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행복을 포기하겠습니다. (9)
기준을 세우다.
'소확행'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뭔가가 더불어 추가된다는 것이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이것도 포기할 생각이다. 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에너지는 적지만 결국 행복을 위해 애써야 한다. 즉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앞에서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타협이다. 큰 행복을 바라면 큰 불행을 감수해야 하니 임계점을 넘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덜 행복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나중에 환경이 변하거나 임계점이 높아지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즉 '집착'이라는 고통에 빠질 확률이 0%가 아니라는 말이다. 담배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소확행'은 집착을 끊어내는 연습의 시작이다.
하지만 젊은이는 야망을 가져야 한다. 그게 맞다. 너무 처음부터 인생 다 산 노인네처럼 철학적일 필요는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젊은이는 차라리 철부지인 게 낫다. 범죄가 아닌 이상 말도 막 해서 욕도 먹어보고, 여기저기 부딪혀 깨지고 다쳐봐야 기준이 선다. 이쯤에서 또 인생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결과 많은 사회문제도 발생한다. 하지만 이게 맞다. 책이 아무리 좋은 스승이라지만, 인생을 책으로만 배워서는 백면서생 소리밖에 들을 수 없다. 가려운 다리를 긁으면 얼마나 시원할지 '상상' 해보라고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혹은 가렵지도 않은데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육각형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 주인공이고, 유니콘 같은 것이다. 잣대를 세워놨으니 전부 만족하는 누군가가 있겠지라는 상상일 뿐이다. 이런 거에 현혹되어 고통받지 말고, 부딪히고 경험하며 나의 기준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자유롭게 흩어져 마음을 어지럽히는 번뇌와 고민에 기준점을 세워 줄을 세우고, 간격을 맞추는 건 어떨까? 그러고 나면 전부 지워보자. 세상에 '나'보다 중요한 기준은 없다. 모두 내 아래로 깔아 뭉게 없애버리자. 정 힘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쉬운 것 부타 하나하나 해결해서 해치워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한 번에 대범하게 깡그리 없애버리는 쾌감을 느껴보길 더 추천한다.
집착의 잔존가
지난 주였다. 16년 된 나의 SM3(일명 '슴삼이')가 사고를 당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누가 범퍼를 긁었다고 연락해 왔다. 나도 예전에 살 던 아파트에서 남의 차 범퍼를 긁은 적이 있다. 피곤에 찌든 채 겨우 집에 도착한 날이었다. 맞은편에서 주차를 하는 차가 상향 전조등을 켰는지 눈이 너무 부시고, 눈동자가 찢어질 듯 아팠다. 속에서 '에티켓 좀 지켜라'라는 신경질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고, 빨리 주차하고 집에 가려고 후진하는 순간! 쿵~! 아차~
상대차량에게 전화를 했다. 피해운전자는 수리비와 합의금으로 30만 원을 요구해 왔다. 보험 처리를 하면 렌트비에, 일 못한 일당 보상에, 뭐에 뭐에 추가 보상을 받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어쩜 이렇게 야박할 수가... 범퍼 조금 콕 찍힌 건데...' 하지만 그 사람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고, 조금 알아보니 보험 할증 붙느니 30만 원 주고 마무리하는 게 낫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번엔 반대상황이 됐다. 그런데 별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 사람 사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얼마 전에 자동차보험을 다시 들었는데 차량 잔존가가 128만 원이었다. '칫! 그까짓 128만 원이 뭐가 중요해?'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예전에 상대 운전자가 야박하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집착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할까? 만약 내가 자동차 마니아라서 고급차를 갖고 있었다면? 아니면 차가 오래돼서 새 차로 바꾼 지 얼마 안 됐다면? 그랬다면 내 마음이 어땠을까? 똥차소리를 들어도 이때만큼은 내차가 슴삼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긁혔다는데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생각 버리기
10년이 넘은 이야기인가 보다. 일본의 '코이케 류노스케'라는 스님이 쓴 책, '생각 버리기 연습'과 함께 '뇌과학, 명상' 붐이 일기 시작했다. 명상으로 뇌를 쉬게 해 주면 집중력이 올라가서 더 쉽게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비스름한 내용의 다큐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때는 '집중력 향상'과 '더 큰 성과'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것보다는 불교식 수행법을 소개하며 집착을 끊어내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생활 불교라고 해야 하나?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스님의 명상법을 따라 하며 책 속에 적혀있는 경험을 실제로 느껴보는 성취감에 푹 빠져있었다.
편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숨을 쉰다. 모든 감각을 코끝에 집중해서 호흡할 때 공기가 들어왔다 나가는 느낌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코끝의 호흡에만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얼굴근육이 확 이완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아~ 내 얼굴이 굉장히 경직되어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다. 그 잠깐의 얼굴 근육 이완만으로도 온몸의 근육이 풀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느낌은 처음 느껴보면 매우 신비롭다. 온몸의 근육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스님의 명상법을, '다른 모든 집착을 내려놓으면... 혹은 포기하면 편안해진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처음 읽었을 때 이렇게 술술 읽혔었나?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전의 키워드에 집착하지 않고 읽으니 이번에는 책이 술술 읽혔다.
내면의 평화
'집착을 끊으면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고, 모든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혜다.' 부처의 큰 가르침이다. 그런데 '집착을 끊는다'는 이 6글자 밖에 안 되는 말은, 출가해서 수행의 길을 걷겠다는 각오를 넘어설 만큼의 매우 심오한 뜻을 갖고 있다. 출가는 고사하고 가출할 용기도 없는 45살의 철없는 아저씨는 이제 기껏 128만 원의 집착을 내려놓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하다. '소확행'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낭비하지 말고, 이렇게 집착을 끊어내는 연습의 시작으로 삼아서 모두 내면의 평화를 찾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