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주세요!
-경력자 살인자를 찾습니다-

프롤로그 0.2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 인생들

by 이야기소녀

프롤로그 0.2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 인생들


그렇다. 나는 어쩌다 보니 자살 연습생 ‘주인공’이다.


주인공이긴 개뿔이. 지금까지 주인공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기억 속에 있는 건 아버지라는 존재뿐인데, 이마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별하고 나에게 관심 없는 친척네를 전전하다가 눈치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독립했다.

보육원에 보내줬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보육원에서도 그만한 고충이 있었겠지. 뭐든 불만을 가지면 끝이 없는 걸 안다. 그렇다고 일부러 만족한다고 스스로를 속이긴 싫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나았을까? 확실히 물질적인 면에서 나았을 테지만, 부잣집도 그만한 고충이 있겠지. 마음이 지옥 같으면 가족이 있든 없든, 돈이 있든 없든 다 지옥일 테니. 그래서 내가 지금 지옥에서 악마에게 쇠꼬챙이로 고통받으며 어쩔 수 없이 숨 쉬만 쉬고 있는 상태로 삶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때는 친척 어른들이 독립을 도와주시기도 하셨고, 대학교를 다니면서 태권도로 장학금도 받고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었다. 하늘에서 부모님이 도와주시나 했다.


그런데 부상을 당하면서 내 인생을 180도 바뀌었다. 국가대표에서도 탈락하고 스카우트를 받았던 강남의 한 태권도장에서도 돌연 스카우트를 취소했고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도 떠나고 통장의 돈도 점점 떨어져 갔다.

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나도 힘들다. 나도 죽을 것 같다고. 태권도를 포기하는 날 엄청 울었다. 어떤 사람들은 다시 재충전해서 태권도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럼 생계는 누가 책임져 주냐고. 나는 남들처럼 부모가 있어서 실패하면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없다고. 말이면 누가 못해.


정작 그만두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다. 힘쓰는 것 밖에는. 나이트에서 일을 하면 돈을 많이 준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영혼이 더럽혀질 바에야 죽는 게 낫지. 그래서 줄곧 죽으려고 하고는 있지만,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공사장에서 벽돌도 나르고, 도배도 해봤다. 벽돌을 나르다가 어수룩해서 다 떨어뜨리고, 도배도 했지만 종이가 다 떠버렸다. 또 배달은 내비게이션을 봐도 길치라 항상 늦고, 카운터 업무를 보기에는 지루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수많은 알바들이 나를 등졌지만 그중에서도 전단지 돌리기 알바는 할 만했다. 생계를 이을 정도는 아니라서 바로 그만두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하다가 그나마 태권도 지식전달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교육대학원을 알아봤다. 하지만 돈이 어마무시하게 든다는 걸 알고는 즉시 마음을 접었다. 어차피 교육대학원을 가서 교사자격증을 따봤자 한 학교당 체육선생님은 한 명씩만 뽑으니 이름 있는 대학교가 아니거나 지인이 없다면 가망이 없고, 인구수가 줄어가는 대한민국에서 교사라는 직종은 사명감이 없는 이상 힘들어 보였다. 나는 참 현실적이다.

뭐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면 할 일이 무어냐고 그러겠지만, 나에게는 중요하다. 돈이 없는 나에게 ‘투자’라는 개념은 아주 희소해서 한번 할 때 잘 알아보고 해야지 아니면 내 인생 전반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으윽~ 그만 좀 생각해! 그만!!!”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그래. 이제 그만!


나는 보름달이 아주 잘 보이는 월세방 옥상에 올라왔다. 먼지가 가득 쌓인 녹슨 의자가 하나가 여전히 지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낮에 볼 때는 앉기에 꺼려지는 형색이었는데, 어두우니 의자 상태가 어떤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따지면 뭐 해. 내 마음이 더 녹슬었는데.

보름달을 뚫어지게 째려보았다. 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달표면에 마치 나의 실패들이 슬라이드가 지나가듯이 보이는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도 이러던데. 대부분 보름달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거나 달을 통해 시공간을 통과하는 장면이라 감상적인 달의 느낌이 있다. 나도 시공간 좀 통과했으면 좋겠다. 그럼 죽지 않고 그대로 다른 시공간에서 편안하게 지내지 않을까? 아메리칸드림처럼 시공간드림만 되려나? 모르겠다. 괜히 마음이 축 쳐진다.


6개월 전부터였다. 내가 죽으려고 시도했던, 자살생이 아니라 자살 연습생이 된 건.

처음에는 뛰어내리려고 했다. 한강에 뛰어들려고 했지만 고전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CCTV가 있고 감성적인 문구들이 다리 위에 적혀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물만 들입다 마시고 폐만 망가진 채 살 수 있어서 한강은 제외.


그럼 ‘건물’이 적격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월세방 있는 건물은 4층밖에 안 돼서 높이가 너무 낮고, 친숙한 대학교 건물은 학생들이 놀랄 것 같고, 아파트 건물은 아기들이 있으니까 안 된다. 상가건물도 아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고민 끝에 딱 적합한 건물은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건물이었다. 다들 성인이니까 괜찮겠지. 하지만 요즘 대기업들은 출근카드를 찍고 출입하니 대기업건물은 불가능하다. 그럼 중소기업 정도가 딱 괜찮은데, 높은 건물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이 있나 검색해 보니 운 좋게도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생명의 언어’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출판사 같았다. 층도 15층 정도라 바로 즉사할 수 있는 높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잘 검색하면 유익한 정보들을 건질 수 있어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정해놓은 날짜와 시간에 이 건물에 갔다. 막상 도착하니 건물 안에서 일하고 있을 직장인들에게 미안해서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마음을 정리했다. 나 죽으라고 이렇게 가깝고 층도 알맞은 건물이 있어서 감사했고, 옥상에 올라가는 내내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감사했다.


여긴 옥상문도 하늘색에 튼튼해 보이는 새 문이다. 죽기에 딱 좋은 깔끔함이군. 옥상 문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그래도 괜찮다. 떨어지면 계절도 날씨도 모를 테니.

이 날은 하늘도 쾌청하니 맑았다. 인생을 다 산 듯, 뭐 이제 다 살았지. 다 내려놓는 마음으로 난간에 서서 눈을 감았다.


“잘 살지 못했지만 잘 간다. 고맙진 않은데 그래도 조금 고맙네. 잘 지내.”


는 세상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미련 없이 발을 떼어 공중에 내디뎠다. 이제 아래로 떨어진다. 안녕, 정말 안녕.


‘음? 벌써 떨어졌나? 왜 바닥이 닿지? 이상하다. 내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야 하는 거 같은데. 왜 멀쩡하지? 그새 영혼이 빠져나온 건가? 혹시 벌써 천국?’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며시 눈을 떴다.


“아이코! 놀래라! 청년! 여기로 갑자기 뛰어내리면 어떻게 해. 줄 끊어질 수도 있어. 본사 사람이야?”


내 눈앞에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한 아저씨가 계셨다. 창문을 닦는 도구를 들고 계셨다.


“여… 여기는!”

“올려줄 테니 얼른 돌아가! 지시사항이 있으면 위에서 전해! 이렇게 갑자기 밀어닥치지 말고. 목숨이 두 개야? 큰일 난다고. 나는 처자식이 있어!”

“앗, 죄…죄송합니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옥상바닥에 발이 닿는 대로 무작정 월세방으로 내달렸다. 완전 트라우마. 그래서 이 이후로는 어디서든 뛰어내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차에 치여 죽으려고 했었다. 어중간한 속도로 달리는 차에 치이면 골절과 장기손상만 돼서 병원신세를 저야 한다는 인터넷 죽음이 소원인 동지들의 글에, 확실히 죽으려면 스피드를 즐기는 트럭에 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가 제일 좋은 장소였다. 차를 빌려 고속도로에 세우고 트럭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살피다가 저 멀리서 달려오는 트럭을 보고 성큼 뛰어들었다. 그런데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던 트럭이 내 앞에서 멈추더니, 그 트럭을 운전한 고수가 창문을 열고 욕을 엄청 퍼부었다. 다행히 뒤에 따라오는 차들이 없어서 연쇄추돌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깜짝 놀라셨는지 험악한 표정이셨다. 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 같아 그 사이에 차를 타고 튀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다시 인터넷을 검색하고 고민해 본 결과 인근에 공사장이 있는 교차로가 그다음으로 좋다는 의견이 있어서 빌린 차를 반납하기 전에 출발했다. 역시 트럭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다. 조사해 보니 트럭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나는 지점이라고도 했다. 죽음이 소원인 동지들의 정보력은 역시 정확하다.

나를 칠 트럭 운전사에게는 미안하지만, 트럭 운전대의 높이가 높아서 사람이 치이는지, 나무가 쓰러져서 걸렸는지 모를 테니 안심하시라.

그러고 보니 나는 경차라서 죽기 더 쉬운 조건이었다. 돈이 없어서 경차를 빌렸는데, 딱이군. 사람과 상황이 날 도와주고 있어! 이제 하늘이 나를 데려가시려나!

나는 교차로를 천천히 뱅뱅 돌면서 트럭을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기름이 거의 다 떨어져 갈 즈음, 모래를 가득 실은 트럭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신나서 사고다발 지점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죽는 거야! 한 방에 쳐줘!”


나는 트럭에 제대로 부딪치려고 트럭이 오는 경로를 따라 운전대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쿵! 콰광!’


“으윽~ 사람 살려요! 도와주세요!”


그 거대한 코끼리 같던 트럭이 도로에서 미끄러지면서 옆으로 엎어졌고, 그 안에 담겨 있던 모래들도 도로 위를 포장하듯 죄다 덮었다. 나는 놀라 차 안에서 나왔다. 살려달라는 트럭 운전사의 말에 119에 신고를 해주고 바로 튀었다.


분명히 사고 영상 CCTV를 돌려볼 텐데, 교통경찰이 내가 몇 시간씩 그곳을 뱅뱅 돌았다는 걸 알게 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얼른 차를 반납해 버리고 월세방으로 복귀했다. 차는 이제 좀 아닌 것 같다. 트라우마다.



또 한 번은 집문과 창문을 죄다 열고 강도를 기다린 적도 있고, 또 한 번은 LPG 충전소 근처에 가서 터지기만을 기다린 적도 있고, 또 한 번은 비가 올 때 천둥과 번개가 나에게 치기를 바라며 뾰족한 안테나를 들고 있었던 적도 있고,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자살 시도를 하며 자살리스트를 써 내려갔지만 하는 족족 다 실패했다. 그 와중에 병원신세를 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허탈감이 너무 컸다. 나는 죽고 싶은데 왜 죽어지지 않지?

약을 먹거나 칼로 스스로를 찌른다거나 목을 매는 것도 생각은 해봤으나 처음부터 안 하기로 다짐한 방법이었다. 잘못하면 병원신세를 질 텐데, 병원비도 없고 그런 고통까지 겪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자해하긴 싫다. 갑자기, 얼떨결에, 누군가에 의해 죽고 싶지, 내가 나 스스로를 죽이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내가 나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진 않나 보다. 왜냐고? 그냥 내 신념이다.


먼지가 가득 묻은 것 같은 바지를 털고 하나밖에 없는 내 피난처인 월세방으로 내려왔다. 누군가는 내게 왜 자꾸 미친 짓을 하느냐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보라고 뭐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겐 죽는 것 자체가 지극히 정상적인 짓인 걸.

TV를 켰다. 뉴스에서 사고로 죽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내 생명을 저 사람들에게 줬으면 좋겠다. 나는 살기 싫고 저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 줄 수 있었으면 당장 전화해서 벌써 줬을 텐데.


왜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고 싶은 사람들은 죽지?


이렇게 풀이 죽은 채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인공아! 주인공! 자꾸 실패한다고 실망하지 말자고. 혹시 몰라서 모아놓은 수면제도 있고, 혹시 몰라서 사놓은 밧줄도 있으니까 내가 마음을 강인하게 먹으면 죽을 순 있어.

어디선가 용기가 샘솟았다. 나는 TV서랍장 안에 넣어둔 수면제통을 자신 있게 꺼냈다.


“그래! 병원에 안 가고 죽으려면 한꺼번에 많이 먹자!”


입을 크게 열어 수면제통에 있는 약들을 다 털어 넣었다.


“무무물~ 목 막혀~”


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내 실수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가 있지. 역시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이렇게 된다니까. 항상 준비하는 태도는 나의 장점인데, 물 어디 있어!

냉장고에서 미지근한 물을 꺼내 입에 넣는 순간,


‘탕탕탕!’


“여기 주인공님 댁 맞으시죠? 인공님? 저기요!!! 저기요!”


문을 총처럼 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입에 있던 수면제약들과 물을 다 바닥에 뱉어버렸다.


“으악! 읍!”

“저 낮에 경찰관인데요, 신분증을 놔두고 가셔서요. 주인공님? 저기요?”


‘드르렁~ 드르렁~’


그랬다. 입에 조금의 수면제가 남아있었는지, 나는 바로 골아떨어졌다. 오늘 너무 피곤하긴 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