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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Oct 27. 2024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故 신해철 10주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왔네


 조금은 야위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빗길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조금은 야위어진 그대의 얼굴모습

 빗길 속을 걸어가며 가슴 아팠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

 그대도 우리들의 만남에 후횐 없겠죠

 어렵고 또 험한 길을 걸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신해철, 앨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1990.


신해철의 노래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10대를 보냈다. 내게 연예인이란 그저 TV 속 세상에만 존재하는 사람이었지만 신해철은 달랐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마치 사촌 오빠를 잃은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허망한 죽음이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해에게서 소년에게
 

싱어송라이터, 라디오 DJ, 프로듀서, 배우, 철학자, 음유시인, 논객, 사회 운동가. 신해철의 이름 앞에 붙일 수 있는 명칭이 많지만, 나는 그를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약자를 위해 행동한 사람, 자기 생각대로 삶을 이끌어 간 사람. 그는 진정한 어른이었다. 


어느덧 내 나이도 40대 중반,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에 가까워졌다.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어른다운 어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지난 세월을 10년 단위로 되짚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왔네


2014년은 계절이 뒤섞인 해였다. 봄은 싸늘했고, 가을은 빛을 잃었다. 소풍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 4월, 그리고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10월. 입안에서 쓴맛이 가시지 않았던 한 해였다. 그로부터 10년, 재난 참사와 의료 사고가 반복됐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2014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 이뤄질까


암담한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2014년 5월, <소년이 온다>를 출간했다. 작가는 "압도적인 고통을 감내하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 <소년이 온다>는 40년 넘게 고통받아 온 생존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위로하고자 한다.

"도청에 남기로 결심해서 죽게 된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80년 5월에서부터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이렇게 넋으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가 됐어요." <2021년 한강 작가 인터뷰>

지금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10년 뒤, 20년 뒤의 세상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보게 된다.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순 없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그대에게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그대에게>, <길 위에서>,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 등 신해철의 노래에는 "그대"가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 <그대에게>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음악인으로서 그의 초심을 담고 있다. <그대에게>의 엔딩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그댈 사랑해"의 멜로디가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의 전주로 이어지며, 두 곡은 마치 하나의 연작시처럼 다가온다.


신해철은 <그대에게>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탄보다는, 앞으로 있을 희망을 늘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대'는 '음악'이며 '고통받는 사람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장르와 형식을 파괴한 음악을 시도했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렇게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다는 다짐을 지켰다.


10년 후를 생각한다. 2034년,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세월호를, 신해철을, 5·18을, 어떻게 기억하고 추억하게 될까. 하늘로 떠난 이들과 그들의 가족이 더 이상 억울하지 않은 세상이기를 바라며, 그처럼 나도 포기하지 않고 '그대' 곁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이제, 어른이 될 시간이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해에게서 소년에게


故 신해철(1968~2014)을 기리며.




신해철은 1988년 8월 강변가요제에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기다림은 사랑의 시작이야>라는 제목으로 불렀으나 예선에서 탈락했다. 같은 해 12월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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