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부처
손끝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가시가 박혀도 온갖 신경이 모조리 곤두서고 아프다. 어떻게든 빼내지 않으면 1mm도 안 되는 가시에 집중돼 버린다. 돋보기로 봐야 겨우 보이던 작은 가시 때문에 곰기라도 하면 산만한 덩치라도 통증을 견디기가 무척 힘들어진다.
하물며 정신 에너지를 관리하는 뇌가 참기 힘든 통증에 시달린다면 어떻게 견뎌야 하나. 정말 참기 어려웠다. 3일 동안 지속된 두통으로, 친구들의 모임의 감사와 행복한 순간들을 온전하게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외롭고 우울했고 속은 울렁거렸다. 심장 박동 수는 간헐적으로 불규칙하게 뛰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뇌에 무슨 큰 병이라도 생긴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애써 감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통약 한 알 털어먹으면 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누라 행세를 보면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 무심한 남편이 괘씸했다. 눈치 없는 내 곁의 부처라도 이 말 저 말 무심히 툭툭 던지는 것도 괜스레 미워지기까지 한다. 그게 뭐 그리 참을 일이며, 자존심 상할 일일까마는 이번처럼 갑자기 뇌가 흔들리고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시달리니 모든 게 예민해지고 또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다.
아직은 할 일이 많은데, 이제 겨우 마음먹고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아직 그러기는 이른데. 턱도 없는 시나리오를 썼다 지웠다를 수만 번도 더 한다. 만약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고 내일은 오늘의 결과라니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최선을 다해 잘 살았다면 받아들여야지. 혼자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나 자신이 서글퍼졌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잠시 자판기를 두드리는 순간, 몽롱하게 번져가는 뿌연 안개가 온몸을 감싸고 지나갔다. 몸이 휘청거렸다. 머리를 잡고 비틀거리며 세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울 속에 초점 없이 괘슴츠레한 눈과 마주쳤다. 거뭍하고 초췌한 얼굴이 낯선 듯 바라보고 있었다. 곧장 따뜻한 물로 때리듯 연거푸 물 마사지를 했다. 겨우 조금 살아난 기분이었다. 아, 살았다!
“혹시 뇌가 이상 있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꼭 3일 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두통이 시작됩니다.”
“배도 아프고, 울렁거리고, 입맛도 없습니다. 기분도 매우 좋지 않습니다.”
연일 지속되는 두통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증상들로 삶의 질이 떨어져 버렸다. 평소엔 무심코 지나갔을 소소한 증세가 매 순간 두통의 산물로 느껴졌다. 공황장애가 이런 건가? 조용한 집안에서조차 답답함을 느꼈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해지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태블릿과 책만 챙겨 도망치듯 집을 나와 카페로 향하곤 했다.
“땡땡님의 뇌는 전혀 이상이 없고요. 기타 증상은 두통과 관련이 없어요.”
“ 나이에 비해 건강관리 아주 잘하는 있는 겁니다.”
“며칠 전에 바꾼 알약 한 개, 이게 원인이라면 3일 약 드시고 그때 봅시다.”
“매년 건강 검진해서 미리 체크하면 되고, 그러다 몸이 아프면 치료하면 되고!”
“뭘 그렇게 미리 사서 걱정하십니까?”
미리 예약하고 카페를 다녀오는 길에 병원에 들렀다. 원장님은 다소곳이 앉아 처방을 기다리는 내게 시원하게 한 방 날린다. 그 한방은 주사 한 방을 더해서 3일 동안 고여있던 통증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3일 동안 괴롭혔던 두통의 원인은 매월 정기적으로 먹고 있던 약 한 알이 문제였다. 처방전에 바꾸었던 그 한 알의 약은 100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부작용이 나에게 해당되었던 것이다.
원장님은 30년 동안 한 곳에 자리 잡고 변함없이 동네 주치의로서 다정하고 환자의 지나친 걱정과 두려움을 안심시켜 준다. 말 한마디로 환자에게 안정감을 주시는 분으로 소문이 나있다. 아플 때 축 쳐진 몸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발걸음도 가볍고 씩씩해졌다. 무심하기 짝이 없던 남편이 언제부턴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차에 오르는 내게 씩 하고 웃어 보인다. 그리고는 말없이 동네 한 바퀴 드라이브 시켜주더니 걱정했다는 말을 넌지시 던진다.
어제는 지옥 같은 두통이 깜쪽 같이 사라지니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울하지도 않고, 속도 울렁거리지 않는다. 먹는 것이 고역이었던 밥상 앞에서 입맛도 되살아났다. 간사스러운 내 몸의 애착이 이렇게 깊을 줄 몰랐다. 늘 마음 공부하고 고요히 하려고 해도 언제나 하찮은 번뇌에 휩쓸려 두둥실 떠다닌다. 괜한 남편만 원망했다. 표현은 못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43년 살고도 모르다니.
3일의 나를 반성하며 오늘의 새 아침을 맞았음을 감사히 여기며. 내 곁에 부처에게 다정히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무수히 많은 감사와 기쁨의 순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