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니라 수익률

by 마리혜

한때는 부자가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육비나 각자 독립해 있는 아이들 생활비 정도는 걱정하지 않고 살고 싶었다. 당시엔 공무원 박봉으로 연년생 아이 셋 키우는 시골 살림은 늘 빠듯했다.


생활비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교육비였다. 더군다나 이곳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시청 소재지가 있는 시내로 나가야 했다. 외지에서 온 입학생들은 2학년까지만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었다. 3학년이 되면 야간 자율학습 후에 버스 운행 시간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통학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고시원 형태의 숙소를 마련해야 했기때문에 생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비용뿐 여유가 없었다. 아들에게 일일이 엄마 손이 온전히 미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 용돈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한창 자라는 아들이 부모 곁을 떠나 있을 때, 돈이 부족하면 자칫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잘 해내리라 믿었다.


연년생 두 딸과 아들이 대학생이 되니까 사정은 또 달라졌다. 대학생 셋이 각 다른 지역의 사립학교에 진학하면서 각자 원룸에 살게 되었다. 2학년을 마치면 신입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나와야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부모의 책임은 또 만만치 않았다. 이럴 때 장학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은근히 야속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용돈 정도는 해결했지만, 그러느라 대학 생활도 맘껏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출가하게 될 딸들을 위한 작은 부모 마음이었다. 우리 한 가족은 연년생 아이 셋의 각 다른 지역의 대학 생활로 한 가족 넷 집 살림이 되었다.


만 17세가 되어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하나둘씩 부모 곁을 일찍 떠나 독립한 셈이다. 시골 생활에서 경제생활에 보탬이 될 만한 일을 하기엔 쉽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돈 버는 일이 뭐 없을까 하고 이런저런 일에 기웃거리기도 했다.


2007년 어느 날, 우연히 주식 차트가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이거다 싶어 그때부터 전문가 강의를 들으면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주식 관련 책을 탐독하고 전문가 강의 듣기 위해 서울 강연회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노트북에 주식프로그램을 심어놓고 공부한 대로 푼돈 모으듯이 우량 주식을 모았다. 3년 후 멋지게 안타를 날렸다.


끝났다고 하던 자동차 주를 배운 데로 저점에서 흔들릴 때마다 조금씩 모아갔다. 익절 당시 150퍼센트의 수익으로 처음 매입가로는 300퍼센트 이상의 수익이었다. 남편에게는 중형 SUV로, 나에게는 하이브리 승용차로 멋지게 선물을 할 수 있었다.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믿을 만한 1등 기업 종목을 잡았다. 몇 종목을 같이 들고 오르기를 기다려도 속수무책이었다. 믿을 만한 한 종목만 들고 나머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특히 잘하는 것이 손절이었다. 버릴 때는 과감히 버리고, 믿을 땐 흔들림 없이 끝까지 믿었다.


믿은 종목은 아주 편안하게 계좌에서 몇 년 동안 잠자고 있었다. 잠자는 공주처럼 그것도 아주 깊이깊이. 그리곤 잊었다. 잊고 있는 동안 자유로웠다. 글 쓰고 노래하는 아티스트 덕질도 했고, 덕질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했고, 드디어 종이책 출간도 했다.


내 주식이 잠자는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드디어 잠자던 공주가 부스스 잠 깨고 일어나 지금 한창 예쁜 짓을 하고 있다. 드디어,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100퍼센트 수익을 오늘 안겨주었다. 2010년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휘청거릴 때마다 조금씩 모아 왔던 것이 오늘 같은 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의미를 두는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다. 믿고 기다린 주식이 100퍼센트 수익을 낸 것에 의미를 둔 것이다. 처음 매입가로는 300퍼센트 수익이며 현재 100퍼센트 수익을 초과했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기회로 삼고 모았지만 한편으론 생각만큼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소액 투자라도 나에겐 작다고 할 수 없는 위험한 투자였다. 한편으론 크게 흔들릴 때는 심장이 오그라들 것처럼 부들부들 떨릴 때도 있었다.


이 번 수익률은 생애 두 번째 일이다. 100퍼센트 수익률은 돈이 아니었다. 믿고 기다린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견딘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소액으로 주식 투자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운 것이 있다.

독서를 한다.(자기 계발, 심리학 등

신용 매매하지 않는다.

잦은 매매를 하지 않는다.

테마주에 마음 두지 않는다.

손절은 과감히

몰빵 금지

시장이 흔들릴 때, 컴퓨터 끄기


꼭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하니까 주식 투자가 두렵지가 않았다. 쏠쏠한 투자라도 공부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몇 가지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 공부하면서 투자를 한다면 우리처럼 소액 투자자도 주식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


앞으로도 주식 투자는 이어질 것이다. 백수라고 끊임없이 놀려대는 남편에게 멋있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돈이 되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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