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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 너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

너는 아직도 나를 묻고 있구나 (2)

by 철없는박영감

To. 주목받고 싶었던 나


안녕.

너는 늘 무대 위에 서고 싶어 했지. 사람들이 너를 바라봐주길, 너의 말에 웃어주길, 너의 행동에 손뼉 쳐주길 바랐어. 그러다가 학창 시절에 '용기부족', '깡없음'때문에 무대공포증이 생겨버렸지? 그래서 마이크 뒤에 한 발짝 숨을 수 있는 성우라는 직업에도 도전했잖아?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 아니지 더 정확히 말하면, 꿈 많던 어릴 적 향수에 취하고 싶어서...


왜 무대공포증이 생겼을까? 그렇게 발표도 잘하고, 활발하고, 사람들 앞에서 춤추기 좋아했던 네가... 지금 돌이켜보면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에 살짝 '왕따'를 당했던 것 아닐까 싶어. 너의 그런 성향이 또래 친구들에게는 잘난 척으로 비쳤을 테니...


초등학교 때, 눈앞에서 '재수 없다'는 소리도 들었었지? 물론 한참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사과를 받긴 했지만... 사실 정상적인 사과도 아니었지? 오랫동안 말 안 하다가 갑자기 상대방이 '어이~'라고 말을 붙여왔으니... 뭐 그것도 큰 용기를 낸 사과라면 사과라고 해야겠지? 그 아이도 내면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나서야 비로소 너에게 다가올 수 있었을지도...


또래 친구들과 섞이지 않는 그런 너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하나 둘 상처가 생기고 상처가 쌓여 아픔이 되고... 그때 참 많이 아팠지? 그런 아픔을 겪기 싫어서 너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강박이 생겼을 거야. 그리고 '착한 아이'라는 습성이 몸에 배어버렸지... 참 많이 어려서부터 가면 속에서 살기 시작했던 같다. 그렇지?


그 마음, 나는 이제야 말해줄 수 있어. 그건 틀린 게 아니야. 잘못된 것도 아니야. 너는 그냥, 너무나 자연스럽게 살아 있었던 거야. 어리기에 가능했고, 어리니까 괜찮았고, 어려서 완성형이 아니었을 뿐. 너는 그냥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거잖아.


근데 그때는 이걸 몰랐던 것도 사실이야. 세상에는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걸... 모두가 자기 삶의 중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너는 때때로 다른 사람을 조연처럼, 아니 엑스트라처럼 취급했지. 그게 문제였어. 너의 빛을 위해 누군가의 그림자를 필요로 했던 그 마음.


그건 어리석었지만, 그걸 알아차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너를 미워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더 깊이 듣고,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거든.


너는 관종이었지. 관심을 먹고 자랐고, 관심을 위해 웃었고, 관심을 위해 울기도 했어. 하지만 이제는 알아. 관심은 목적이 아니라, 연결의 시작이라는 걸... 관심은 영양분은 거의 없는 칼로리만 높은 술이야. 술은 낯선 사람과의 거리를 좁혀주지만, 취기에서 깨고 나면? 알코올처럼 휘발되기도 하고,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이 되기도 하지. 온갖 사건, 사고의 시작이라고 할까?


넌 톡톡 튈 수 있는 개성을 모두 죽이는 말이라며 이 속담을 싫어했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 그건 너에게도 해당됐지. 너는 부딪히며 깎였고, 깎이면서 여물었고, 여물면서 조금씩 단단해졌어. 그래서 나는 지금의 너를 사랑해. 그때의 너도, 지금의 나도, 모두 주인공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무대 위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지. 삶은 무대보다 더 넓고, 너는 그 안에서 충분히 빛나고 있어.


From.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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