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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Oct 08. 2024

게임을 하겠다는 불타는 의지 (ft. 열쇠 복사)

어릴 적 거짓말을 했다가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던 이야기를 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몰래 아빠가 주무실 때 자동차 키를 챙겼던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똑같이 아빠가 주무실 때 열쇠를 챙겼다. 또? 이번에는 무슨 열쇠를 챙긴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파트에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옮긴 우리 가족은 단순히 거주하는 장소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바로 아빠가 직장을 퇴직하시고 자영업의 길을 걷게 되신 것이다.

아빠는 배즙, 도라지즙, 붕어즙, 흑염소즙 등을 만드는 건강원 일을 시작하셨다.

1층에는 아빠가 하시는 건강원과 미용실이 있었고, 2층이 우리가 사는 집이었다.

지금처럼 20~30만 원으로 컴퓨터 본체를 뚝딱 맞출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아빠는 고가의 컴퓨터를 구매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쓰던 컴퓨터를 1층 가게에 가져다 두는 선택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이제 편하게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게임을 하러 1층 가게에 가는 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부를 위해 컴퓨터를 쓰는 것이면 모를까

각종 즙을 중탕한 열기로 뜨거운 1층.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아빠 앞에서 게임을 켜면 아빠는 말씀하셨다.



그런 거 할 거면 와서 배나 좀 씻어라.



아빠 앞에서 컴퓨터를 켜면 붙잡혀서 건강원 일을 돕게 된다.

게임을 하지 않아도 인터폰이 울려 받아보면

내려와서 일 좀 도우라고 말씀하셨으니 말 다 했다.

매일 PC방을 가는 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웠기에

무언가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건강원 열쇠를 복사하자!



평소 계획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나였지만

이것은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일이었다. 





■ 건강원 열쇠 복사 계획안  

    아빠는 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종종 피곤한지 주무시고 계셨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 앞에는 열쇠방이 있다.  


    집에서 열쇠방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열쇠방 아저씨는 종종 문을 잠그고 외출한다.  



계획을 세우고 나서는 일사천리였다.

명확한 디데이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기회를 엿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집에 오면서 열쇠방은 열었는지,

아빠는 건강원에 계시는지를 확인하는 것 말이다.


열쇠방이 문을 닫았거나,

아빠가 건강원에 계시면 이었다.

몇날 며칠을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기회가 왔다.


열쇠방은 열었는데 아빠가 건강원에 안계신다.

나도 모르게 계단으로 2층을 오르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계단을 올라와서 마주하는 것은

신발장이 있는 현관이었다.

현관에는 몹시 낡은 미닫이 중문이 버티고 있다.

반투명 에칭유리가 끼워진 묵직한 목제문.

밀고 닫을 때마다 언제나 시끄러운 문이다.



유리 너머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아빠가 주무신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 소리에 깨실 정도면

어차피 꽝이라 생각했기에 그냥 열었다.



- 드르르륵!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고 조용히 집으로 들어왔는데

아빠가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열쇠도 눈앞에 보였다.



조용히 열쇠 꾸러미 앞에 쪼그려 앉아서

건강원 열쇠만 고리에서 빼냈다.



조용히 집을 나서자 마자 열쇠방을 향해 달렸다.

만약 열쇠방 아저씨가 그 사이 문을 잠그고

외출하셨다면 다시 달려가서 열쇠를 도로 끼워놓아야 했다.



성공했다.

아저씨는 계셨고, 나는 열쇠를 복사할 수 있었다.

원래 열쇠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빠 열쇠 고리에 잘 걸어두었다.

이제 드디어 게임을 할 수 있다.



모두가 잠들어야 몰래 게임을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먼저 잠을 자러 들어가도 밤 12시에는 알람을 맞춰두었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면 게임을 하는 것이고

못듣고 계속 자면 그냥 푹 자는 것이고

아쉬울 것은 없었다.



알람이 울린다.

화장실 가는척 거실로 나와본다.

모두가 잠들었다.

주머니에 열쇠를 챙긴다.



망할 시끄러운 중문을 여는것도 요령이 생겼다.

문을 살짝 밀어서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손을 넣어 문을 잡은 후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살짝 들어서 여는 것이다.



평소라면 탓탓탓탓 소리가 울리는 계단에서도

발뒤꿈치부터 닿도록 살금살금 걸어내려가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계단을 전부 내려와서 현관문 여는 것도 쉽다.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확 열면

작은 바람에도 소음을 내는 2층 창문들이 운다.

이럴때는 어깨를 문에 밀착하고

살짝만 체중을 실어주면 그냥 열린다.





평소에는 새벽 3시 30분 알람을 맞춰두었다.

밤 나들이를 끝내고

다시 2층으로 자러 올라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알람 맞추는 것을 잊은 그 날 바로 걸렸다.



쾅! 쾅! 쾅!




컴퓨터 옆 통유리를 두들기는 소리에

놀라서 으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더니 어느덧 시간은 4시 반.

새벽 기도를 가시기 위해 내려오신 아빠가

불 꺼진 가게 안이 번쩍거리는 것을 봤다.



새벽 기도가 늦을 새라 이따 이야기하자는 말씀에

나는 얼굴이 흑빛이 되어 2층으로 올라갔다.



하교를 하고 엄마도 돌아오신 저녁시간

어떻게 새벽에 1층에서 게임을 할 수 있었는지

내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는

'허, 참나'를 연발하셨으나 크게 꾸짖지 않으셨다.

건강원 열쇠도 빼앗지 않으셨다.



다만, 이제 아빠는 멀리서도 원격으로

나에게 가게 일을 시키는 것이 가능해졌다.

열쇠가 있는 자의 숙명이었으리라.



그 시절 내가 깊은 새벽, 잠도 마다하고

몰두하여 시간을 쏟은 대상은 게임이었다.

게임을 하면 즐겁고, 가슴이 두근두근 했거든.



이제 두 명의 아이들의 아빠가 된 나는,

여전히 깊은 새벽, 잠도 마다하고

몰입하여 시간을 쏟는다.



그 대상은 글쓰기.



내가 해온 것이 있기에 아이들에게

아빠는 원래부터 잘했다고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며

무언가에 몰두하게 된다면



몰두를 넘어 몰입에 이르기까지

그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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