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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그저 잊는 것이 아니다.

명의를 빌려준 죄, 신뢰를 잃은 슬픔, 그리고 용서의 이유

by 유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말은 애초에 도끼를 믿었기에 그만큼 당황스럽고 더 아픈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내 발등을 찍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인생을 살면서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겪는 게 났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람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아본 경험이 있다. 2013년 7월 이번 일은 바로 그 얼얼한 뒤통수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군대를 전역한 나는 2학년 2학기로 복학했다. 이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된 나는 지인들을 통해 어떤 형을 알게 되었다. 작은 핸드폰 대리점을 운영하던 형과 자주 밥도 먹고, 이곳저곳 놀러도 다녔더니 많이 친해졌다. 하지만 밥만 먹고 놀기만 한다고 신뢰가 쌓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고민을 상담했을 때 진심 어린 위로와 조언을 받았고 형도 자잘한 가게 일을 내게 부탁하며 도움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형은 내게 참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3학년 2학기 즈음이었을까 수업 중에 형에게 전화가 왔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연락을 해보니 멋쩍고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로 부탁 좀 할 수 있냐며 내게 물었다. 작은 핸드폰 대리점의 수익구조는 잘 모르기에 형이 하는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그 당시 형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 곧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데 가입자가 조금 모자라는 상황이라 내 명의를 한 번만 빌려줄 수 있냐'는 말이었다. 다음 단계는 또 무엇이며 명의는 왜 빌려달라는 것인지 조금 거부감이 들었지만 형은 설명을 이어갔다.


내 명의로 핸드폰을 1대 가입해서 개통하고 3개월만 유지하다가 해지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발생하는 요금과 단말기 할부금은 형이 전액 부담하고, 추후 해지하면 단말기는 미사용 중고폰으로 팔아서 나머지 할부 원금을 해결하는 것으로 나에게 불이익이 없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평소 자잘한 도움도 받았기도 하고 형이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을 보니 형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마음을 먹고 나자 별일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그저 해피콜이 왔을 때 내가 가입하는 것이 맞다는 말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간단하다고 생각한 행동이 불러올 일을 나는 알지 못했다.




4학년 1학기 어느 날, 통신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요금이 연체되었다는 문자였다.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을 개통한 지 3개월이 지났기에 형에게 해지를 요청한 것이 벌써 몇 개월 전이었기 때문이다.



응?! 그런 연락을 받았어?
분명 해지했는데, 전산 오류인가 봐
형이 해결할게! 걱정하지 마~!



나는 바보같이 전산 오류라는 말과 그것을 해결하겠다는 말을 믿었다. 나와 관련된 일인데 어떻게 스스로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생각할 때 군대도 다녀오고, 다음 학기면 4학년을 졸업하는 녀석의 행동이 이런 것을 보면 지혜는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한 학기의 대학생활이 더 남아있을 줄 알았던 내 삶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명의를 빌려준 사건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점심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 도화선에 불이 붙었고 결국 폭탄이 터진 것이다.



안녕하세요. 서울신용정보 여신채권추심팀입니다.



보이스 피싱이라 생각하여 넘기려 했으나 핸드폰 요금 미납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몇 개월 전에 받았던 문자 메시지가 생각났고 팔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내가 갚을 돈이 있으며, 돈을 갚지 않으면 신용 상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신용은 한번 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떨어지기 전에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옥상에 올라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며 어떤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바로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하여 통신사별로 가입된 목록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였다. 마음을 졸이며 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나는 절망했다. 내가 형에게 얘기해서 가입한 SKT 1대 이외에 KT에 2대, LG U+에 1대가 추가로 가입된 사실이 나왔다. 모자란 데이터로 인해 늘 와이파이를 찾아다니던 나였는데, 내 명의로 가입된 핸드폰이 다섯 대라니!


채권추심 전화는 사람의 피를 말린다. 화도 내보고, 억울함을 호소도 해보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신들은 그저 리스트를 보고 전화를 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내가 화를 냈던 사람과 억울함을 호소했던 사람, 알겠으니 그만 전화하라고 사정했던 사람들 모두가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었다. 하루에 한두 번은 전화가 왔다. 그때마다 나는 사무실 옥상으로 올라가 전화를 받으며 내 급여는 얼마고, 급여일은 언제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내가 갚아야 할 돈은 대략 4백만 원. 생전 써보지도 못한 아이폰도 2대나 개통해 놓은 덕분이었다.


어쩌다 형과 연락이 되었다. 내가 동의한 것은 1대뿐이었지 않냐고 윽박질렀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지만 일단 참았다. 미안하다고 본인이 다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형의 말을 끊었다. 지금도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내 이름으로 개통해 놓은 핸드폰 4대. 미사용 중고로 팔아서 해지할 때 단말기 할부금 정리하면 된다고 했던 그 가개통 폰이나 가져오라고 형에게 말했다. 다른 지역 창고에 보관 중이어서 당장은 줄 수가 없단다. 사무실 옥상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노랬고,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취업해서 벌은 첫 달 월급의 대부분을 신용정보회사에 상환했다. 월급 타면 고전적이긴 해도 부모님 내복 사드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전화에 시달리며 둘째 달도 셋째 달도 그랬다. 친구들에게 돈도 버는 녀석이 어째 한턱 쏘지도 않냐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께서 이런 상황을 아셨다.


아버지께서 수습을 시작하자 일들은 거짓말처럼 술술 풀렸다. 피해자는 나 하나가 아니었고 다른 지역 창고에 보관 중이라던 단말기들은 이미 팔아먹고 없었다. 내가 신용정보회사에 달달 볶이면서 상환한 금액은 내게 책임 소지가 있기에 돌려받지 못하였고 남아있던 채무는 모두 형에게로 넘어갔다.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채권추심 전화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다 끝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가 모르시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채권추심 전화를 매일 받으면서 사는 것이 할만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나 화도 내보고 호소도 했지 시간이 지나자 '죄송하다, 언제 급여가 들어오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시길 바란다'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내 안에 무언가가 조금씩 바스러지는 느낌은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취업계를 제출하고 출근하면서 나도 뭔가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올라가지 말라는데 올라가고, 뛰지 말라는데 뛰다가 다치곤 하는 아들이었다. 장난도 많이 치고 정말 부모님 속 썩이는 아들. 가지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 없다는데 우리 집 나무는 가지라고는 꼴랑 2개밖에 없는데도 그중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흔들림을 겪어야 했던가. 그렇기에 이제는 아버지께 신뢰를 드릴 수 있는 그런 아들이 되고 싶었는데 내가 다 망쳤다.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얘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서 명의를 빌려주고 앉았냐고 타박하실 법도 한데 명의는 함부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시고 일찍 말하지 왜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었냐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할머니 댁 침대를 태워먹고 돌아오던 차 안이 생각났다. 아버지 눈에는 놀란 내가, 겁먹은 내가, 고생한 내가 보이시는구나.


나는 이제까지 용서할 대상과 기억은 동시에 놓아줄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용서했다고 잘못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용서할 수 있겠지만, 잊을 수는 없다.'
'잊을 수는 있겠지만, 용서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용서했다면 그 용서가 필요했던 원인이 기억으로 남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망각의 힘을 빌려 아픔과 괴로움을 담아둔 상자가 남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용서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용서했다고 용서한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용서가 필요한 잘못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일어나 버린, 바꿀 수 없는 일들이 더 이상 나와 내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도록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내고, 부는 바람에 날려 보내듯 정말 그냥 놓아주는 것. 아버지가 보신 것은 칠칠치 못하게 명의나 빌려준 내 모습이 아닌, 걱정으로 핼쑥해진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아버지 덕분에 나도 이를 뿌득 뿌득 갈았던 그 형을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용서하게 되었다.



용서는 그저 잊어주는 일이 아니라는 걸, 당신은 언제 어떤 계기로 알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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