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에서 비롯된
시작은 측은지심이다
'건물 사이에서 피어난 장미'같은 제목의 K-POP이 떠오른다. 이 조직에도 이상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출현 빈도가 90%에 육박할 정도로, 십중팔구는 빌런이다. 나 역시도 이 확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메인 빌런까진 모르겠지만, 서서서서... 서브 빌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회식 자리에서는 많은 분들이 스쳐갔다. 대부분은 ‘E’ 성향을 자처하는 분 같았다. 그게 유전형질인지, 획득형질인지는 모르겠다.
나름 그런 걸 잘 파악한다고 생각했는데, 회식 자리에 나타난 휴직한 지인, 이제는 정체를 밝혀야겠지, 대학 동기는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니었다. 다른 가면을 쓰고, 테이블 사이를 종횡무진 다니며 술잔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분, 매우 인상적인 분이 있었다. 옆자리 주무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센터에서 ‘가장 친절하신 분’. 상냥한 '솔'톤을 넘어선 두성 발성의 쇳소리를 내시는 분이었다.
유치원 선생님 같은 말속도와 낱말의 사용.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모습은 그분의 나이대를 생각하면 많이 거북했다. 가식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까진 몰랐다. 그분이 겉과 속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몇 개월 지켜본 바로는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 타인의 눈에서 벗어난 곳에서는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 앞에 보이는 모습은, 이 정도만 해도 ‘사람이 아니므니다(positive)’ 수준이었다.
내가 바라보던… 아니지, 바라보고 싶던 공무원상이었고, 앞으로의 1차 롤모델 같은 분이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애민정신이 있었다. 이런 칭찬이 과분하다고...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고... 겸손해하신다면, 적어도 측은지심이 있다고 해두자.
내가 바라보던 공무원 vs 내가 된 공무원
예전엔 공무원을 느릿느릿한 존재로 생각했다. 늘 앉아 있고, 늘 서류를 넘기고, 늘 “그건 제 담당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말투는 무심했고, 표정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내가 된 공무원은 전화기, 프린터, 보고서, 방문자, 그리고 감정의 RPM까지 동시에 요동치는 존재였다. 일은 멈추지 않았고, 감정은 쉴 틈이 없었다. 나는 느릿느릿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반응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민원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감정의 덩어리다.
“왜 이렇게 늦어요?”
“이게 말이 돼요?”
“내가 세금 내는 사람인데…”
그 말들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을 숨기고 상대의 감정을 받아야 했다.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감정의 조율자가 되는 일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 온도를 맞추는 일. 그 온도는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갑고, 대부분은 불편했다. 회식 자리에서 말하지 못했던 나는, 민원 창구 앞에서 말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말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것이었고, 그 표정은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공무원이 되었고, 그 순간부터 ‘말의 주체’가 아니라 ‘말의 수신자’가 되었다. 말을 받아 적는 일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왜? 난 공무원이니까...
그렇게 나는, 바라보던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자리로 옮겨왔다. 그리고 고문과도 같은 마인드 어택이 들어오면 롤모델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말투를 떠올렸다. 그리고 더 과장해서 가식을 떤다. 쇳소리를 내며...
“아~ 네, 선생님! 그게 말이죠…”
오늘도 '안성시'가 등에 크게 적힌 조끼로 위장을 하고 출근을 한다. 그러면 말투는 나긋나긋해지고, 행동은 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변하며, 길을 걸을 땐 항상 주위를 살피게 된다. 특히 운전을 할 때면, 설사 상대방이 잘못했더라도, 무조건 끼워주고 양보한다.
'네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해드리니까 다음에 제가 실수할 땐 조금만 혼내주세요.'
라고 생각하면서 요즘은 도리어 서운할 때가 있다. 민원인들이 나를 밀어내는 게 느껴지면...
한 번은 출장을 갔는데, 목디스크 증상이 느껴져서 공무원증을 책상 위에 벗어놓고 나왔다. 서행으로 운전을 하며 가는데, 한 어르신이 땡볕에 양산 하나 달랑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있었다. 시골길이어서 인적이 드물어 사고가 날까 걱정되어 차를 세우고 물었다.
“어르신 어디까지 가세요?”
그 어르신의 사양하는 말속에는 경계의 뉘앙스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 등 뒤에 적힌 '안성시'를 돌려서 보여드리며,
“저 공무원이에요.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라고 했지만, 끝끝내 밀어내는 바람에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닿지 않아서 많이 서운했다. '아~ 공무원증만 있었더라도...' 싶었지만, 있었어도 상황은 눈곱만큼도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한적한 길에서 낯선 남자의 호의를 덥석 받을 만한 세상이 아니다. 음~ 그래도. 미약하나마 나비의 날갯짓이라도 해봐야지... 왜? 난 공무원이니까!
효용감
‘늘공’과 ‘어공’ 사이의 말투는 마치 수동 기어와 자동 기어처럼 서로 다른 속도와 리듬을 갖고 있다. 늘공은 “그거 좀 해줘요~”라고 말하고, 어공은 “혹시 가능하실까요…?”라고 말한다. 같은 말도 온도차가 있다. 형식과 외향은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의 리듬과 뉘앙스는 조직 안에서의 위치와 정체성을 드러낸다. 나는 그 사이에서도 말의 온도를 조율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민원인화했다고 하자. 처음엔 측은지심이었다. 공무원을 보며 ‘저 사람도 참 힘들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들어주었다. 사람을 새로 뽑아놨으니, ‘효용감’이라는 것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고, 특히 화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나중에 큰 화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된 공무원은 측은함을 느낄 틈도 없이 감정의 소음 속에서 나를 지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