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에서 파도를 본다_시>
버려진 교차로, 주인을 잃고 야생에 길들여진 그녀는
광활히 늘어선 전경에 황폐한 공기를 칠하네.
굶주린 신호등, 과거의 빛을 내쉬지도 못하는 그는
타성에 젖은 채 여전히 고압스런 명령을 내리네.
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건너지 않을 텐가?
제기능조차 못하는 불빛의 명령을 신봉한다면
그대는 멈추어 서라.
그렇다면 자유는 없다 말하리라.
그대 눈을 마주쳐 주는 것은 먼지의 곡소리뿐인가?
그대 스스로를 모른 체하며 건너고자 한다면
그림자를 피해 달아나라.
그렇다면 방종은 없다 말하리라.
겁에 질려 스스로 선택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가?
밤빛이 죽은 신호등을 대신하기까지 기다릴 테면
질은 아스팔트에 스며든 자갈들과 침상을 나누어라.
그렇다면 도피란 없다 말하리라.
내 숨의 근원, 피의 온기가 내 혓바닥을 깨우기도 전에,
나는 의미 없는 그의 질문에 답하기를 포기하였으니.
"자살하지 않는다 하여 죽음을 피할 수 있느냐?"
생명이 그러하였듯 죽음은 오직 선택만 할 뿐.
나는 선택할 수 없는가?
나는 선택할 수 없는가?
나는 선택할 수 없는가?
커져가는 내 연골의 틈새로,
꺼메지는 내 안구의 속내로,
느려지는 내 뇌수의 파도로,
죽음의 진득한 응어리만 채워질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