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이야기 - 방학에 지친 엄마들에게
봄방학이 없어진 덕분에 요즘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두 달이 넘는다.
때문에 선생님들의 숨통은 트이고 엄마들의 숨통은 조여진다. 아이 셋 중 둘이 초등학생인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얼굴에 그늘부터 생기는 기간이기도 하고.
그러나 기뻐할 선생님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학교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사교육 시장에서 오랜 시간을 강사로 보낸 나 또한 그 기쁨에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그 이유는 내가 현업에 있을 당시 며칠 안 되는 학원 방학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이는 학생 관리, 학부모 상담, 서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통제, 그리고 학업 성적과 수업까지. 지칠 이유가 너무나도 많고 충분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즐거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추억이 정말로 말도 못 하게 행복하고 뿌듯했던 건 사실이지만 어느 직장인이나 마찬가지로 “아 제발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건 부정할 수 없기에.
아침 8시가 되면 알람시계처럼 일어나는 아이들의 기상.
각기 다른 입맛도 버거운데 방학이라 늦잠이라도 실컷 잤으면 좋으련만 6.9.11세 아이 셋을 둔 엄마에겐 이마저도 사치다. 하긴, 학기 중에는 늘 6시 반이면 일어났으니 그에 비하면 늦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찌개를 끓일 육수를 준비하는 사이 밥솥에 밥을 짓고 달걀프라이, 소시지 등의 굽는 요리 몇 가지를 더 하면 한 시간가량이 흐르는데 이런 나를 보고 아침형 인간 남편은 “아침밥을 9시에 먹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나무라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공복 상태가 하루 중 가장 날카로운 나는 그에 응수라도 하듯 검은 운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가늘게 찢어 무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러면 남편은 슬금슬금 출근 준비를 하는데 이는, 아이들의 방학이나 연휴가 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우리 부부의 흔한 아침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이들의 연령이 다르다 보니 각자 다른 스케줄과 끝이 보이지 않는 겨울 방학 속에서 나의 하루 또한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중인데 이는 흡사 두 번째 육아 우울증이 온 듯 한 느낌이다. 자, 이제 우리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첫째와 둘째가 아침을 먹는 사이 막내를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고 나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또다시 점심을 차려주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나면 간식을 먹일 시간이다. 간단히 챙겨 먹인 뒤 학원을 보내고 다시 빨래를 개고 나면 막내를 픽업할 시간. 그런데 더 나를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곧 첫째와 둘째가 귀가를 한다는 점... 사실 간단하게 정리한 하루 일과지만 이 사이사이 집안일과 점심 저녁 준비로 샤워할 시간도 없다는 게 팩트다.
왜 지? 나는 이것만 하고 잠시 누워야지, 이것만 하고 잠시 앉아 커피 한 잔 마셔야지, 이것만 하고 잠시 책 몇 장만 읽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벌써 저녁을 차릴 시간인거지? 흩어져 버린 내 시간들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은 순간이다. 하아... 안 보이게 뒤돌아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서 다시 생선을 굽고 밑반찬을 꺼내고 데우고 끓이고... 빠르게 식사준비를 해둔 뒤 막내를 씻기고 아이들의 저녁을 먹인다. 또다시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나면, 왜 지? 왜 잘 시간인거지? 왜 벌써 하루가 지나간 거지?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과정은 힘들지만 행복 그 자체인 건 자명하다. 그런데 그 시간 속에서 나 자체를 잃어버려 우울해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흑과 백처럼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은 순간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요즘은 막내가 늘 형, 누나와 한 방에 모여 자기를 원해서 서재에 침대를 두고 일을 하다 잠드는 날들이 많은 남편을 제외하고는 넷이 안방에 모여 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무섭게 말을 하거나 예쁘게 달래보아도 30분가량은 쫑알쫑알 떠들다가 잠이 들기 일쑤기에 나의 하루는 그때까지도 끝이 나지 않은 셈이다. 그리고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감고 내가 먼저 자는 척을 하던 어느 날, 첫째가 둘째에게 말을 건다.
“재인아, 재완아 자?”
“아니, 오빠는?”
“형, 나도 안 자.”
“우리 오늘 싸웠나?”
“음... 두 번 정도?”
“내일은 싸우지 말자.”
“그래...”
“형아 근데 우리 놀다 보면 계속 싸우지.”
알았다고 쉽게 말하는 둘째에 비해 막내는 6세답지 않게 나름 논리적으로 말을 한다.
그렇지, 놀다 보면 싸우기 마련이지. 나도 나가서는 양보하고 배려할지언정 남편과는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으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왜 그렇게도 날카로운 말들만 튀어나오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엄마는 우리 때문에 친구도 못 만나고 나가지도 못하고 매일 집안일만 하고 요리만 하는데 우리가 싸우기까지 하면 엄마는 너무 힘들어. 집에서 엄마 많이 부르지 말고 형아, 오빠하고 나 불러. 내가 도와줄 테니까.”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일곱 살의 겨울 방학, 코로나는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까지 퍼져 최초로 마스크를 쓴 졸업식이 이루어졌고 부모들의 참여는 일절 불가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쓸쓸하게 졸업식을 치렀다. 한데 외로운 졸업식에 비해 입학식이 아예 행해지지 않는 불행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후로도 가정보육과 단축수업을 넘나들며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나의 큰 아이. 코로나의 거리 두기가 1단계, 2단계, 3단계로 거듭될수록 나 또한 아이와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 나도 혼자 있고 싶다,라는 생각을 굉장히 자주 해왔다. 코로나가 지친 삶을 선물해 준 느낌이었으니까. 아직 완전히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이제 친구들과 모여 축구도 하고 학교도 학원도 다니며 즐거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첫째가 이제는 나를 위로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시간을 모두 코로나로 빼앗겨 버리고 매일이 방학이었던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늘 나를 먼저 생각해 준 아이. 맏이에 대한 책임감을 주입시킨 적도, 무게를 짊어지게 한 적도 없는데 어쩜 이렇게 눈물 나게 사랑스러운 지. 이제 오늘부로 거리두기 2단계는 모두 해제다! 내일부터는 더 많이 붙어있자, 내 마음의 거리 두기는 방학이 끝날 때까지 들쑥날쑥하겠지만 이보다 더 높은 비상단계에 돌입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하다. 그동안 내가 잃어버린 것은 내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내 마음이었음을 알았기에.
그런데... 내일은 정말로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