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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Dec 03. 2024

10년 만에 다시 찾은 몬테레이

이른 아침, 호텔 발코니에서 도시가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본다. 고층 빌딩을 레고 모형처럼 보이게 하는 거대한 산맥이 도시의 배경에 펼쳐져 있다.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산의 표정을 흥미롭게 감상한다. 길게 이어진 산맥은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거대한 얼음벽을 떠올리게 한다. "Winter is coming!" 서울에는 폭설이 내린 11월 말이지만 저 산은 얼어붙을 일이 없을 것이다. 이곳은 멕시코 몬테레이,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따뜻한 도시다.


"다시, 몬테레이로"


10년 만에 다시 몬테레이를 찾았다. 남편의 출장 일정이 미국 추수감사절 연휴와 겹쳐 이곳에서 한 주를 보내기로 했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와 아이는 호캉스를 즐기며 도시를 관광하려는 계획이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몬테레이에 사는 지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살던 시절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인연이다. 그사이 텍사스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는데, 몬테레이에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이곳에서 알고 지냈던 분들은 대부분 주재원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주변에는 여러 상가가 들어서 있었고, 작은 구멍가게였던 한인 마트는 여러 지점을 내며 중소기업 규모로 성장했다. 한인 수가 많이 늘어난 덕분이다.


우리가 몬테레이를 떠난 2014년 10월, 기아자동차는 몬테레이 근교 빼스께리아(Pesquería)라는 시골 마을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2016년 9월 준공 이후 중남미와 북미 시장을 겨냥해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빼스께리아는 한국인 인구가 늘면서 "빼스꼬레아(Pescorea)"라는 별명이 생겼다. 인접 도시 아뽀다까(Apodaca)도 "아뽀다기아(Apodakia)"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 기업이 지역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몬테레이 관광 명소"


몬테레이에 살던 시절,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아기를 돌보느라 외출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떠나기 전 몇몇 지역 명소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샌 안토니오(San Antonio)의 리버워크(Riverwalk)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산타 루치아 리버워크(Paseo Santa Lucía)에서 배를 타고 푼디도라 공원(Parque Fundidora)에 내려서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또, 몬테레이가 속한 누에보 레온(Nuevo León) 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궁 박물관(Museo del Palacio)을 방문했었다. 멕시코 혁명과 사회 변화를 다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과거 궁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답게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이 인상 깊게 남았다.


이번에는 지인의 안내로 도심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폭포, '꼴라 데 까바요(Cola De Caballo)'를 찾았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말의 꼬리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폭포가 있는 곳까지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산이 없는 지역에 살다 보니 자연 풍경을 감상하며 산을 오르는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방문했던 산과 계곡을 떠올리기도 했다. 하얀 말의 꼬리 같은 폭포 아래에서 물보라를 맞으며 사진을 찍고, 내려올 때는 마차를 타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


다음 날에는 한국에서 들여왔다는 키즈카페, 플레이티카(Playtica)를 방문했다. 동갑내기인 지인의 아이와 내 아이가 신나게 노는 동안 엄마들은 평화롭게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렸다. 해가 질 무렵, 루스토피아(Luztopía)로 갔다. 루스토피아는 11월 말부터 다음 해 1월 초까지 몬테레이 도심에서 열리는 빛의 축제다. 조명으로 꾸며진 전시물과 놀이기구,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그곳에서 갓 튀긴 츄러스를 사 먹었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지금껏 먹어본 츄러스 중 단연 최고였다.


사실 이번 추수감사절 연휴에는 남편 출장 일정 때문에 몬테레이를 여행지로 선택하게 되어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인 가족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바닷가 휴양지가 아쉽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몬테레이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지만,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온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11월의 마지막 날, 지인이 선물해 준 스타벅스 몬테레이 컵을 들고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컵에 그려진 몬테레이의 명소들을 짚어보다 보니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그곳을 찾아갈 날이 또 오겠지. 다시, 몬테레이로 갈 날이.




제가 발행한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글이 <다시, 몬테레이로>입니다. 몬테레이에서 살던 시절의 감상과 고마운 인연을 추억하며 쓴 글인데요. 아마도 그곳으로 떠나기 전에 정보를 검색하던 분들이 제 글을 발견했을 것 같습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분들께 온기를 전하는 글이었기를 바랍니다.
¡Buen via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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