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선정아, 믿어
딸!
우리 큰 딸에게 진지하게 첫 편지를 쓰려니까 좀 쑥스럽구먼. 호탕하게 먼저 웃고, 호기심으로 읽을 딸을 생각하니까 웃음부터 나오는 걸.
그래도 가끔, 우리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 잘 통했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깊이 있는 딸의 진짜 모습도 발견했었어. 말은 안 했지만, ‘으음, 이런 진지함이?’라고 내심 좋았지.
딸은 어땠어? 너의 생각도 들어보는 시간이 있으면 참 좋겠다. 진지모드가 장착된 소통의 첫 시작이 될 테니까. 정말 기대가 돼.
엄마는 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있어. 각각 귀한 두 손주를 같은 해에 나란히 안겨 줘서 너무 좋았지. 너희들과 손주들은 최고의 선물이니까.
특히 성향이 다른, 너희 두 자매가 어쩌다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러도 조화롭게 잘 극복해 가는 것을 보면 역시 우리 딸들이다 싶어.
떨어져서 바라보면,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하고 믿고 따라주는 모습, 진짜 최고야. 외향과 내향 딸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조화, 정말 멋져. 큰 딸의 넉넉함! 엄마는 언제나 믿어.
딸이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한 살 터울인 여동생의 손을 서로 잡게 하고, 신용카드를 너의 손에 쥐여주던 일 생각나니?
너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겁이 많고 투정 부릴 줄도 모르는 순진한 딸이었어. 한 살 어리지만, 입은 천근인 듯 무거워도 할 말은 다 하는 동생과 둘만의 생애 첫 쇼핑을 보냈었어.
약간의 현금과 신용카드를 손에 쥐고, 버스로 한 시간 걸려야 도착하는 충주로 간 너희 두 자매의 용기는 대단했어. 10만 원 한도 내에서 맘에 드는 옷을 사 입고 돌아오는 미션이었지.(2000년 어느 날)
사실 걱정은 많이 했어. 처음으로 믿고 맡기는 엄마의 첫 도전이자, 신용카드로 경제 활동 시작하는 두 딸의 도전과 실험의 무대이기도 했어. 결과는 너무 좋았어.
둘이서 보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 네 동생은 옷에 관심이 많고, 색과 디자인을 조화 있게 살피고 고르는 감각이 어릴 때부터 뛰어났어지. 그에 비해 털털하고 보이시한 느낌의 너와 둘 사이에서 공통적인 노력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엄마가 관여하지 않아도 너희 둘은 서로 좋은 선생님이 될 거로 생각했어. 떨어져서 지켜보면, 어른이 돼도 변함없이 진행형이라는 것을 엄마는 느낄 수 있어. 너희 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단다. 엄마와 아빠는.
삶은 바람을 안은 가을 낙엽처럼, 늘 흔들리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 늘 한결같이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딸이 있어서 고맙고 든든해.
우리 만나면 너의 어릴 때 추억 많이 나누자. 각오하는 중이니까, 엄마에게 서운했던 점도 말해줘. 아, 기다려진다. 딸들과 함께 우리 셋만의 여유로운 시간, 언제일지 기대된다.
사랑해요. 큰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