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직도 나를 묻고 있구나 (마지막)
To. 가품으로 사는 너
안녕? 그래 벌써 한 5년 정도 숨을 죽이고 살았구나. 그렇게 '나'라는 존재감을 죽이고 살아보니 많은 게 들려오고, 다른 게 보이고, 네 안에 틀린 게 느껴지지? 그리고 결국 죽는 날까지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지? 그런데 공부의 이유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암기력을 시험받던 시절이 있었다. 나가서 방출하려고 공부했고, 시험이 끝나면 홀라당 까먹어버렸다. 엿 바꿔 먹었다고도 표현했지. 책을 조금 읽으면 토론에 환장했던 적도 있었다. 너는 없고 '책을 읽은 나'만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그냥 말싸움이었다. 너의 세상에는 이 책을 읽은 자와 안 읽은 자로 양분되었지. 그때는 이기려고, 드러내려고, 존재감을 뿜어내려고 공부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잘 알아들으려고 공부한다. 누군가 인용하는 문구나 사건을 이해하려면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의 생각과 연구 내용뿐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생각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까지 알아야 한다. 공부는 이제 방출이 아니라 흡수다. 드러내기보다 숨죽이며, 내 안에서 조용히 소금처럼 녹아드는 것이다.
한 때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지. 그래서 세상을 이해시켜 보겠다고 화술도 배우고, 설득의 기술, 인간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했었지? 그래서 의도대로 잘 되던? 아니지?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이렇게 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없는 것을 탐하지 않고, 있는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사라진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튜닝의 끝판왕은 정품이다. 나는 이제 꾸미지 않고,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세상 속에 조용히 섞여 조화를 이루겠다. 세상도, 너도, 존재하는 자체로 정품이다. 정품들이 모이는 게 진짜 세상이지. 그렇지?
From. 정품으로 사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