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생들이 온다

젊어서 좋겠다

by 서울길

소녀 1 : 오 ~ 사업하시는 거예요? 저 취업시켜주세요!


나는 지금 어느 양주 프로모션 행사에서 알게 된 두 소녀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02년, 03년생 친구들이다. 2002년 월드컵을 유튜브 영상으로 본 친구들은 어엿하게 주민등록증으로 성인 인증을 하고 주류 행사장에 들어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친해졌는데 양주 회사에서 하는 행사를 알게 되어 같이 왔다고 하였다.

양주에 진토닉하고 섞어서 하이볼을 만들어주다 보니 금방 친해져서 말을 트게 되었다. 술잔을 몇 번 기울이니 소녀들의 고민거리가 쏟아진다.


소녀 2 : 엄마가 공무원 하라는데 괜찮나요? 돈 많이 안 준다고 금방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던데요.


소녀 1 : 작년 크리스마스 때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남자친구가 멀리 있는 펜션부터 가자고 해서 깨졌는데 쓰레기 맞죠?


내가 공무원의 세계를 알턱도 없고 공무원 소득을 당연히 알 수도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두 번째 질문에는 솔직히 뜨끔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술김에 온갖 개드립을 쏟아냈는데 뭐가 그리 웃기는지 두 소녀는 깔깔거리면서 웃는다. 주변에 술기운과 클럽음악에 엉거주춤 춤을 추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또 뭐가 웃기는지 빵 하고 터진다. 나도 같이 텐션을 맞춰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상체를 위아래로 젖히면서 목젖이 드러나게 파하하하 하고 웃는데 소녀들은 또 그 모습에 웃는다. 맨 정신이라면 서로 또라이라고 생각하고 정색했을 장면인데 확실히 알콜은 특이한 힘이 있다. 달달한 진토닉과 각얼음을 섞으니 높은 도수의 양주가 거침없이 들어간다. 몸 안에 알콜 농도가 진해질수록 멘트의 세기도 더 해진다. 아무렴 어떤가 웃기면 장땡이지.


이왕 몇 시간 말튼 김에 연락처를 교환하고 2차로 나선다. 밖에 나오니 강남의 밤이 얼음왕국이다. 강원도에서 맞았을 살벌한 칼바람이 얼굴을 스쳐가니 밖에 나온 사람들 모두 으힠! 하며 그 추위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소녀 1,2 : 빨리 아무 데나 들어가요. 추워요.


나도 그리고 같이 온 주당 후배도 잔걸음을 해치며 갈 곳을 찾는다. 메뉴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모두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공간이다. 어느 상가에 있는 이자카야를 찾아서 엘리베이터를 타니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킥킥 소리를 내며 또 웃는다. 다들 삶이 긍정적이라 부럽기만 하다. 나는 내일 아침을 뭘 먹으며 해장할지 그걸 생각하고 있다. 참 생각도 늙었다.


소녀 1 : 어묵탕, 소주...

소녀 2 : 꼬치도!


적당한 안주 없이 하이볼만 마셔서 그런지 모두들 배가 고팠나 보다. 아까 도수가 센 술을 마셔서 술은 더 마시고 싶지 않았고 따끈한 어묵탕과 꼬치모둠이 맛있다.


소녀 2 : 저희는 아르바이트하다가 만났는데 언니가 3일 일하고 제가 2일 일하는데 일하는 날 아닐 때도 카페 종종 놀러 갔다가 친해졌어요.


카페 사장님이 주휴수당까지 챙겨주기 힘들어서 2, 3일로 쪼개서 고용한 알바인데 그 둘이 친해진 것이었다.

그 둘이 손을 꼭 잡고 같이 한 몸이 돼서 일하면 주휴수당 받을 수 있겠냐고 묻길래 둘이 같이 퓨전이라도 하라고 하니 술기운이 덜 빠졌는지 또 배시시 웃는다. 뉴 제너레이션 소녀들도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알고 있었다. 의외로 대학생이 된 2000년대생 아이들도 90년대 감성에 꽤 친숙했다. 그래서 대화 주제가 막 그렇게 까지 차이가 안 났는가 보다. 시간이 남을 때는 롤도 하고 코인 노래방도 간다고 하였다. 롤 티어는 물론 나보다 한참 높았다.


소녀 1 : 삼촌들은 대학생 때 어땠어요? 놀면서 다녀도 다 잘됬나요?


나 : 우리 때도 취업은 힘들었는데 우리는 캠퍼스 안에서 축제하면서 술도 마시고 미팅도 많이 하고, 페북은 하는데 인스타는 없이 바로 여대축제 가서 여학생 연락처를 받아왔네요.


소녀 2 : 헠!


나의 빠꾸 없는 과거 썰에 신기한 듯 쳐다본다. 물론 나 같은 노빠꾸만 있는 게 아니라 착실하게 대학생활 해서 공무원, 대기업 간 사람들도 많다고 여러분들도 열심히 하시면 될 거라고 하였다. 진로 이야기를 하니까 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소녀 1 : 요새 사람을 안 뽑는대요. 친구가 어렵게 취업했는데 선임들이 전부 꼰대라서 나올 거래요.


소녀 2 : 친 언니도 백수인데 언니가 나보고 그냥 공무원 하래요.


금방 기분 좋았다가 다시 또 살짝 침울해졌다가 신기하게 젊은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 꼭 이성과 진로의 문제로 주제가 모아진다. 뭘 어떻게 하든 다 그렇게 가고 있다. 역시 번식과 생존은 인간의 필연적 숙제인 것인가.


나 : 아까 잘 못 들으신 거 같은데 제가 사장은 아니고 뭐 어떻게 해드릴 것도 없네요. 죄송합니다.~


내가 이 두 소녀에 비해서 뭐가 특별히 잘난 것도 없는 거 같고 나도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궁여지책으로 사는 인생이다. 나의 쭈글 한 모습을 보니 오히려 소녀들이 괜찮다고 손사례를 친다. 12시가 훨씬 넘은 시각, 택시를 타고 가려는 친구들에게 2시 이후면 요금 할증이 좀 더 싸니까 2시 이후에 가라고 하니 꿀팁이라고 엄지 척을 한다.


새벽에 택시를 기다리는데 이게 얼마만인지, 오늘 일어나면 뭐 할 거냐고 서로 묻는데 혈기 왕성한 친구들은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갈 거라고 한다. 나는 아침에 국밥으로 해장하고 또 잘 거라고 하니까 그들도 국밥 맛있겠다고 점심을 국밥으로 먹겠다고 한다. 나도 그들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으리라. 택시 타고 가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역시 젊음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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