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익어가는 시간의 기록

by 마리혜

예순을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감추고 싶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고부터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자연스럽게 언급이 된다. 이때쯤이면 보통 그간의 삶을 돌아보고 중간 결산을 한다. 앞만 보고 달리며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토닥이고 미처 못다 한 꿈을 다시 펼치기도 한다. 직장을 은퇴하고도 사회생활을 더 왕성하게 하는 사람을 실제로 많이 본다. 그러니 예순은 참 애매하다. 경로 우대 나이가 가깝지만 절대 우대받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나온 삶이 시간 속에 녹아있는 연륜이 말해준다. 과거 세대와 비교하면 외형을 가꾸어 젊어 보여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말과 글이다. 예순이면 대화도 글도 익어 가는 것이 보인다.


요즘,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을 시도해 보고 이루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삶을 기록하고 보여주므로 또 누군가는 나처럼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글을 쓰게 한다. 예순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말이다. 예순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대체로 어려운 시기를 겪어온 터라 꿈을 펼칠 기회가 별로 없이 접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행여 그들과 함께라면 예순도 용기 있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평범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누가 봐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전문성이 있는 글이라면 걱정할 일이 없겠지만 일상적인 글이라면 식상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용기 내 본다. 예순의 특징이 또 꿋꿋한 맷집이 아닌가. 그냥 쓸 뿐이다.


처음 블로그 할 때만 해도 나이도 그렇지만 일상의 이야기가 노출되는 것도 상당히 불편하게 느낀 것도 사실이다. 통통 튀듯 반짝이는 글이 넘쳐 나는데, 예순의 글을 누가 봐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좋은 글 예쁜 글로 청춘의 자신감 넘치는 글을 만나면 소심해질 때도 있었다. 때로는 벽을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글문이 막혀 몸이 굳어버릴 때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아마 블로그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고 싶은 성급한 욕심일 수도 있었다. 그럴 이유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글을 쓰면서 나이를 의식하고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불편했다. 글을 쓰고 다시 읽으면 솔직한 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오히려 어색하고 부끄러운 글이 되었다. 어느 순간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을 지우니 글쓰기가 더 편해졌다. 그렇게 자신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던 내가 손주들의 이야기와 덕질하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불과 6개월 전 <다섯 손가락> 블로그 기초 강에 합류하면서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덕질 이야기를 마음 놓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도 쑥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젊은 친구들이나 할 법한 일을 이 나이에 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 쓰고 노래하는 이솔로몬 아티스트를 좋아하면서 그의 책과 노래를 통해서 숨은 끼가 발동하기 시작하고 삶이 달라졌다. 소위 말하는 예순에 연예인 덕질을 심하게 한 셈이다. 사실 그런 행위만 본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덕질을 통해서 나의 삶이 달라졌다고 하는 것은 본질이 덕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아티스트가 등단 시인이라는 점에 호기심이 발동하고 늦게야 시작한 덕질로 그의 출간된 책을 읽고 사유를 하기 시작했다. 사유한 시간은 글을 쓰게 했고, 쉽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획 출판도 예정돼 있다. 전공자도 아니고 꿈만 꾸었지 시도해 볼 생각조차 안 한 예순의 평범한 아줌마가 덕질로 작가가 되고 삶이 달라진 것이다.


덕질이 사전적 의미로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이라고 한다.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 미치도록 좋아해서 파고들어 꿈을 이루고 삶을 바꾼다면 이보다 신나는 일이 있을까.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상이 작가든 연예인이든 그의 성공 비법을 찾고 내 것으로 만들어 꿈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나는 평소 줄 곳 생각한 것이 있었다. 몸을 운신하기 어렵고 정신은 살아 있는 노인이 되면 하루 24시간을 무슨 수로 메우면서 살아갈까였다. 경로당에서 고스톱과 돈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었다. 덕질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거라고 생각했다. 글 쓰며 보내는 삶이야말로 평소 생각한 최대의 노후 대책이었다. 사는 동안 경제적으로 노후를 책임져주는 연금을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한다. 글쓰기 역시 매일 주어지는 시간을, 글을 쓰면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쓸 수가 있다. 아직은 청춘을 이야기하고 싶은 애매한 예순. 예순에 시작한 글쓰기로 지나온 삶을 기록하며 즐겁게 익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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