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사람

경상도 남편의 이중성

by 마리혜

외출하고 돌아오니 아침에 널었던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개어 있다. 운동복과 바지. 티를 갠 솜씨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모서리가 반듯하게 잘 맞춰졌다. 양말은 손바닥으로 정갈하게 눌러서 주인에 따라 크기에 맞게 접어 놓았다. 해병 대원의 내무반 옷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오와 열을 제대로 딱 맞게 접어 놓았기 때문에 바로 제자리에 넣어두면 되었다. 이런 솜씨를 발휘할 이는 우리 집에 사는 딱 한 사람이다.

청소를 게을리하는 나에 비해 유난히 깔끔쟁이 남편은 간혹 잔소리하면서도 뭐든 솔선수범한다. 빨래 널기와 개는 것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잔소리도 노랫소리로 받아들이고 감수하는 편이다. 오늘따라 옷가지를 잘 개어 둔 것을 보고 옛 생각에 잠시 젖었었다. 어쩌면 남편의 흉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함께 이쯤 살고 보니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산 세월이 추억이 되어 미소가 번진다.

40년 전,작은 딸이 백일 무렵, 큰 딸은 돌을 갓 지난 연년생이었다. 당시에는 두 딸을 돌보는 것만 해도 힘이 부쳤다. 워낙 손이 깔끔한 남편 덕분에 기본적인 살림 외에는 대부분 두 딸만 돌보면 되었다.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면, 널고 개는 것은 물론이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남편 몫이었다.

빨래는 줄과 끝을 맞춰서 반듯하게 널어서 말린다. 아기 기저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기저귀는 갤 때는 끝을 잡아서 지그재그로 부드럽게 당겨서 접는다. 그런 다음 자로 잰 듯이 다시 접어서 개어 놓으면 마치 기계에서 쏙 빠져나온 것처럼 쌓아 놓는다. 나도 나름대로 잘 개어놓는 편인데도 남편이 한 것에 비하면 절대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무뚝뚝하기가 짝이 없는 경상도 토박이 아저씨라도 아기 기저귀 개는 것만큼은 천생 여자였다. 이웃집 새댁이 놀러 와서 부러운 듯이 좋겠다며 놀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픽 웃고는 천연덕스럽게 하던 일을 태연하게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자기 일처럼 늘 도와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나도 역시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분리수거나 청소등 도맡아 하고 있는 편이다.

작은 딸이 백일 지나고부터 분유를 먹기 시작했는데, 밤에 아기 분유 수유는 남편이 거의 도맡아 했다. 딸들이 아기 때부터 무척 온순해서 우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그래서 순둥이 딸들과 교감이 잘 되고 예뻐했다. 특히 딸들하고 살뜰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아기 때 그 유대감이 지금까지 편하게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두 딸은 결혼하고 아들은 독립했으니 나이 든 남편 말고는 손이 갈 일은 그다지 없다. 하지만 퇴직하고 유유자적 노후를 즐기는 남편의 삼시 세끼 챙기는 일은 아기 돌보는 일만큼 자잘한 일들이 많다. 그래도 소싯적 딸내미들 키울 때 도와준 일 생각해서라도 세끼 밥은 정성을 내려고 한다.

두 식구 살아도 온전한 대 자유는 못 누린다. 하지만 적당한 집안 일거리와 틈새로 브런치와 SNS 글쓰기를 일삼아하고 있다. 기회만 되면 도서관 대신 카페로 달려가 독서도 즐긴다. 이만하면 호사를 누리는 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부지런함은 여전하다. 이렇게 틈만 나면 집을 비워도 분리수거를 아주 철저히 한다. 오늘처럼 빨래도 예쁘게 개어둔다. 그래서 잔소리를 좀 한다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쯤이면 잔소리도 노랫소리로 생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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