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진짜 속마음

by 마리혜

우리 동네는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나처럼 신중년이든, 그 위아래쯤의 연배들은 배추 전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본가에서도 명절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려지는 음식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친다. 배추 전은 그 밖에 결혼식이나 생일상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최상의 맛을 느끼기에는 역시 김장용 가을배추로 전을 부쳤을 때다. 그때가 가장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을 풍긴다. 그래서 가을걷이와 김장을 끝내면 전을 부쳐 먹을 배추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김장용 비닐이나 고무 통에 잘 보관해 둔다. 특히 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나 출출할 때 배추 전을 부쳐 먹으면 여느 간식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처음에는 배추 전에 특별한 맛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기름맛과 배추 맛뿐인 배추 전을 왜 좋아할까. 콩기름에 부친 기름지고 밋밋한 나물 맛에 열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는 김장 김치를 길게 찢은 다음 갠 밀가루에 묻혀서 부쳐주셨다. 형제 많은 우리 집에서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그 입맛에 길들여진 나는 배추 전의 참맛을 오랫동안 몰랐다.


10년쯤 지나고 나니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그 맛에 물들어갔다. 지금은 우리 엄마가 해주시던 김치전이 오히려 추억의 맛이 돼버렸다. 요즘처럼 두통으로 입맛이 사라졌을 때는 식욕을 돋우기에 안성맞춤이고, 한 끼 요기로도 충분하다. 한 겨울 추운 날에는, 저녁 반찬이 부실해도 배추 전 두어 장이면 밥상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저장해 둔 배추 한 포기를 꺼내서 배추 전을 부쳤다. 지글지글, 따닥따닥. 노랗게, 더 누렇게 꾸덕꾸덕 배추전이 익어갔다. 배고픈 참인데 밥상에 올려지기 전에 내 입으로 먼저 가져가고 싶었다. 그 순간 침이 돌아 입안에 가득했다. 따뜻할 때 우리 어머니도 가져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생각하면서 어머니께 전화드리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김치찌개에 족살과 두부를 넣고 바글바글 끓였다. 이참에 그냥 드실 수 있게 밥도 한 그릇 퍼서 담았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남편에게 어머니 가져다 드리라고 요청을 해도 끝내 들어주지 않는다.


“당신이 갖다 드려. 난 싫다.”

아뿔싸! 자기 엄만데 이럴 수가. 진짜 야속했다. 식기 전에 입씨름할 시간 없이 구시렁거리면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때까지 날씨도 차고 귀찮아서 저녁을 안 드셨다고 하시면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마침 잘 됐다면서 맛있게 먹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나 마음이 짠한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혼자 저녁 드시게 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다녀와서 밥상을 차리면서 구시렁거리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한 말씀하신다.

“나보다 당신이 드리면 엄마는 더 좋아해.”

생각해 보면 그 말도 맞긴 하다. 그렇다면 감사하지. 남편의 그 말이 진실일까 하고 살짝 의심이 갔지만 믿기로 했다.


“나는 배추부침개가 제일 좋다.”

“안 그래도 배추부침개가 먹고 싶었는데, 참 잘 먹었다. 고맙다.”

우리 어머니 그 말씀에 더 죄송한 마음이 드는 밤이다. 더 자주 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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