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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돈키호테>의 원작 1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by 아트 서연

시작은 발레 <돈키호테>에 나오는 "키트리와 바질의 웨딩 대소동"이 원작에 있긴 있는 걸까?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행동력 하나는 ‘갑’인 돈키호테와 그런 돈키호테에게 사이다 발언을 하는 산초의 케미가 재미있었다.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소설 속에서 키트리와 바질을 찾고야 말겠다는 초심은 어느새 잊어먹고 그렇게 본문만 800페이지에 가까운 1권을 다 읽었다.


그럼 2권에는 나올까? 1권보다 더 두꺼운 벽돌책 깨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1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2권은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까워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가며 읽었다. 내가 그토록 찾았던 “키트리와 바질의 결혼식 스토리”는 19장에서 길을 가다가 돈키호테와 마주친 어느 일행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렇게 해서 약 3달에 걸쳐 소설 속으로 돈키호테의 모험에 동참했던 긴 여정을 끝마쳤다. 키트리와 바질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덕분에 그 동안에 원작 돈키호테를 읽지 않았음에도 잘 안다고 착각해왔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들은 필사도 하고, 마음에 새기고 싶었던 문장들은 한참 바라보고 눈에 담으면서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소설이었다. 한 작품 안에서, 한 인간의 모습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관점으로 분해해서 분석하고, 다시 조립해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보는 각도에 따라 아주 달라지는 돈키호테가 내게는 “문학 홀로그램”처럼 보였다. 적어도 성인 문학을 거의 읽지 않았던 내게는 이 책이 그렇게 보였다.


기사도 문학을 풍자하기 위해 기사도 문학을 썼다고 밝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매우 달라짐에도 각자의 다양한 시선들이 다 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돈키호테를 허황된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 무계획적인 충동주의자, 기사도 정신과 규범 등 아는 것을 실천하는 지식인, 이미 봉건제가 몰락했던 당시의 스페인 사회에서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리는 사람, 스페인 사회와 지배계층을 풍자한 소설 등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며 대입해도 그 해석들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박철 번역가님이 역자 후기에서 쓰신 것처럼 이 책은 어린아이나 성인 모두 자신의 눈높이에 따라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읽는 사람의 관점이나 배경 지식, 통찰력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지는 책이다.


돈키호테는 총 두 권의 책이지만 1권과 2권은 많이 다르다. 1권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홀로그램’같은 책이고, 2권은 노년의 작가가 그 동안에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인생의 통찰력을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다 녹인 책이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검색했던 자료들이 ‘꿈을 쫓는 미국 천재들’이었다. 돈키호테 1권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이 현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과대망상증으로 보이는 장면이지만 난 왜 미국 천재들이 떠올랐을까.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창의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면서 AI 유니콘 기업들을 이끄는 미국 괴짜들에게서 돈키호테의 모습이 보였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천재인가? 괴짜인가? 논란이 많았지만
알고보니 다정한 아빠
매우 워커 홀릭에 진지한 남자이다.
현재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
형형색색 옷을 즐겨입는 그는
트레이드 마크가 바로 폭탄 머리
태극권을 즐기는 괴짜. 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천재로 스타트업계에서 유명하다.


반면에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리느라 전진하지 못하고 결국 AI 유니콘 기업들에게 디지털 식민지가 된 유럽의 모습에서 또 다른 돈키호테가 보였다.


2권에서 돈키호테는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하얀 달의 기사에게 패배한 뒤부터 생기를 잃어간다. 패배에 대한 약속으로 돈키호테는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생명이 사라져간다. 돈키호테에게 꿈은 단순히 환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삶의 원동력은 돈키호테를 움직이는 가치관과 꿈이었다.


** <돈키호테> 2권 중 "키트리와 바질의 웨딩 대소동"은 따로 쓸 예정입니다.**


** 그림 및 사진 출처 **

구스타프 도레의 삽화 및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의 사진들.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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