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죽여주세요!
-경력자 살인자를 찾습니다-

9. 40세 형! 잘됐다. 나 좀 죽여줘! 제발~

by 이야기소녀

9. 40세 형! 잘됐다. 나 좀 죽여줘! 제발~



“여러분! 믿기십니까? 한 달 전부터 전 세계에 수출을 시작한 무지개 회사의 소시지 라면 다 아시죠? 우리나라 최고의 라면 회사이기도 합니다.”


“글세 무지개 회사 대표 신사장 씨가 살인자였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무지개 대표 신사장, 나이는 71세라고 합니다. 이 대표와 회사의 실체는 연쇄살인자이면서 살인자들을 양성하는 기업이었죠. 저희가 소시지 라면을 사 먹는 돈으로 살인자들을 먹여 살린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으윽~ 소름이 돋습니다. 어떻게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입니다.”


“자~ 내부를 보십시오. 현장 검증을 한 검찰 쪽에서 보내준 자료입니다. 일명 살인공간이라고 하는 곳을 보면 어디 많이 보던 곳과 같지 않습니까?”


“애앵? 경복궁이잖아요! 기와집도 있고요. 헉! 나무관들이 쌓여있네요. 아이고 무서워라.”


“그렇습니다. 무지개 회사 대표 신사장의 저택 10층에는 살인공간이 꾸며져 있었는데요. 자신만의 변태적인 취향으로 만든 것 같다고 프로파일러 권이용 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충격이에요. 집이 10층 정도면 왜 살인을 저지른 거죠?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다이아몬드 수저잖아요!”


“살인자들의 뇌구조를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세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살인자 DNA라고도 할 수 있죠. 그리고 무지개 회사의 측근을 통해 자산상황을 조사해 보니 파산 직전이라는 충격적인 실태가 밝혀졌습니다. 수출을 타개점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만, 회사 내부와 개인이 불법적으로 취득한 금전이 거대하다 보니, 파산이라는 지경까지 간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더 살인에 치중한 것 같습니다.”


“아니, 나이를 71세나 먹었으면서 할 일도 정말 없네요.”


“부가적으로 설명드리면, 신사장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선조 시절을 그리워하며 과대망상으로 자신을 왕으로 지칭하고 공범들을 돈으로 움직여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와서 노비로 삼고 살인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거에 묶여있는 왕 같아요. 왕도 아니지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공범 비서진들의 혐의 또한 ……….”




또 병원이다. 으윽, 머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것도 그럴 것이 딱딱한 나무 막대기로 몇 번이나 세게 맞았으니 아픈 게 당연하지. 다행히 검사 결과는 가벼운 뇌진탕이란다. 내 머리벽이 얼마나 단단하고 두꺼웠으면 그렇게 머리를 강타당했는데 가벼운 뇌진탕이라니.


“환자분, 머리 통증은 어떠세요?”


“아! 네~ 윽~ 조금 아프긴 하지만 견딜만합니다. 헤헤.”


“그래도 안정을 취하셔야 돼요.”


“네! 감사합니다.”


“큰소리도 내지 마시고요.”


“네~”


오랜만에 가만히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쬐다가 심심해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속보가 나오길래 다른 채널들을 다 틀었지만 다른 곳들도 다 똑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프로그램 ‘아침거실’을 틀었는데, 역시나 어제 일들에 대해 짚어보며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리에 좀 민감해진 것 같았다. 텔레비전 소리가 약간 크게 들리는 것 같기도. 머리에 있는 소리 관련 신경들이 놀라서 소리에 민감해진 걸까? 아까 간호사에게 ‘네!’하고 말했을 때 머리가 약간 ‘띵’한 느낌이 들었긴 했다. 눈도 크게 떴다가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 같아서 게슴츠레 뜨고 베개에 등을 기대어 편한 자세를 취했다.


‘아저씨는 천국에 가셨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살았겠지? 죽었을까?’


“몸은 좀 괜찮아요?”


“엇! 아저씨 동료분! 많이 나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어제 나를 업고 응급실로 돌진한 아저씨의 동료분이었다.


“괜찮나 하고 왔어요.”


“아~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의 동료분은 차분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 앞에 의자를 놓고 앉으셨다.


“너무 놀라지 말아요. 내 친구가,”


“돌아가셨죠. 으흡. 죄송해요. 저만 살아서.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 울지 말고. 살았다고. 살았어!”


“네? 진짜요? 윽~”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기쁨에 큰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래요. 국가정보원들은 어떤 상황이 올지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해독제를 가지고 다니거든. 장기에 손상은 좀 갔지만 휴식하고 나면 별 무리 없이 퇴원할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 말라고 알려주려고 왔지.”


“오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사람들도 모두 다 살았고. 하지만 이미 부패한 시신들은 국과수에서 부검하는 중입니다.”


“네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저씨가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사셨다니. 감사함이 절로 들었다.


“그럼 나는 일 때문에 가봐야 해요. 나을 때까지 푹 쉬어요.”


“감사합니다.”


아저씨의 동료 분은 내 손을 꾸욱 한번 잡아주시고는 병실을 나가시며 문을 닫으셨다.


“나도 퇴원을 해야 하는데. 병원비도 없고.”


“아! 그리고 병원비는 당연히 다 지불했으니까 걱정 말고요. 정말로 가요!”


혼자 중얼거리고 있자니, 아저씨 동료분이 문을 여서서 말씀하시고 다시 문을 닫으셨다.


“앗. 다 들으셨나. 참 민망하다.”


나는 아얘 누워버렸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아무런 색도 무늬도 없었다. 나도 아기 때는 저랬겠지. 언제부터 쪼들리며 산 걸까. 저런 살인자들은 돈도 잘 벌고 자기네들 목적도 성취하려고 잘 사는데, 나는 일반시민이고 나쁜 일도 꿈꾸지도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왜 이 모양일까. 세상에 적합한 사람이 살인자라면 살인자들만 살게 하지, 나 같은 피해자들은 왜 살게 했을까, 꿈을 꾸기에는 늦은 나이라면서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어린 나이라 그러고, 이 모순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걸까. 다시 하얀색이 되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아우~ 정신 차려. 생각해 봤자 뭐 해. 답은 여전히 안 나와.”


괜히 혼자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 좀 하자. 고통도 싫어하면서 왜 스스로를 고문해.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위에서 소시지 라면을 먹으면 동화 속에 있는 기분~’


프로그램 ‘아침거실’이 끝났는지 뒤이어 광고가 나왔는데, 어떻게 된 게 무지개 회사 소시지 라면 광고였다.


“저 소시지 라면 다시는 먹나 봐라. 부자할방구가 개발한 라면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좀 꺼려져.”


이제는 소시지 라면 광고노래도 흥얼거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보라색 미치광이, 부자 할방구, 살인자, 사이코왕 신사장. 이름이 신사장인 것도 웃긴다. 나이는 70세나 넘어가지고 그 나이가 되면 불쌍한 사람들 도우면서 베풀 법도 한데, 자신의 욕구를 채우겠다고 잘난 척하던 모습이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불쌍한데, 한편으로는 정말 싫다. 나이 값 좀 하세요! 부자할방구 감옥에 들어가서 반성 좀 하시라고!”


부자할방구를 떠올리니 다 나은 것 같고 전투의지가 불타올랐다. 나 왜 이래?


‘띠링~’


반가운 소리. 오랜만에 스마트폰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옷장을 열어보니 다행히도 내가 부자할방구 저택에 갈 때 입고 갔던 옷이 그대로 있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스마트폰이 있었다.


“망태선배다. 아! 맞다. 오늘 체육관으로 찾아가기로 했었는데. 어떻게 하지?”


‘오늘 보기로 했지? 나 기다리고 있을게. 꼭 보자. 인공이 못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꼭 보고 싶어. 고민 상담할 것도 있고 말이야. 저녁 시켜놓고 있을게. 취소하면 안 돼!’


문자였다. 선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나? 거의 없었다. 내가 상담하면 했지, 선배가 상담한 적은 손에 꼽았던 것 같다. 그래. 가벼운 뇌진탕이라니까 괜찮을 거야. 저녁 9시라고 했었지.

나는 스마트폰에 있는 알람을 8시로 맞춰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쉴 수 있을 때 쉬자. 선배에게 은혜를 갚자.




‘일어나요~ 일어나세요~’


“으흠~ 벌써 8시?”


밖은 이미 어둑어둑 해진 상태였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스마트폰의 시계를 보았다.


‘꼬르륵~’


아침부터 내리 잤는지 몸이 깨자마자 밥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너무 본능에 충실하시다.”


병실을 둘러보니 꽃바구니와 큰 봉지와 과일바구니가 있었다. 왠지 아저씨의 동료분 같았다. 나는 봉지에 든 빵들과 미니 냉장고에 든 음료를 꺼내 배를 채웠다.


‘선배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해야 할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도 될까? 내가 죽고 싶어 했던 날들도? 선배는 분명히 위로해 줄 거야. 하지만 선배가 힘든 상태인데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어. 돈도 아직 안 갚은 상태니까 선배가 돈 얘기를 할 수도 있겠는 걸. 휴우~ 마음먹고 가자.’


돈을 생각하니 빵이 목구멍에서 막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움직이려면 먹어야 했다. 먹던 건 마저 욱여넣고 음료수로 빵을 녹여 소화를 시켰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코트까지 야무지게 챙겨 입고 병실을 나서기 전에 혹시나 다시 오실 것 같은 아저씨의 동료분을 위해 메모를 남겼다.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빵도 잘 먹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주인공 드림-’




“주인공! 짜식! 이게 얼마만이야! 연락도 겨우 되고 아주 비싸!”


병원에서 대략 사십 분시 간 거리인 선배네 체육관에 도착했다. 체육관 내부는 파란 매트가 깔려 있었고, 한쪽에는 하얀 도복과 파란 도복이 뒤섞여 걸려있었다. 그동안 배가 조금 출렁 나온 선배는 환하게 웃으며 날 보자마자 안았다.


“망태선배! 미안! 사정이 있어서.”


“알지. 알지. 일단 피자나 먹자.”


파란 매트 중앙에는 피자 두 판이 신문지 위에 놓여 있었다. 파란 매트 위에 앉으니 옛날 태권도 하던 생각이 났다.


“그때가 좋았지. 태권도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는데.”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아. 너 부상 아직 안 나았어?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으응. 선배! 돈 말이야….”


“돈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먹자.”


“으응.”


선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대학시절에도 나에게 밥을 많이 사주고 베풀어준 선배였다. 이런 선배에게 돈이나 빌리고 갚질 않았으니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 지금 와서 미안하다고 하면 그게 믿길까? 나 같아도 거짓말 치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그래. 괜히 선배가 보기에 가식적인 태도는 보이지 말자.’


나는 선배의 속도에 맞춰 피자를 먹는데, 선배가 집은 피클이 신문지 위로 떨어졌다.


“너도 뉴스 봤어?”


“무슨 뉴스?”


“육각형 살인사건. 무지개 회사 대표가 그 주범이었다면서. 이거 오늘자 신문인데 아주 난리 났어.”


“…응. 봤지. ‘아침거실’에도 나오더라.”


“듣자 하니 대표네 마당에 금으로 만든 그네가 있다던데 이제 무지개 회사 망하면 금 그네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억 단위로 팔리겠지? 우와~”


선배의 이런 표정도 여전했다. 경제적인 면에서 예민하던 선배. 베풀기도 베푼 선배이지만 돈에 대한 욕심도 대단했다. 그러니 나와 2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도 40세에 떡하니 태권도 학원 하나 차리고,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지. 국가대표라는 목표보다는 돈을 선택했던 선배였다.


“선배는 이미 부자잖아. 그 나이에 누가 이렇게 성공해. 선배니까 가능하지.”


“하긴. 내가 쫌~ 하하하. 그러기에 너랑 내가 국가대표 선발전 제안받았을 때 내가 그랬잖아. 네 형편에 국가대표 말고 돈을 모으라고. 나랑 같이 했어봐. 너도 이미 태권도 사범으로 성공하고도 남았어. 봐봐~ 내가 모델 아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게. 다 이 재력 덕분이야. 너는 대학 때부터 되지도 않을 꿈만 좇더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하는 강아지 같았어. 인정은 나정도 돼야 받는 거지. 안 그러니?”


이럴 땐 가만히 있어줘야 한다. 그래서 선배 주변에는 친구가 없다. 나는 하도 많이 얻어먹기도 했고 혼자 다니는 선배가 안쓰러워서 같이 다니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러다니.


“으응. 그나저나 선배 고민이 뭐야? 걱정돼서 왔어. 물론 돈 안 갚아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돈? 신경 쓰지 마. 다 해결됐어. 내가 너한테 뭘 갚으라고 하겠니. 학부 때도 일방적으로 너한테 많이 샀는데 지금 와서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갚으라고 하면 내가 쪼잔한 거지.”


“…으응. 고… 고마워.”


“고민은 말이야. 에휴.”


뭔가 큰 고민인가 보다. 선배가 피자를 내려놓았다. 나도 손을 떼자 선배가 피자를 한쪽으로 치우면서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말을 꺼냈다.


“회원 수가 자꾸 늘지 뭐니. 체육관을 더 늘려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물론 나는 잘 해내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걱정이 들기 마련이잖아. 그리고 내 아내가 외국으로 진출한다네? 아내 앞길을 생각하면 이해해줘야 하는데 멀리 살면 걱정되잖아. 그리고 내 세 살배기 아들이 영재래. 이제 돈 많이 들어갈 텐데 정말 걱정이야. 나중에 커서 우리나라 천재가 될 수 있잖아. 되겠지. 누구 아들인데. 내 판단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 나 대단하지 않니? 아무튼 너무 고민이었어. 어떻게 생각해?”


“아….”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본인과 본인 가족이 잘 나간다는 게 고민이라니. 그럼 나 같은 놈은 어떻게 살라고.

부자할아버지, 그러니까 사이코왕은 과거에 갇혀 사는 미치광이 왕이었다면, 이 선배는 현재 자기가 왕이고 주인인 잘난 척 쟁이였다. 증세가 학부 때보다 증세가 더 심각해진 것 같았다.


“너도 놀라서 말을 못 하는구나. 정말 고민이 크지? 아휴. 너같이 돈 없어서 빌리는 애들은 잘 몰라. 이런 삶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모를 거야. 너한테 이런 말하는 내가 바보지. 아! 또 고민이 있어. 이건 네가 이해할걸? 너도 관련된 일이거든.”


“내가? 혹시 태권도 학부 관련 사람들에 대한 일이야?”


“아니~ 그럴 리가~ 그쪽이랑 교류 끊은 지 한참 됐는데 뭘. 나를 도와주던 분이 계셨거든? 이 체육관을 차릴 수 있게 자금도 대주시고 모델 아내를 만날 수 있게 주선도 해주시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공부도 가르쳐주시던 분이셨는데, 그분이 하루아침에 망하셨어. 이제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모르겠다. 아휴~ 체육관은 어느 정도 흥했고 아내랑은 잘 지내고 있으니 경제적인 문제는 상관없지만, 그 공부가 내게는 엄청 중요했거든. 아휴~ 흡.”


선배의 표정은 우울해 보였다. 항상 자신감에 넘치고 공부보다는 태권도와 돈에 집중하던 선배가 ‘공부’를 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믿고 따르는 분이었나 보다.


“그럼 공부를 가르쳐주는 다른 분을 찾으면 안 돼?”


“안 돼. 안 되는 게 아니라 없어. 그런 분과 같은 분을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어. 으흑.”


선배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선배 괜찮아? 그래도 지금 잘 살고 있어. 현재 삶에 충실해서 살다 보면 선배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잖아. 너무 슬퍼하지 마~”


나는 학부 때 이후로 오랜만에 선배를 위로했다. 조금은 은혜를 갚은 걸까.

선배를 위로하려고 손을 올려 선배의 어깨에 가져다 대려는 데 달빛에 비친 파란 매트 부분에서 어떤 희미한 문양이 보였다.


‘육… 육각형?’


잠시 손은 갈 길을 잃었다가 ‘잘못 본 거겠지’하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으흑. 고맙다. 내가 너한테 위로도 받아보네. 으흑흑.”


“잠시만. 휴지 가져올게.”


나는 일어나 둘러보니 구석에 있는 탁자 위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를 발견했다. 걸을 때마다 푹신푹신해서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지만, 왠지 마음 한편은 무겁고 찝찝했다. 선배를 바라보니 훌쩍이고 있어 고개를 돌려 조용히 파란 매트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었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까 육각형 문양이 달빛에 비춰 잘 보였다. 휴지를 한 뭉치 뜯어 선배에게로 다가가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도와줬다는 분이 그 사이코왕? 설마. 아닐 거야. 선배가 나쁜 짓 하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고맙다. 오늘 인공이 덕분에 속이 좀 풀리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못하는 말을 다 하니까 속이 시원해.”


“아… 아냐. 선배가 내게 해준 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선배 기운 내!”


“그래….”


“선배! 나 이제 집에 가야겠다. 컨디션이 좀 안 좋네. 미안해. 다음에 또 올게.”


선배를 보면 불쌍해 보이는데, 왠지 분위기가 쎄 했다. 나는 마치 음식을 먹다가 체한 느낌처럼 속이 턱 막힌 것 같아 ‘그만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인공아~ 미안. 너무 잡아뒀지. 시간도 이렇게 늦었네. 미안하다.”


“아니야~ 선배. 내가 미안하지. 선배!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선배가 미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어서 나는 손을 흔들며 애써 웃어 보였다. 뒤돌아 입구로 걸어가려는데, 내 오른쪽 어깨 위로 무언가 휙 하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뭐… 뭐지?’


앞을 바라보니 시멘트벽에 뾰족한 표창이 꽂혀있었다. 조선시대에나 볼 법한, 자객들이 가지고 있던 표창.


“안 돼! 내가 널 어떻게 그냥 보내니? 그분이 실적에 따라서 금 그네도 준다고 했단 말이야. 그게 얼만데!!!! 다 너 때문에 망했잖아!”


“… 뭐?”


“우어어어어~”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때려 맞은 듯했다. 선배는 울부짖으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눈빛이 약간이 아니라 많이 돈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사이코왕이 그랬었다. 내 주위에 자기 신하가 있다고. 신생아라고.


“설마 그 신생아가 망태선배?”


“내 왕이 나에게 부여해준 이름을 네가 함부로 불러? 네가 뭔데 내 왕을 그렇게 만들어!”


망태선배가 울부짖다가 갑자기 일어나자 배가 출렁출렁거렸다.


“선배, 그게 아니라 그 인간이 날 초대하고는 죽이려 해서, 아 몰라, 어쨌든 그렇게 된 거야. 내 잘못이 없다고. 난 오히려 피해자야.”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망했다고.”


선배는 자세를 잡더니 남아있는 표창을 또 날리려다가 빗나가자 내게 달려와 발차기를 했다. 선배의 발차기는 쇠발로 소문이 나 있어서 한번 맞으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배가 사이코왕의 신하였다는 충격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벙 쩌 있었다.


‘오른쪽 뒤로~’


순간 어떤 소리가 들려와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몸 오른쪽을 뒤로 뺐더니 선배의 발차기를 피할 수 있었다.


“엇!”


“이 자식! 내 발차기를 무서워하던 자식이 어떻게! 운이겠지. 다시 받아라!”


‘점프!’


나는 그 소리와 동시에 뒤로 굴렀다. 선배는 얼굴 찌르기 기술을 들어가는 척하면서 발차기를 하려다가 갑자기 내가 점프하는 바람에 헛발질을 하게 되었다.


“아니!!!”


선배의 얼굴은 빨갛게 변했다. 그 뒤로 미세하게 들리는 소리 덕분에 선배의 공격을 다 피할 수 있었다.


‘신기해. 대체 누가 가르쳐주는 거야. 아무튼 감사합니다.’


“헉헉! 안 되겠어.”


선배는 숨을 거칠 게 내쉬더니 피자를 놓았던 파란 매트 밑에서 무엇을 꺼냈다.


“엇! 총? 그러고 보니 선배도 살인자였지.”


총을 보자마자 왠지 반가웠다. 망태선배가 총 쏘는 걸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왕년에 태권도 실력이면 정조준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잠깐, 나 피해야 돼? 아니면 맞아야 돼? 살아야 돼? 죽어야 돼? 산다고 살 수 있을까? 죽어야 하면 여기서 죽어야 해. 총을 만날 기회는 잘 없어. 그래도 아저씨가 살았으니 나도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하지.’


‘당연히 살아야지. 살아라~ 주인공.’


그 미세한 음성에 물결이 밀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살라고요? 그런데 저 살아도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걸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야! 주인공! 무섭냐? 넋이 아주 나갔구먼. 내가 이걸로 사람을 몇이나 죽인 줄 알아? 경쟁하는 놈들 다 죽였어. 그러고도 내가 안 잡힌 이유는? 내 하나밖에 없었던 그분이 나를 지켜주셨기 때문이야. 내가 그분의 원수를 갚고 금 그네를 가져갈 거야. 가져갈 거라고! 하하하하.”


“선배, 미쳤어.”


“그래, 나 미쳤다. 너는 안 미쳤냐? 그런 쌀 한 톨도 나오지도 않는 인생을 살면서 살겠다고 돈 빌려서 갚질 않고 능력도 없고, 그렇게 사니까 어떤 여자가 너랑 결혼하고 싶겠니? 미래를 봐봐. 너는 쭉 그렇게 살 거야. 희망 없이.”


‘맞다. 굴곡진 이벤트를 겪었다고 해서 갑자기 내 생활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인생경험만 쌓이지 돈을 버는 데는 쓸모가 없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네 개를 나누어 먹다가 또 굶어야 하고, 집주인아줌마께 밀린 집세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냥 도망쳐야 할 판이다. 나 같은 놈은 여자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겠지. 나중에 고독사 하느니 지금이 낫다.’


“맞아. 선배 말이 다 맞아. 잘됐다. 선배, 나 좀 죽여줘! 제발~.”


“이제야 현실감각이 돌아왔니? 잘된 일이로구나. 거기 가만히 서 있어. 네 소원을 들어주지. 내 소원이기도 하고 말이야.”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차라리 잘 됐다. 선배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쁜 사람을 만나서 나빠진 거지, 원래는 잘난 척을 해도 착한 선배였다. 선배에게 은혜를 갚는 동시에 나는 더 이상 생활의 염려로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일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타앙~’


총 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와 함께 파란 매트 위에 철퍼덕 쓰러졌다. 난 이제 드디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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