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정이 들면 헤어나기 힘들기는 나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제저녁엔 오랜만에 외손자와 영상 통화하려던 것 시간을 놓쳐서 하지 못했다. 그 마음 알고 한 것처럼 10시에 영상 전화가 와서 의아했다.
기다리다가도 정작 늦은 시간에 전화가 오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덜컥 걱정되는 걸 보면 내 마음도 참으로 얄궂다.
요란스럽게 두 녀석이 나타나 큰 소리로 왁자지껄하게 인사한다. 화면 가득 얼굴을 내밀고 서로 하겠다고 깔깔댄다. 취침 시간이 늦어서 서둘러 누웠다가 할머니 보고 싶어서 전화했단다. 어느새 자라서 이 밤에 외할미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을까.
나는 첫 외손자가 태어나고, 또다시 작은 딸 손자가 태어나고 두 녀석이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까지, 하루의 대부분 손자 생각으로 푹 빠져있었다. 그 당시 절제할 수 없었던 손자 사랑은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런 면이 있었나 할 정도로 내가 아닌 것 같다.
아기는 어떤 모습의 얼굴을 하고 태어날까. 힘들게 얻은 아들을 낳고 기쁨의 눈물 흘리던 꿈만 같았던 그때의 일들은 먼 추억이 되고, 10달 내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내리사랑 하며 손자가 끔찍했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손자 보여달라고 조르기까지, 했으니, 잠시도 보지 않으면 혀에 바늘이 돋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거리가 멀어서 실제로 볼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실시간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서 늘 곁에 있는 것처럼 만날 수 있었다.
손자가 백일을 앞둔 그 무렵 저녁 9시쯤이었던 같다. 아기가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다며 울먹이면서 전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기 돌보는 일은, 엄마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잘하고 있었다.
언제든 도움 요청할 만도 한데, 스스로 잘 해내고 있는 딸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내심 친정엄마를 찾지 않는 딸을 야속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엄마가 당장 달려갈게."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갔다. 세 시간 걸려 새벽 1시에 도착한 엄마를 보더니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혼자 아기 보는 것이 하루하루가 살얼음 같아 복받쳤다고 했다. 엄마도 그와 같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자식 셋을 잘 키워주신 엄마가 고마웠다고도 했다. 물론 아기의 손가락도 갓난아기의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 후 딸의 말을 빌리면, 엄마는 워낙 털털하고, 취미며 일로도 열정 많고 바빠서 아기를 믿고 맡기는 것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엄마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래서 딸은 출가하면 남으로 생각해야 하나? 늦은 밤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길 참 잘했다.
이제는 뭐든 물어보고 의논한다. 심지어는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두 녀석을 맡길 생각하고 둘만의 여행을 계획한다. 그런 나도 방학이 가까워지면 초등 2학년 방학 절반을 할미 집에서 보내게 될 외손자를 기다린다.
외손자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방학 때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께서 양말과 공책을 사주셨다는 말을 할아버지가 돼서도 한다.
그 추억을 손주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었다. 첫 외손자에게 특히 정을 많이 쏟아 가끔은 헷갈리기도 하지만 손주들만 보면 설렌다
"할머니, 저기 산에 노을이 빨갛게 물든 건 해가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 그래요."
방학을 보내면서 첫 번째 외손자가 한 말이다. 손자도 어른이 되어 우리처럼 나이 먹어도 외갓집에서 보낸 추억이 오래도록 가슴에 빨갛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 tadej,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