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이해서 객지에서 지내던 아들이 돌아오니 집안의 공기부터 달라집니다. 저녁 먹을 때는 밥상 머리에서 부자가 나누는 이야기에 웃음이 넘칩니다. 평소에는 인색하던 칭찬이, 집밥의 찬사를 말하는 아들과 주거니 받거니 쿵짝이 잘도 맞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족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증조, 고조할아버지 할머니. 사촌들까지 두루 온 가족을 살펴봅니다. 사촌들의 이름이 나올 때는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고, 함께 놀던 개구쟁이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박장대소합니다.
출산 과정부터 순탄치 않은 가운데 어렵게 태어난 아들은 우리의 소중한 선물이자 시부모님의 귀한 장손입니다. 당시에는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 산아 제한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두 자녀를 선호했기 때문에 셋째의 출산을 억제하려고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는 등 불이익이 주어졌을 때였지요.
사촌 언니들은 무슨 셋까지냐라며 야만인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듣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중임에도 수술을 감행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을 극복하고 힘들게 태어났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엄마로서 영문도 모르는 아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수술 등 치료 과정에서 태중에 있던 아들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모르고 연일 지속되었습니다. 모유 수유가 되지 않아 분유를 먹여야 했는데 그마저도 강하게 거부하면서, 태중에서 받았던 고통을 울음으로 호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아이의 심정을 엄마인 나는 느낄 수 있는데, 아빠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아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이론만을 앞세우고 아들에게는 곁을 잘 내어주지 못했어요. 다정함이 인색한 아버지였지요. 아들을 향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애틋한데 말이죠.
아이러니하게 여리고 섬세한 아이는 강하게 자라는 아들이기 전에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아들로,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겁 많은 아이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겁이 많고 작은 소리에도 잘 놀래던 아이는, 다행히 학급 친구들과 원만하게 잘 어울리고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로 바뀌어갔습니다. 무엇보다 밝은 성격으로 자라주어서 고맙고 기뻤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한테는 늘 조심성 있게 다가가던 아들이 스스럼없는 편한 부자지간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입대하는 날, 연병장에서 행사를 마치고 막사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흘렸던 아버지의 폭풍 눈물을 알고 나서였어요. 아마도 강함 뒤에 감춰진 사랑이 담긴 아버지의 진심을 알았던 거지요
휴가를 나오면 반갑다고 보고 싶었다고 아버지를 길게 안습니다. 귀대할 때 인사는 더 긴 포옹을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능청스러운 변화는 아버지도 바뀌게 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변함없는 포옹 인사로 부자지간의 정을 다집니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변화입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걱정도 웃으면서 받아들이며 여유롭게 이야기 나눕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아끼지 않고 합니다. 그렇게 아버지 걱정을 먼저 챙기는 아들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