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주세요!
-경력자 살인자를 찾습니다-

10. 안되겠다! 나야, 나 좀 죽여!

by 이야기소녀

10. 안되겠다! 나야, 나 좀 죽여!



“미쳤어요? 죽여 달라니, 이게 무슨 말이에요?”


“으음~ 천국이에요?”


‘찰싹~’


누군가 내 볼따구니를 때렸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픈 느낌은 이 세상 것인데?


“정신 차려요!”


“이런, 안 죽었군요.”


아저씨 동료분이었다.


“갑자기 병원을 나가서 몰래 따라왔더니 이곳으로 오지 뭡니까! 위험한 곳에 왜 혼자 와요?”


“위험하다뇨. 여기는 제 대학교 선배네 체육관이에요. 미리 약속한 거라 나온 거고요.”


“김망태는 신사장의 수하 중의 한 명입니다. 신사장 저택을 수색할 때 나온 리스트를 확보해 놓은 상태라 주시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무도 없었어 봐요. 바로 죽었다고요!”


나는 아저씨 동료분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텔레비전에서 볼 법한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테러범을 잡을 때 잠입하는 특수부대원들처럼 특수한 군복을 입고 총을 든 대원들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엇! 선배는?”


망태선배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다리에 총을 맞았는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어서 대원들이 붕대를 감고 있었고 동시에 몸을 결박하고 있었다. 다른 대원들은 체육관 구석구석을 수색하는 중이었다.


“또 약속이 있습니까? 아니면 신사장과 관련된 지인이 있습니까?”


“저에게 지인이라고는 이 선배 한 명뿐이었어요…. 약속은 당연히 없고요. 선배는 어떻게 되는 거죠?”


씁쓸해졌다.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그것도 나에게 한 때 베풀어준 사람, 내가 닮고 싶어 했던 사람이 이렇게 되다니.


“신사장과 함께 처벌을 받겠죠. 주인공 씨 맞으시죠? 병원에 입원할 때부터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저를 살려주시고도 감사인사를 못 드리는데 제가 더 죄송하죠. 저 이만 가도 될까요?”


“혹시나 무슨 일 있으시면 이리로 연락 주세요.”


아저씨의 동료분이 건넨 명함을 받아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 안 봐도 뻔했다. 국가정보원이라는 직업과 함께 스마트폰 번호가 적혀 있겠지. 부럽다. 직업이 있어서.


“네, 감사합니다.”


선배의 체육관을 떠나면서 여러모로 마음이 씁쓸했다. 선배가 총을 들자마자 나는 삶과 죽음의 내적갈등을 하다가 결국 죽음을 진심으로 선택했는데, 이뤄지지 않았으니 난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물결이 밀려드는 느낌은 뭐였을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살고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는데 말이야.


‘웅성웅성.’


거리에 나오니 밤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체육관 앞 입구에 몰려 있었다.


“경찰들 들어가는 거 봤어?”


“보통 경찰이 아니고, 특수 뭐라 하던데.”


“특수부대요!”


“그래! 특수부대. 거기서 왜 체육관으로 들어가?”


“체육관에서 남자들이 군복 입고 생일파티를 하는 건 아닐 테고, 거기 태권사범이 유명하다던데 그 사범 후배들인가?”


“후배들이면 총을 들고 그렇게 비장하게 들어갔겠어? 뭔가 사단이 난 게야. 그렇고말고!”


“추우니까 집에나 가자. 큰일이면 뉴스에 나오겠지. 우리랑 관련이 없다고요.”


호기심에 계속 서 있는 청춘남녀도 있는가 하면, 가족을 마중 나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잠깐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카메라맨! 빨리빨리! 특종을 잡았단 말이야. 신사장 대표 측근이 잡혔대. 다 왔어. 저 체육관. 엇! 주인공 씨? 맞으시죠? 어제 응급실 앞에서 뵀었는데.”


“네에?”


“역시, 맞으시군요! 나의 촉이란!”


“…”


나는 바닥을 보며 걷다가 깜짝 놀랐다. 카메라를 든 남자와 마이크를 든 여자가 내 곁을 지나가다가 나를 불러 세웠던 것이었다. 리포터 같이 보이는 여자는 체육관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뭔가 놀라는 듯 마이크를 고쳐 잡고 카메라맨에게 신호를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경찰서에서 물어온 따끈따끈한 인터넷 프리토크 뉴스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면 놀라실 분을 소개해드리죠. 짜잔~ 그 이름도 유명한 우리의 영웅! 주인공 씨입니다. 장자철과 살인미수 이아율, 박의사, 그리고 어제 일어났던 신사장을 잡은 화제의 인물이시죠. 저희 프리토크 뉴스에서 단독으로 취재합니다.”


“이거 지금 나가는 거예요?”


“우리의 영웅, 주인공 씨. 시청자 분들께 한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인자들을 잡으셨나요?”


나는 깜짝 놀라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빠른 걸음을 시전 했다.


“전 아닙니다~”


“오늘은 또 어떤 살인자를 잡으러 가셨죠? 혹시 저 체육관에서 일어난 일일까요? 특수부대원들과 한 팀이 되신 걸까요?”


“저 아니라고요!”


나는 집요한 질문에 말이 통하지가 않아서 뛰기 시작했다.


“주인공 씨, 주인공 씨! 또 찾아뵙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놀랍지 않으십니까? 우리나라에도 영웅이 있었습니다. 저희 프리토크 뉴스에서 주인공 씨의 얼굴을 처음 공개합니다만, 다음에 다시 또 인터뷰하겠습니다. 자! 다음으로 이쪽에는 신사장의 측근이 운영했던 체육관이 보입니다……….”


마침 버스가 보이길래 타려고 했지만 차비가 없어서 집으로 걷고 또 걸었다. 날이 추워 바람이 쌩쌩 불었는데도 내 몸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졌다. 머리도 이제 아프지도 않았다. 이런 몸뚱이를 가지고 살면서 제대로 쓰지 못하다니 나 자신에게 참 미안해졌다. 세 시간 즈음을 걷자 드디어 집으로 가는 동네 입구가 나왔다.


“드디어!”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자시고도 없고 그냥 그 자리에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새하얀 연기들이 아주 가득하다. 담배연기는 아니고 구름 속 같다. 구름 속? 혹시 천국?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내 앞에 히떡 나타났다.


“아이코, 깜짝이야!”


“너 왠지 유명해진 것 같아. 뉴스 봤어? 이제 좀 살아볼 생각은 있지?”


“아… 아버지? 나 자다가 맛 간 거야? 심혈관 질환이 있었다니. 아버지는 심혈관 질환 없잖아. 어머니인가?”


“아무도 없어. 나는 뇌경색이었지. 아무튼! 아들! 아버지, 어머니가 뭐냐? 아무리 어릴 때보고 안 봤다고 해도 아빠, 엄마라고 해야지. 짜식~ 내 아들이지만 너무 잘 컸어!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왔는지. 아~ 여기서 왔지. 하하하~”


“…”


“흠~ 아무튼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야. 우리 아들. 죽지 말고 살아.”


“나 못 살고 있는데. 아버지, 아니 아빠도 알잖아. 나 집세도 못 내서 전전긍긍하고 다쳐서 태권도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능력도 있는 것도 아니고 공사장일 해도 어리바리 해서 잘리고 어딜 가도 나는 미운오리새끼야.”


“내 아들 주인공! 인생은 모르는 거다? 어떻게 될지 몰라. 죽을 것 같다가도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는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해. 남들 일할 때 못하고 있다고 인생 망해? 아니, 남들이 일 못할 때 평생 일할 수도 있는 거야. 그 까이꺼 돈? 그동안 못 번 거 다 합쳐서 더 많이 벌 수도 있는 거고. 주인공! 네 인생을 주인공처럼 살아라!”


“아빠~ 그 말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그렇게 믿기엔 내 20대 중반부터의 인생은 암흑기였다고. 그 십 년이 넘는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지가 않는데, 미래가 밝을지 계속 어두울지 어떻게 알아? 아빠는 지금 천국에 있다고 너무 긍정적으로 말하는 거 아니야?”


“하하하~ 맞다. 그럴 수도 있지. 하하하~”


“아빠!”


아빠는 슬프지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안아주셨다. 그 포근함이 내 마음을 잔잔히 다스려 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 미래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너는 내 아들이니까 내가 더 잘 알지. 아빠 한 번 믿어볼래?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 믿어보고 아니면 그냥 때려치워.”


“응? 푸하하하하. 아빠~~”


나는 아빠의 개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귀여운 우리 아들, 사랑해~”



“아빠~ 나도! 나도오~ 오잉?”


꿈이었나 보다. 아빠가 환히 웃고 있었다. 나도 아빠가 있었지.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있었어. 그동안의 결핍이 가득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와우~ 시원해. 아빠 말대로 한번 살아볼까? 어제 뉴스 취재하는 것도 그렇고, 잘 모르겠지만 나더러 살인자 사신이라고 하니 뭔가 살 방도가 있을 것 같아!”


나는 오랜만에 개운한 느낌에 기지개를 켜면서, 긍정적인 느낌을 한번 붙잡아볼까 하는 좋은 생각이 오래간만에 들었다.

솔직히 부자할방구 일로 심신이 지치기도 했고, 어제 망태선배의 충격적인 선언으로 죽고 싶은 의지보다는 그저 커피 위에 동동 뛰운 얼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그랬어.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고. 날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희망을 걸어볼래. 앗! 코트?”


밤새 코트를 껴입고 잤던 걸 지금에서야 발견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보니 아이처럼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 녀석 참, 귀엽네. 헤헤.”


이불을 덮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을 거야. 그동안 죽는 것도 실패하고 경력직 살인자들에게 부탁해도 계속 실패했잖아. 이거는 죽지 말고 살아보라는 기회가 아닐까.’


나는 꿈에서 나타난 아빠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른 마음상태가 되어 일자리들이 올라와있는 ‘사람오’ 앱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띠링~’


그때 스마트폰의 알림이 울렸다. 집주인아줌마의 문자였다.


‘오전과 오후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아요. 저녁 즈음에 들릴게요.’


“아! 맞다. 오늘이 수요일이지? 괜찮아. 아줌마께 사정해서 일 빨리 구하면 조금씩 드린다고 하면 돼. 아줌마가 갑자기 나가라고 하시면 고시원에라도 가지 뭐. 집이 다가 아니니까. 괜찮아.”


‘띠띠링~’


‘…3개월 동안 가스비를 체납으로 이 시간부로 가스가 끊깁니다.’


‘……전기가 끊깁니다.’


“흠흠. 괘… 괜찮아. 일단 돈을 벌면 돼. 어쨌든 얼굴은 씻어서 다행이야.”


오래간만에 편안함을 누리던 마음에 작은 돌멩이들이 퐁당퐁당 던져지면서 약간씩 동요가 일어났다. 하지만 나에겐 ‘사람오’가 있다. 앱을 켜자마자 무수히 많은 일거리들이 자기부터 클릭해 달라고 성화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결 나아진 기분에 제목들을 훑어보고 있는데 이게 웬 걸.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단순 사무직은 학력이 맞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몇 시간 남지 않은 회사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어봤다.


“아니면 손으로 만드는 거? 배달은 안 되고, 오토바이를 못 타니까. 물류업무? 엇! 이거 좋다.”


국내 온라인 최고의 커머스 기업에서 물류 작업하는 일자리가 떡하니 내 시선을 차지했다. 지원하려고 하는데, 주의사항이 있었다.


‘심혈관, 뇌질환 보유자는 지원불가. 만약 속이고 일할 경우 자사는 책임 없음.’


엊그제 가벼운 뇌진탕이 있었다.


“맞아. 아빠도 뇌경색이 있다고 하셨었지. 하아~ 패스으.”


씁쓸한 패스였다. 점심도 주고 회사와 집을 오갈 수 있는 대형버스도 대절해 준다는데 아까운 기회였다.


“아냐! 괜찮아! 내가 살인자 사신이라고 했으니까 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조회 수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서둘러 무엇을 찍을까 하다가 라면 먹는 걸 찍어보기로 했다. 찬장을 열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대로 라면 하나가 있었고 식어가는 냉장고에는 삼각김밥 네 개가 있었다.


“앗! 맞다! 가스랑 전기가 끊겼지. 하아~ 그럼 삼각김밥 먹는 것만 올릴까?”


라면은 내려놓고 삼각김밥 네 개만 놓고 스마트폰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거치대도 없고 뒤에 받칠 물건들이 없었다. 책에 받치면 자꾸 미끄러져서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에잇! 안 해! 안 해!”


‘띠링~’


‘사람오입니다. 지원하신 ㅇㅇ회사에서 안타깝게도 불합격하셨습니다.’


아까 지원한 곳에서 문자가 왔다. 정말 빨리도 왔다. 이별도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마음 정리가 잘 되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다. 불합격, 불합격이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한데, 오늘따라 낯설었다. 차올랐던 에너지가 점점 수직 하강하는 느낌이었다.


“뉴스, 그래! 뉴스를 보자. 살인자사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거야. 거기다가 댓글을 달면 날 알아주지 않을까? 배터리가 몇 퍼 없네? 모르겠다. 일단 봐봐.”


나는 삼각김밥을 한쪽에 치워놓고 배터리가 언제 꺼질지 몰라 얼른 영상을 켰다. ‘살인자사신’이라고 검색하니 ‘프리토크’에서 올린 뉴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경찰서에서 물어온 따끈따끈한 인터넷 프리토크 뉴스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면 놀라실 분을 소개해드리죠. 짜잔~ 그 이름도 유명한 우리의 영웅! 주인공 씨입니다……‘


“이게 어제 인터뷰했던 영상이 맞아. ‘안녕하세요. 제가 그 살인자사신 주인공입니다. 많이 궁금하셨죠?‘ 이렇게 쓰면 되겠지?”


영상의 조회 수가 30만을 달리고 있어서 댓글을 올리자마자 대댓글이 달렸다.


“엇! 벌써? 날 알아본 건가? 네가 살인사사신이면 난 살인자오신이다? 뭐라고? 네가 주인공이면 나는 주인이다? 뭐야!”


고개가 푹 숙여졌다. 에너지가 바닥을 찍은 것 같았다. 마침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다되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 하. 하. 하하하하하. 뭘 살아보겠다고. 꿈에 아빠가 잠깐 나온 거 그거 가지고 내 암흑기가 없는 게 돼? 애초에 희망을 갖은 내가 잘못이지. 뭐? 그동안 못 번 거 다 합쳐서 더 많이 벌 수도 있다고? 주인공! 네 인생을 주인공처럼 살라고? 나에게는 허락이 되지 않았나 보지. 나는 이렇게 살다 죽을 운명인가 보지! 으아아아악! 으엉엉엉.”


또 폭풍 같은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하얗게 되었었는데 다시 까맣게 물든 것 같았다. 기대했다가 보이는 현실에 도저히 나아지는 낌새가 들지 않아 드는 실망은 이로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아프고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다. 지하 100층을 뚫은 느낌이다.


“으엉엉.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아빠는 왜 나와 가지고 날 이렇게 만들어. 도움도 주지 못할 거면서 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냐고. 으엉엉엉. 이제 끝이야! 끝이라고!!!!!”


나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천사가 직접 나에게 와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울면서 방구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방법을 이제는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밧줄을 잡고 천장 등에 묶었다.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위로 올라갔다.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괜찮아. 어차피 내 인생은 보이지도 않았어. 이제 그만.”


‘아냐! 아빠를 만나야지.’


“아니? 아빠를 만나지 않아도 돼. 더 이상 살 자신이 없단 말이야!”


두 눈을 감고 한 발로 의자를 밀려고 했다.


‘안 돼! 아빠가 한 말 잊었어? 사랑한다고, 한번 믿어보라고 하셨잖아.’


“몰라! 사랑이 밥 먹여줘? 믿음이 돈 벌게 해 주냐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잖아. 걱정하는 척하지 마. 제발 좀 그만해! 그마안! 안 되겠다! 나야, 나 좀 죽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결국은 의자를 밀어버렸다. 두 발이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내 몸뚱이는 어떻게든 살겠다고 버티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죽음을 향해가고 있어서 그만 좀 숨이 끊어졌으면 했다. 고통이 짧길 바랐다. 주위의 백색소음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다 왔나 보다.




“똑똑똑~ 청년 있어? 똑똑똑~ 미안한데, 좀 열고 들어갈게!”


‘띠띠띠띠’


“어머! 어머! 청년! 청년! 이게 무슨 일이야! 도와줘요! 도와줘요!”


내 눈이 눈물을 통과해서 보인 장면은 이러했다. 집주인아줌마가 놀라 뛰어오시며 내 두 발을 잡고 소리치고 계셨고, 어떤 건장한 남자들이 뛰어와서 날 번쩍 들어 올렸다.


“켁켁켁켁”


다른 남자분이 천장에 있는 밧줄을 어떻게 풀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내 몸뚱이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득했던 소리와 시야가 아주 선명하게 보이면서 고통의 끝에서 다시 지옥의 현실로 돌아옴을 체감했다.


“주인공 씨!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이랬어요! 우리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괜찮으십니까?”


아저씨와 아저씨의 동료분이셨다.


“으흑흑흑. 살아갈 희망이 없어요. 다 끝났다고요. 저같이 능력 없고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은 죽어도 돼요. 방해하지 마세요!”


나는 다시 밧줄을 매려고 울면서 의자로 올라가려고 했다.


“제발 좀! 바보 같은 생각 하지 말아요! 제발 좀 정신 차리라고요!”


아저씨가 나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며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계셨다.


“흑흑흑. 청년, 그러지 마~ 내가 독촉해서 그래? 정말 미안해.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나도 먹고살아야 되니까 그런 거야. 제발 죽지 마. 으흑흑.”


“아줌마. 으흑흑흑”


집주인아줌마가 날 안고 우셨다. 나는 아줌마의 따뜻한 말 때문인지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한 삼십 분이 지났을까,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주인공 씨, 이제 좀 괜찮으세요?”


“…네. 면목이 없습니다….”


"아주머니, 밀린 집세가 얼마죠?”


“9…90만 원이요.”


“제가 내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일 년치를 내주고 싶지만 그럴 형편은 되지 않아서요. 앞으로 삼 개월 치 해서 180만 원 드릴게요.”


“아저씨!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아줌마! 저 그냥 집 나갈게요.”


“주인공 씨, 절 살려주셨잖아요. 주인공 씨 아니었으면 저 그곳에서 독으로 죽었을 겁니다. 살려주신 값보다 작지만 일단은 받아주세요.”


“청년, 미안해. 집세를 안 받고 싶은데, 요새 나도 벌이가 없어서 받을게. 미안해.”


“아… 아니에요. 아줌마…….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밀린 집세만 내주세요. 저 어차피 삼 개월을 더 살아도 먹을 것도 없고 가스도 전기도 다 끊겨서 못 살아요. 여기서 돈을 더 주신다고 해도 그 돈이 끊어지면 살 방법도 없고요. 저같이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은 이러나저러나 죽을 수밖에 없어요.”


나는 아저씨의 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때 아저씨의 동료분께서 천천히 입을 여셨다.


“그렇지 않아도 제안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제안이요?”


아저씨 동료분의 눈빛은 다소 진지하셨다. 그래서 더 이상 뭐라 말은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태권도를 하셨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할 급이면 실력은 말 안 해도 알 것 같고요. 경찰 특채로 추천하려고 합니다. 단, 조건이 하나 붙죠.”


“경찰이요? 저 부상당해서 국가대표 선발전에 떨어졌어요. 이제는 한물갔어요.”


“아니던데요? 김망태의 체육관 CCTV를 보던 와중에 실력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앗, 그건….”


마음에서 흘러나온 자연발생적인 흐름에 몸을 맡겼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하겠다. 해도 실력이라고 말씀하시겠지.

갑자기 벌어진 일에 얼떨떨했다.


“조건은 경찰학교를 다니면서 경찰시험을 보는 조건입니다. 경찰 일을 제대로 하기 전까지 생활비와 그 외 수당은 지급될 거고요.”


“네에? 저한테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자할방구와 망태선배의 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두 가지 일로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여기에 있긴 하지만 쉽사리 믿기지가 않았다.


“아~ 저 일단은 살리려고 이런저런 말하시는 거죠? 안 그러셔도 돼요.”


“저 청년, 잠시 밖에 좀 나와 볼 수 있어? 찾는 사람들이 있어.”


집주인아줌마는 내가 진정된 걸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시려다가 다시 들어오셔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저를요?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의아해하며 아줌마와 아저씨와 아저씨의 동료 분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따끈따끈한 인터넷 프리토크 뉴스입니다. 드디어 우리의 영웅, 살인자 사신 주인공 씨가 나오셨습니다. 영광입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아…, 네…네.”


어제 지나가면서 만났던 프리토크 리포터와 카메라맨 그리고 구경 온 많은 사람들이 집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행이군요.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는 감격에 겨워 미칠 것 같습니다. 네? 뭐라고요? 시청자 여러분도 그러시다고요? 이 주인공 씨 덕분에 저희 뉴스가 여러분께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 앗,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주인공 씨, 영웅이 된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저는 영웅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시민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래요. 잘난 것도 없고요. 에휴.”


“시청자 여러분! 이 겸손함 보셨습니까? 주인공 씨, 혹시 저희 프리토크 영상에 올라온 주인공 씨가 나오신 영상들을 보셨나요?”


“네, 네. 하나 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댓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안녕하세요. 제가 그 살인자사신 주인공입니다. 많이 궁금하셨죠?’ 이 댓글로 갑론을박이 나뉘었습니다. 정말 주인공 씨가 맞나요? 아니면 주인공 씨를 시샘한 누군가가 이렇게 올렸을까요?”


“앗! 그건….”


나라고 말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마이크를 든 리포터나 카메라맨이나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마치 ‘다 이해해 줄게’라는 눈빛 같아서였다. 날 언제 봤다고 이해까지. 어리벙벙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차피 다 사라질 거품이다. 연예인들도 드라마나 영화가 성공하면 탑스타가 아닌 이상 인기가 한두 달 바짝 올랐다가 다른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하면 사그라드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날 궁금해한다고 해서 이게 나의 인생을 피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뭐 이건 중요하지 않죠. 호호호. 주인공 씨, 혹시 살인자들과 싸울 때 무섭진 않으셨던 가요?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한 사건들을 해결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그리고 육각형 살인사건에 대해서 소탕한 기분은 어떠신가요? 주인공 씨처럼 죽을 것 같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비결을 알려주세요!………”


“이제 그만하십시오.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주인공 씨 맞으시죠?”


“아~ 네.”


프리토크 리포터가 질문세례를 퍼부을 때, 인파를 헤치고 독수리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다가왔다. 맞다. 독수리. 아빠의 제복이었지.


“이아율 살인미수 기억나시죠? 금빛대학교 사건이요.”


“아~ 네.”


“그때 추첨권에 이름 쓰신 것도 기억나시고요?”


“네.”


“신사장 살인사건 이후 병원에 남겨두신 메모를 비교해 보니 일치하더군요.”


“아~ 네. 그런데 그게 왜……?”


“신 형사! 갖고 와!”


긴장이 되었다. 경찰들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떡하니 앞에 있고 취재하는 언론사도 있으니 어디로 피할 수도 없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을까? 수갑을 가져오라는 말일까?


“여기 있습니다!”


“주인공 씨!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좋은 일은 빨리 알려드려야죠. 다들 박수!”


‘짝짝짝짝~’


직급이 높은 사람이 신 형사라는 사람에게 받은 물건을 나에게 주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나는 자동적으로 함께 허리를 굽혀 인사하다가 무슨 영문인지 뒤를 돌아봤는데 아저씨의 동료분께서 찡긋하며 윙크를 하셨다.


‘아저씨의 동료분이?’


받고 보니 표창장과 경찰학교 입학서류였다. 그리고 경찰특채 서류도.


“왜 저에게 이런 걸.”


“살인자들을 일주일 만에 다 잡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하죠. 생활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도 고민해 본 겁니다. 절대 거절하지 마세요. 저희도 인재와 함께 일하고 싶으니까요. 허허허.”


“인… 인재요? 저는 능력이 없어요. 이러다가 경찰 일을 잘 못해서 잘리면 어떻게 해요? 자신이… 없어요…. 흡.”


그동안 쌓인 실패경험 때문에 이런 좋은 일이 있는데도 나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날 보면 책임을 질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괜히 어쭙잖게 도전했다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한숨이 나오면서 고개가 푹 숙여졌다.


“무슨 소리십니까! 각자 재능이 있는 거죠!”


이 말은 맞다. 각자 재능은 있지만 이 재능으로 실패를 수십, 수백 번 겪었을 때는 두려워지기만 하고 다시는 이 재능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인공 씨, 실패가 아니에요. 지금을 위한 과정일 뿐이에요. 사람의 인생은 복잡하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잘리진 않겠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돼요. 뭐,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삶을 찾아봐도 되고요.’


“하…하지만 나중에 그만둔다면 다른 삶을 어떻게 찾아요. 무… 무서워요….”


‘왜 미리 한계를 지어요? 지금도 봐 봐요. 죽을 것처럼 살았더니 뭔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때가 되면 지금의 주인공 씨와 같을까요? 그때의 주인공 씨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미래는 미래에게 맡길 일이에요.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죠. 안 그래요?’


“현재….”


마치 멈춘 시간 속에 나 혼자만 살아있는 타임슬립처럼 나는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가 온몸과 마음에 가득 차고 넘치는 것 같았다. 기쁨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이 위로의 존재가 누군지 알고 싶었지만 이미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요~ 자신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상처 주지 말아요~’


“어린아이? 포기?”


생각해 보니 나는 나를 죽이려고만 했을 뿐, 위로나 응원 따윈 하지 않았다. 믿어주지 않았다. 미안했다.


“미… 미안해. 미안. 음. 솔직히 자신은 없어. 그런데 나… 나도 잘 살고 싶어. 맞아. 이제라도 나도 좀 살아보고 싶다고. 남들처럼 아니지만 나도 나만의 삶을 살고 싶어. 더 이상 나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그래요! 주인공 씨, 주인공답게 살아요!’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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