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흐 생물을 전공하다 보니, 이런 공상을... (9)
Google의 탄생
많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구글'이라는 이름은 10의 100 제곱이라는 숫자단위 구골(googol)에서 유래했다. 구글의 창립자인 Larry Page와 Sergey Brin은 세계의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검색할 수 있게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1 뒤에 0이 100개가 붙어있는 단위를 의미하는 구골(googol)이라는 낱말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었다. 특별히 신비로우면서도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언어유희를 부려 철자를 변형했고, 덕분에 지금의 구글이 탄생하게 되었다. 구글이라는 이름은 이제 새로운 브랜드로 자리 잡아 전 세계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1, 2, 3, 4... 처음 숫자를 배웠을 때... 아니다 꼭 나 어릴 때를 추억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 전까지 조카는 가족모임에 오면 숫자를 계속 세었다.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다가도... '아~'하며 주는 고기를 받아먹다가도... 손주 입으로 고기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흐뭇해할 때도... 배부르다고 식당 놀이방에 가서 놀겠다고 떼쓸 때도... 주야장천 입에서 '1, 2, 3, 4...'를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숫자가 좀 높아지면... 다시 1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29'를 외치고 빤히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29 다음이 뭐지?'라고 물어보면 '어... 어...'를 반복하다가 내가 입모양으로 '사... 암...'이라고 할라치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 원래 알았다는 듯이 '30, 31, 32, 33...'을 계속 세어갔다. 그러다가 다시 어딘가 아홉수에서 막히곤 했다.
Googol의 탄생
나도 어릴 때 어른들이나 사촌 혹은 동네 형들과 있을 때 조카와 똑같은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일십백천만십만... 억... 조... 경...? 다음은? 다음은?'
그때 저들 중 누군가 분명 나에게 '경' 다음은 '핵'이라고 가르쳐줬는데... 자세히 검색해 보니 '해'(10의 20 제곱)가 정확한 단위다. 그 뒤로는, 자 (10의 24 제곱),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대수, 대수, 업의 순서로 커진다. 1만 배 단위로 나눠 읽는 숫자는, 이제는 비교적 친숙한 단위가 되어버린, 억 단위부터 천문단위가 된다. 태양계 내의 천체거리를 말하는 단위인 AU(astronomical unit)는 약 1.496 ×10^11m이다.
극부터는 천문학을 너머 불교 용어가 나온다. 항하사의 '항하'는 인도의 갠지스강을 말하고, 항하사(沙)는 그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를 의미한다. 불가사의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하고 야릇함'을... 무량대수는 '아미타불과 그 땅의 수명이 한량이 없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항하사가 10의 52 제곱이니까... 아승기는 10의 56 제곱, 나유타는 10의 60 제곱, 불가사의는 10의 64 제곱, 무량대수는 10의 68 제곱, 대수는 10의 72 제곱, 업은 10의 76 제곱이 된다.
그런데 10의 100 제곱이라니... 1 뒤에 0이 백개가 붙었다니... 구골은 어른의 머리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10의 100 제곱이라는 상상만으로 뒷골이 땅겨올 지경이다. 종교를 넘어서는 이 구골이라는 10의 100 제곱 단위는, 사실 미국의 수학자 Edward Kasner와 그의 조카 Milton Sirotta가 1938년 '세상에서 가장 큰 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만든 단위라고 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조카 Milton Sirotta가 대단한 수학자 같지만, 실제로는 당시 9살이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삼촌과 조카가 장난으로 만든 개념인데 그 삼촌이 워낙 유명하고 권위 있는 수학자다 보니 학계에서 정식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뒤로 구골보다 큰 단위를 지칭하는 많은 낱말이 제안됐다. 하지만 구골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 장난 같은 이런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학계의 위트와 관대함은 한 번이면 족했던 것 같다.
무한대 (∞)의 탄생
구골이란 숫자 단위는 우리가 살면서 천문학에서라도 쓸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항하사를 넘어가는 숫자는 우주가 멸망해도 다 셀 수 없는 숫자라고 한다. 우주의 나이가 200억 년 정도라고 추정하는데, 이 우주가 1000경 번 다시 태어나고, 다시 1000경 번을 또 태어나야 셀 수 있는 숫자가 '항하사'다. 구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상의 단위를 학계에서 인정하고 말고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그러니 도메인 선점하는 것처럼 아이 장난 같은 숫자 단위 이름 짓기는 '구골' 한 번으로 족한 게 아닐까?
조사를 하면서 '누구는 삼촌을 잘 만나 9살에 상상한 개념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단위가 됐는데, 누구는 삼촌을 잘못 만나...' 이런 자격지심이 들었다. 명예나 권위가 없으면 다가갈 수 없는 이런 '학계' 같은 세상이 내 앞에 항하사처럼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 조카를 살게 하려니 미안했다. 한때 예술가나 권위 있는 학자들의 고차원적인 대화를 듣는 게 좋았다. 그리고 그런 커뮤니티에 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래서 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취미 생활도 시도했다. 속된 말로 '잘난 척'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건 다 욕망이었다. 그리고 욕망은 항하사를 넘어설 수 있었다. 돌아보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숫자만큼 욕망을 키우고, 키우고... 또 키웠다. 그렇게 욕망이 무한대(∞)를 향해 갈수록, '나'라는 존재는 점점 소수점 단위를 늘리고 있었다. 대학 신입생 때, 교양수업에서 만약 행복을 수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가진 것 / 가지고 싶은 것'으로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분모의 '가지고 싶은 것' = '욕망' 이니까... 분모를 무한대로 키우면 당연히 행복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한히 행복하려면 분모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바로 동양의 사상, 혹은 불교철학이라고 했다. 참... 알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깨달았다.
"'행복' 그 자체가 욕망이다. 특히 그것을 위해 스스로 뭔가를 바꿔야 한다... 바꿀 수 있다... 는 기대, 소망, 믿음이 바로 원천이다. 이 하나 때문에 욕망이 '0'에서 '1'이 되는 순간, 숫자는 커지기 시작하고, 그 끝에는 '무한대 '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불행은 숙명이고 살아있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질없이 행복하려고 살지 말고, 좀 덜 불행하게 사는 건 어떨까?"
분모를 떨쳐내고 훨훨 날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