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주세요!
-경력자 살인자를 찾습니다-

1. 주인공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

by 이야기소녀

1. 주인공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


‘띠리리~’


“음냐음냐~ 여…여보세요…. 죄…죄송해요…. 오늘요? 오늘은 제가 힘들 것 같고요. 내일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오래간만에 꿀잠을 잤는데, 깨고 보니 다시 현실이다. 죽고 싶은 현실. 집주인아줌마의 집세 독촉이지만, 나 같아도 3개월이나 밀렸으면 속이 탈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 아줌마는 착한 분이시다. 내가 집주인이었으면 매일 찾아왔거나 아님 심한 말을 하거나 아님 소송을 걸었을 텐데, 아줌마는 최대한 인내하시면서 말씀하시는 느낌이었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요즘 고독사가 많으니까 한편으로는 걱정돼서 그러신 게 아닌가 싶다.

죽고 싶은 놈이 남 배려하는 게 우습다. 그렇다고 아줌마를 배려하는 건 아니다. 확실히 민폐를 끼치려고 작정 중이다. 오늘 나는 확실히 죽을 예정이기 때문에 시신 수습해 주시라고 내일 오라고 한 것일 뿐. 나처럼 이기적인 놈도 없다. 아줌마, 죄송해요.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난다. 죽을 놈도 배가 고프긴 한다. 배고픔 때문에 일을 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하는 이 몸뚱이를 보살펴 주기도 지친다. 집에 먹을 것도 없다. 굶어 죽어도 좋지만 언제 굶어서 죽을지 알지 못하기에 일단은 배를 채워야 했다. 일어나려고 하니 그제야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느껴지는데 찝찝했다.


“으윽~”


어제 문소리에 뱉어버린 수면제와 물이었다. 맞다. 어제 경찰이라고, 그 싸가지 경찰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나? 온몸이 나른하다. 아직 약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하아~ 이 정도 약기운이면 어제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 싸가지 경찰 때문에 아까운 기회를 두 번이나 날리다니. 두 번이 아니지 세 번이지! 악! 정말 운도 없어.”


나는 행주 겸 걸레로 쓰고 있는 천을 가져다가 바닥을 닦고 손을 씻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돈을 빌리고 5천 원은 남았기 때문에 라면이라도 먹을까 했다.


“3200원입니다.”


요새 물가는 지옥이다. 700원이었던 삼각김밥이 어느새 1400원으로 올랐다. 라면은 말도 못 하지. 그래도 편의점은 양반이다. 밥집은 인심 좋은 곳 아니면 일 인분에 만원이 훌쩍 넘는다. 어디 무서워서 가겠나. 뭐 장사하시는 분들도 고충이 있으시겠지. 돌고 도는 인생 누구 혼자만의 잘못은 없다.


“어우야~ 어제 고고무를 보다가 과거에 구봉 광산이라는 곳에서 한 광부가 16일 만에 구조됐대! 커피믹스로 연명해서 살아남으셨다 던데 신기하지 않아?”


“나는 한 끼만 못 먹어도 죽겠던데. 정말 대단하셔!”


“그래! 일제치하에서도 독립하시던 분들도 일제로부터 도망 다니면서 독립을 외치셨잖아. 돌아가신 분이 많으시지만 그중에도 살아남으신 분들도 계시고. 목숨은 이럴 때 쓰는 게 맞지.”


“냠냠냠~ 맞아. 정말 살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니까. 그런데 너 갑자기 왜 이래? 역사선생님 흉내를 내고. 참나~ 라면이나 드세요.”


고등학생 둘이서 라면을 먹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광부가 16일 동안을 광산에서 버텨?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그렇게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처자식이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그래도 처자식이 없어도 그 광부는 분명히 살아남았을 것 같기도 하다. 천성이 올곧고 우직한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도 초연함을 지키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 같던데, 나는 완전 반대다.


나는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리면서 잠시 고민에 잠겼다. 늪이 되어버린 내 마음에 그 광부 이야기가 시원한 물을 붓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TV에서나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라고는 범죄 소식이나 자살 소식, 서로 싸우는 소식 등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소식들뿐이었는데, 이런 긍정적인 삶도 있었다니.


‘살 사람은 산다니까.’


방금 한 고등학생이 말한 말이 마음에 꽂힌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딱 한 장면이 생각났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칼싸움을 하면 항상 쓰러졌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었다. 서로 불사신이라고 우겼었는데. 그때가 좋았지.

음? 불사신? 내가 불사신인가? 그동안의 실패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건물에서 뛰어내릴 때도, 트럭에 치이려고 했을 때도, 한창 강도가 즐비한다는 소문에 우리 집에 들어오길 바라며 현관문과 창문을 다 열어놨을 때도, 옆 동네 가스 LPG충전소가 터졌다는 소문에 동네 LPG충전소 근처에서 잠복해 있을 때도, 비가 오고 천둥번개 치는 날 뾰족한 안테나를 들고 다닐 때도 나는 다 살아남았었다.


“헉! 나 진짜 불사신이야?”


순차적으로 정리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편의점 테이블을 손으로 딱 치면서 일어났다.


“저 사람 미쳤나 봐.”


“야! 다 먹었지? 가자!”


난 미친 지 오래라 그렇게 말해도 타격은 없다. 아무튼 새로운 사실이었다. 내가 불사신이라니! 고맙다. 고딩 아이들아. 그럼 어제 수면제를 먹었어도 죽지 않았을 거고 칼로 찔려도 산다는 뜻이잖아. 그동안 왜 죽지 않았는지 이제야 깨달음이 몰려왔다.


‘그럼 나는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이 죽지 않는 몸으로 무얼 하면 되지?’


갑자기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때 어떤 복면을 쓴 사람이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있는 나를 재빠르게 지나쳐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꼼짝 마! 있는 돈 다 내놔! 신고하면 죽는다!”


“무슨 타이밍이 이래? 음… 그래! 신이 나 스스로를 시험해 보라는 뜻이겠지! 불사신이라면 도전! 하하하!”

배는 고프지만 뜨거운 컵라면을 들고 편의점으로 당당히 호기롭게 입성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편의점 벨이 울리자 칼을 휘젓고 있던 강도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성큼성큼 편의점 강도에게 다가가 컵라면을 강도에게 던졌다.


“아! 뜨거워! 이 개자식이!”


강도는 뜨거운 라면국물에 젖은 복면을 벗더니 곧장 나에게 달려들었다. 여기까지는 내 시나리오대로다. 잘되고 있어!


“웁!”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이건 시나리오에 없었다. 이런.



“주인공! 네 인생을 주인공처럼 살아라!”


아버지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는 나를 안아 드시며 말씀하셨다. 거인처럼 크고 우람했던 아버지. 독수리 그림이 달린 출근복이 멋있었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교과서 같은 명언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매번 그 말씀에 ‘응!’이라고 대답했었다.


“환자분! 깨어나셨어요?”


“응! 으윽~”


“…. 아프실 거예요. 삼일이나 누워계신 거 아세요? 피를 많이 흘려서 죽을 뻔했는데 수혈받으셔서 살았어요. 다행히 급소도 피해 갔고요. 그래도 회복이 빠르셔서 칼 맞은 자리가 잘 회복되고 있네요. 이제 깨어나셨으니, 과거는 잊으시고 내일이나 모레 퇴원하셔도 될 거예요.”


“네?”


“어머! 인공 청년! 너무 고마워요. 우리 딸이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 딸 생명의 은인이야. 고마워요. 병원비는 이미 다 냈어. 치료 잘 받아요. 여기 과일도 먹고!”


“가… 감사합니다!”


“…”


“아! 주인공 환자분, 경찰 분들께서 오후에 조사차 나오신다고 하셨어요. 그럼 필요할 때 벨 누르세요.”


경찰? 배를 덮고 있던 옷을 까보니 붕대가 감겨 있다. 숨을 쉬기가 조금 힘든데? 이럴 거면 죽던 가 왜 살아있어? 이렇게 불사신 하기 싫다고. 아니지. 이런 몸은 불사신이 될 수 없어. 불사신이라는 정의는 칼에 맞아도 금방 낫고 고통도 없는 그런 강철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내가 바보같이 엄청난 착각을 해가지고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돼? 그러고 보니 그 강도 진짜 미쳤네. 급소를 왜 피해! 급소를 찔러야지!


“진짜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윽~”


“응? 인공 청년 괜찮아?”


“아~ 네네. 저 이만 가겠습니다.”


“아니~ 회복도 안 됐는데, 더 입원해야 돼. 삼일 만에 깨어난 거야. 청년!”


나는 화장실로 후다닥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만류하는 아줌마를 뒤로한 채 병원을 나가버렸다. 경찰이라면 만나기 싫다. 신물이 난다. 싸가지 경찰도 그렇고, 그냥 싫다.



숨을 헐떡거리며 집에 겨우 도착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하는데 문에 쪽지가 붙어있었다.


‘오늘 왔다가요. 계속 전화하기 좀 그래서, 다음 주 수요일 오전 중으로 올게요.’


집주인아줌마였다. 아줌마께 죄송하다. 나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으시겠지. 짐도 없으니 몸만 나가면 되는데, 막상 나가려니 어디로 갈지도 모르겠고, 그냥 내가 죽으면 되는데, 왜 이렇게 인생이 더 안 풀리는 것 같냐. 하아~ 한숨만 나온다.

고개를 푹 숙이다가 발에 밟히는 게 있었다. 내 신분증이었다. 그 싸가지 경찰이 놓고 갔나 보다.


“으윽~”


신분증을 주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칼에 찔린 배 부위가 아팠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대자로 뻗었다. 월세가 밀려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내가 묵던 곳이라 그런지 친근하고 편했다. 천장벽지가 낡아 까진 부분을 바라보다가 코웃음이 나왔다.


“불사신이긴 무슨 개뿔이 불사신. 천사강림 하는 소리나 하고 있었네. 참나~”


‘띠링~’


쉬려고 하니 문자알림음이 들렸다. 이번 달 안으로 대출을 갚으라는 문자였다.


‘띠링~’


“또 뭐야?”


‘인공아, 저번에 빌려준 돈 언제 갚을 수 있니? 지금 내가 돈이 필요해서. 연락 빨리 줘.’


망태선배다. 나와 연락하는 유일한 선배. 직속선배라기보다는 학생일 때 조교로 만난 사이였다. 그때는 내가 잘 나갈 때라 교수님들과 조교 선배들과 친했었었는데. 한 달 전에 빌린 돈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전화도 여러 번 하셨었네.


‘띠링~’


‘주인공 고객님. 앞전에 차 빌려 가셨던 분이시죠? 전화통화가 되지 않아 문자로 남깁니다. 차 안에 고약한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요. 대여하실 때 사인하신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차에 심각한 해를 가했을 때는 보상해주셔야 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속히 연락 부탁드립니다.’


“하아~ 왜 죄다 나한테 돈 달래! 나 돈 없는데! 다들 왜 그래! 으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