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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편지 : 기름처럼 동동 떠 떠나라.

너는 아직도 나를 묻고 있구나 (8)

by 철없는박영감

To. 무리에 섞이지 않는 너


너는 오늘도 술에 취해 있겠구나. 매일 아침마다 숙취로 고생이 많다. 하지만 제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 그래, 기름 같은 네가 물 같은 사람들 무리에 섞일 수 있는 방법은 알코올이 유일했을 거다. 하지만 몸에도 한계는 있단다. 머지않아 간에서 신호를 보낼 테지. 그때는 미련 없이 떠나렴. 겁내지 말고, 네가 이상향으로 삼는 곳을 향해 출발하렴.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겠나?' 그렇게라도 시작해 보렴.


나는 한때 무리에 섞여 있기를 갈망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비굴하게라도 그 안에 있어야만 안정이라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휩쓸려 다니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 믿었지. 하지만 그것은 안정이 아니라 착각이었다. 계면활성제 같은 친수성의 가면들로 나를 싸매고 억지로 그 안에 밀어 넣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기름이라는 정체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억지로 섞이려 애쓰지 말아라. 기름처럼 동동 떠 떠나도 괜찮다. 섞이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리며 떠 있는 그 모습이 바로 너의 진실이다. 억지로 무리에 섞여 있던 나는 늘 불안했고,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시간이었을까? 나이 듦이었을까? 늙는다는 관점이 아니라, 내게 더 이상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는 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이 보내는 신호, 삶의 종착역이 가까워진다는 체감, 그리고 사회가 “나를 먼저 챙겨라”라고 말하는 분위기까지...


지금까지는 '아 좀 더 일찍 떠날걸...'이라는 후회밖에 없다. 죽기밖에 더하겠나라며 시작했지만, 세상은 어떻게든 살려는 드리더라. 네가 세금을 내야 나라가 굴러간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애국자더라.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든 너는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알았지? 그렇게 좀 뻔뻔하게 살아보자. 다르게 살아보자.


나는 이제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자유는 외로움과 함께 오지만, 그 외로움조차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있다. 그래서 오늘도 너를 묻는다. 무리에 섞이지 않는 너여, 나는 과연 이 자유 속에서 끝내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기름처럼 동동 떠 떠나라. 흔들리지 않고, 섞이지 않고, 너만의 빛을 잃지 않은 채로...


나를... 내 마음을... 먼저 챙기라는 조언도 듣지 마라. 그들 대부분은 독신이었고, 자기가 가본 길만 옳다며 안 가본 길을 비하하더라. 똑같은 인간궁상일 뿐이더라. 범죄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가렴.


From. 자유를 택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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