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주세요!
-경력자 살인자를 찾습니다-

프롤로그 0.1 사망실패

by 이야기소녀

프롤로그 0.1 사망실패


“하아~ 이제 그만 살자. 어차피 죽은 삶, 더 살아봤자 뭐 해, 다 그만두고 편안해지고 싶어. 그럼 안녕!”


나는 미리 준비해온 번개탄에 불을 붙여 옆 자리에 살포시 올려놓고, 운전석 의자를 최대한 뒤로 길게 빼서 편안하게 누웠다. 이젠 눈물도 나지 않는다. 이 희망 없는 세상을 빨리 뜨고 싶은 마음뿐. 겨우 돈을 마련해 차를 빌려 인적이 드문 곳에 주차했다. 이번엔 성공인 것 같다. 서서히 번개탄의 연기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켁켁.”


조금만 참으면 돼. 조금 있으면 완전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뜰 거야. 그곳은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곳이겠지. 쓸모없는 나 같은 것도 받아주는 아주 좋은 곳일 거야.

눈을 뜨지 않고 숨을 고르게 쉬어보려고 애쓴다. 그런데 공기가 너무 매캐하다. 당장이라도 차 문을 열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으니까.


“저기요! 저기요! 여기 주차금지 구역이에요. 차 빼세요! 시민님? 왜 이렇게 하얀 연기가 많아? 드라이아이스 데려다 놓으셨어요? 시민님! 창문 여세요!”

“으음? 벌써 죽었나? 앵?”


잠이 좀 오는 것 같아서 감사해하고 있었는데, 여름밤에 모기가 귓가에 윙윙 거리는 소리처럼 정신이 아주 퍼뜩 들었다. 머리를 도리도리 세차게 흔들며 창문 여는 버튼을 눌렀다. 영혼이 아직 몸뚱이를 떠나지 않았다는 걸 깨닫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 지옥이군.


“흠흠! 이 냄새는 뭡니까! 아~ 시민님~ 드라이아이스가 아니고 담배를 피우셨구나! 암튼 얼른 차 빼세요! 처음 뵙는 것 같으니까 이번은 봐줍니다!”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 보이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경찰이 나를 째려보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오! 짜증 나! 왜 지금 와가지고! 켁켁켁. 간다 가!!!” 싸가지 경찰이 경찰차로 돌아갔는데도 그 안에서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다고 내가 못할 줄 알아? 내가 너보다 형님이란 말이지! 허~”


급히 옆 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원래 사전답사에서 두 골목 중에 어느 골목에서 할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수풀이 우거진 이 골목을 선택한 건데, 차라리 처음부터 폐가에 끼어있는 옆 골목에서 시도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분명히 이 동네는 사람들이 살지 않아 경찰도 순찰을 돌지 않는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왜 갑자기 경찰이 나타난 건지 알 수 없었다. 뭐 상관없지. 이제 곧 진짜로 죽을 텐데, 불필요한 정보는 더 이상 머리에 넣지 않는다. 죽는 것만이 나의 목표다.

나는 대문이 헐어서 뜯어진 집 담장 전봇대 밑에 차를 세웠다. 차 창문의 틈이 있는지 다시금 확인하고 몇 개 더 준비했던 번개탄들을 꺼내 불을 붙였다. 또다시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 인제 진짜 끝. 정말 끝. 제발 끝. 끝 끝 끝.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다!”


경건하게 깍지를 낀 두 손을 가슴 위로 올리고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아까와는 달리 번개탄의 연기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구름 연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있으면 돼. 조금만. 나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기뻤다. 이제야 드디어 마지막일 수 있다니.


“애앵? 저기요! 시민님? 시민님! 창문 여세요! 또 여기서 담배 피우시네. 여기는 주차하는 구역이 아니라니까요.”

“으아아아악! 왜요! 왜! 도대체 왜! 이제 10분쯤 남았다고요! 10분 뒤에 오시던가!”

“저는 10분 뒷면 저 반대편 동네로 가야 해서 안 돼요. 시민님! 자꾸 이러시면 벌금 물어요? 신분증 제시하세요! 아까 봐드린다고 했던 말 취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제 좀 세상의 짐을 터나 했더니, 일면식도 없는 어린놈의 경찰이 나를 이렇게나 쫓아다닐 줄이야!


“헉! 혹시 음주하셨어요? 이 시민님 안 되겠네. 잠깐 나와 봐요!”

“으아악! 답답해! 아오!”


저절로 쥐어지는 주먹에 때릴 것이 없어 내 가슴만 쿵쿵 치며 차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저 세상으로 가게 해 줄 연기들이 모조리 자연의 정화에 날아가 버렸다. 그들도 슬퍼하며 소멸되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내가 저 연기들이었다면. 울상을 지으며 경찰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음주 측정을 하고 나서야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납이요.”


어깨가 축 처진 채 빌린 차를 반납하러 갔다. 키를 건네고 돌아서 나가는 데,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차 안에서 이상한 냄새 나. 저 사람 뭐 이상한 짓 한 거 아냐?”

“그래도 차가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지. 저 사람이 죽었어봐. 그럼 이 차 어떻게 처리해?”

“맞다~ 맞다.”


다 들리는데, 왜 속닥거리는지 모르겠다. 눈빛만 봐도 눈알에 돈만 가득해 보이는 중년의 부부는 자기네 차들만 걱정한다. 자기네 생계니까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나는? 나는 사람인데? 당신들과 같은 사람인데 왜 차만 걱정해?’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는 없다. 웃긴다. 죽을 용기는 있으면서 ‘나는 왜 걱정을 안 해주냐’고 말할 용기는 없다. 왜냐면 우린 남이니까 걱정받을 자격도 없지. 내 마음이 틀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괜히 고요한 가로등 불빛과 차분하게 걷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죄가 없다. 나도 기본은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세상에 불만을 갖고 짜증이 나도 아무 대나 내 감정을 쏟는 분노조절환자는 아니다. 그래서 혼자 소리 소문 없이 죽으려고 하는 거지.


“켁켁!”


기침이 나온다. 아까는 달콤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속이 불타는 느낌 같다. 이래서 뭘 마시거나 먹거나 인체 안으로 흡수되는 방법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것마저 실패하다니. 마침 인적이 드문 데다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보인다. 너 잘 걸렸다!


“아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사전답사를 얼마나 했는데, 그때는 사람이라는 흔적이 하나도 없다가 왜 오늘 이러냐고! 날 좀 죽여줘! 죽여 달라고!”


보름달이 무슨 죄냐. 미안하지만 너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