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 년을 살아보니 삶이 이렇더라.라고 인생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실 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
교수님은 우리나라 1세대 철학자이시고, 철학 연구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평생을 학문 연구와 집필에 심혈을 기울이고, 100세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김형석 교수님 하면 또 한 분이 떠오른다. 안병욱 교수님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두 분께서는 방송에 함께 출연하실 때가 자주 있었다. 분위기도 닮은 느낌으로 마치 형제처럼 다정해 보였다.
왠지 모르지만 방송하실 때는 남다른 우정을 엿볼 수 있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안병욱 교수님의 영면 소식을 접하고 김형석 교수님이 떠올랐다. 남다른 우정으로 여긴 것이 지나치지 않았다는 생각은 든다.
책을 접하고 두 분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았다. 동년배고 실향민이다. 실향민이라는 단어만 봐도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 힘겨움은 실향민이라는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의 아버지도 북에 부모 형제를 두고 오신 분이었고, 곁에서 늘 봐왔던 터라 아픈 설움이 얼마나 큰지 조금은 알고 있었다. 1984년 이산가족 상봉 때,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란 여망으로 눈물로 지새우고, TV 앞을 떠나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따라 혹시 만날지도 모를 가족을 찾기 위해 온종일 여의도 광장을 헤매고 다녔었다. 광장의 벽과 바닥에 끝없이 펼쳐진 이산가족 찾기 현수막에는 실향민의 통곡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책에는 탈북한 실향민으로서 겪은 고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하시면서도, 그랬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대한민국을 조금은 더 걱정하면서 살아야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혜택을 너무 많이 받고 살았기에 나라를 위해서라면 더 큰 짐도 져야 한다고 하시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주에서 100년 인간의 삶이 티끌만큼도 안 되지만, 100세 시대라고 해도 아무나 넘을 수 있는 산은 아니다. 오랜 삶 안에는 행복한 일만 있지 않았을 터이다.
그럼에도 먼저 100세 인생을 사신 분으로서 늘 사랑과 행복으로 인생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울림을 선사해 주신다. 얼굴에는 늘 웃음과 지혜로움이 서려 있어 존경심이 커진다.
이 삼십 대부터 방송과 강연으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어서 늘 가까운 분으로 여겨졌었다. 아마 온화한 모습에서 풍기는 편안한 웃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올해 106세로 무척 연로하신데도 내 마음속에는 30년 전의 모습으로 머물러계시니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저자이신 김형석 교수님의 웃음은 해맑다. 어쩌다 TV 화면에서 웃는 얼굴이 나오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요즘은 화면으로 잘 뵐 수 없지만, 미소 띤 얼굴은 교수님의 전유물처럼 각인되어 있다.
사랑이 있는 마음은 아름다운 감정을 만들어준다. p54
모든 남녀는 인생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의 짐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인생이다. p58
<백 년을 살아보니. 저자 김형석>
신중년 더블드림의 추천 도서로 올라왔다.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서, 읽고 있던 책을 멈추고 첫 장을 펼쳤다. 책갈피마다 노철학자의 어진 미소가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책에서 교수님은 90 고개를 넘기면서는 본인을 위해 남기고 싶은 것은 없어졌다고 하신다. 오직 남은 것이라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하신다.
책을 읽다가 안병욱 교수님의 이야기는 왜 없을까 의문이 들어 목차를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견하고 먼저 읽어 보았다. 「내 친구 안병욱」에는 두 분의 역사가 울먹이며 그려져 있었다. 뭉클했다.
존경하는 교수님으로서 강연과 대담은 들었지만, 책은 거의 읽지 못했다. 후회스러웠다.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이제 막 읽는 시점에서 저자이신 김형석 교수님을 다시 새기고, 교수님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담고 싶다.
인생 후배들에게 다정하고 잔잔한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지혜로움을 책에서도 느껴보려고 한다.
들려주신 100세 인생의 지혜로움을 통해서 더욱 선명하고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