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옆의 남편이 제일이지.
일상이 늘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대하는 사람이 남편이다. 내가 먼저 깰 때는 어둠에 갇힌 거실에 실루엣으로 드리워진 어렴풋한 그림으로 먼저 만난다. 이따금씩 조용한 숨소리만 생존을 알린다. 자신만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각자 공간을 활용한다. 그것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배려였다.
그 배려는 아침마다 눈이 마주칠 때 다정한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했다. 반복되는 인사지만 통창 너머 햇살이 건네는 인사만큼 따사롭다. 그대에게 잘 잤냐고 묻고 나 오늘도 그대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대 마음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뜻으로 초인종의 의미도 담겨있다.
“굿모닝! 성불하세요!”
그대의 표정은 오늘도 역시 한결같다. 인사는커녕 아직 덜 깬 게슴츠레 바라보는 삼각형 눈꺼풀. 입만 실룩거리실 뿐 그 삼각형 눈초리도 리모컨에 가져간다. 지난밤 못다 본 메이저 리그 테니스 경기 결과가 더 급하다. 좋은 결과가 나야 비로소 웃음을 만난다. 그제야 나는 남편이 응원하는 선수에게 손뼉 치고 장단을 맞춘다.
매번 순위에 밀려나도 괜찮다. 어제와 같이 지난밤 잘 잤고, 오늘도 무탈하게 보내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같으면서 감사할 또 다른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 아주 작은 것에서도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또 감사히 여기기 때문이다.
셋째인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기숙사로 떠났을 땐, 두 딸도 이미 대학 진학해서 각자 독립했었다. 홀가분해진 집 분위기는 살림만 하던 촌 아낙에게 열정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 여러 가지 취미 생활로 교류가 많아지고 인간관계가 다양해졌다. 경제 활동에도 참여하고 보니 활동 영역이 커졌다.
그때는 몇 가지 취미 생활로 하루가 무척 짧았다. 퇴근하고 취미 생활의 미팅이 있는 날은 남편이 저녁 식사를 혼자 해결할 때가 많았다. 뭔가를 시작하면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작은 시골 마을에서 활동적인 취미 생활은 어머니의 걱정을 낳게 했다.
“야야,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나?”
우리 어머니 성품으로 그러실 만했다. 구순의 가까워도 경로당 가시는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 텃밭 농사지으시면서도 틈날 때마다 불교 경전 사경(필사)하며 시간을 보내신다. 43년 전 결혼하고, 출근한 남편을 대신해서 읍사무소에 가서 혼인신고하는 내게 새 새댁의 바깥출입을 염려하셨던 분이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남편은 집에 눌러앉아 공상하느니 사물놀이 장단에 춤추고 노는 게 낫다고 했다. 삼 남매 키우는 것도 그랬지만, 최소한의 학부모 교류 외에는 터놓고 어울리기 좋아하지 않는 나에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물놀이에 빠지고 색소폰에 빠져도 활동하는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니 어머니의 걱정을 피해서 날갯짓을 맘껏 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한때 추억이 돼버렸다. 어느 날 나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나와버렸다. 취미 생활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저녁 밥상을 퇴직한 남편 혼자 찾아 먹게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잘 차려진 밥상은 아니지만 내가 손수 차려주고 같이 앉아서 먹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밥상은 나만의 철학이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점심, 저녁 밥상은 같이 먹고, 또 따로 각자의 시간을 배려해 준다. 그 시간 짬짬이 독서하고 SNS에 감사일기를 쓰며 하루를 보낸다. 유일하게 같이 사는 사는 사람. 온 하루에 남편의 생각들로 가득 찬다. 집착이 아닌 감사할 것을 찾기 위해서다. 무심히 보냈던 시간을 되새김하면서 감사의 흔적을 애써서라도 찾기 위해서다.
순위에 밀려나도 감사할 일을 찾으니 너무나 많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같은 인사를 나누어도 내 곁에 든든하게 기댈 사람이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 아닌가. 이것은 감사 일기를 쓰고부터다. 꾸준히 찾고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웬 사랑타령이냐고 해도 이젠 부끄럽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서운한 타령을 해도 결과적으로 민망한 사랑타령이 되곤 한다. 서운해도 사랑이 더 많다는 증거겠지. 아이들이 커서 모두 제 짝 찾아가면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내 곁의 사람이 최고가 아닌가.
요구르트에 견과류를 곁들인 우리의 아침 식단은 간단해서 남편 혼자서도 잘 차려 먹는다. 조촐한 아침이지만, 한 달 전부터 내가 차려주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서 뺏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나는 한 술 더 떴다.
“우아, 깨끗이 잘 드셨네? 참 잘했어요!.”
은근히 싫지 않은 모양이다. 이 말은 11살, 8살 외손자들에게 늘 하던 말이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면 손자 할아버지도 이제 겨우 11살인 셈이니까 딱 어울리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