘 포스팅하면 손님도 점차 많아질 거고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도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제까지 업로드한 포스팅 링크를 보내주자 사장이 관심 있게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녀에게 배운 약간의 포스팅 노하우를 알려주자 사장이 나에게 술을 더 마시라며 좋은 반응을 보여준다. 그날 나도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그 친구의 가게를 포스팅하고 앞으로 조그만 것에도 사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사업을 일으키고 혹시 알바가 필요하면 나도 투잡을 해볼 테니 연락하라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즈음 그 사장이 고맙다고 카카오톡으로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보내줬다. 아무래도 필이 꽂힌 모양이다.

 

보통의 삶과 일상을 보내면서 나 또한 한국 사회가 점점 늙어가며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도 하였다. 그런데 잠깐의 시간을 내어 주변을 돌아보니 상상도 못 할 투쟁심과 신박한 아이디어로 자기들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해야 할 텐데 이렇게 소개한 두 친구들이 휴식도 없이 일을 너무 힘들게 해서 오히려 건강이 걱정된다. 아무쪼록 이 친구들이 무탈하게 그들의 이상(理想)에 다가가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루이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