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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aosha Mar 06. 2023

험난한 Y1 적응기, 영어습득 1부

6개월이면 적응한다고? 맞는 이야기지만 애들의 속은 썩어 문드러진다.

  만약 만 5세 정도의 아이와 함께 어떤 사유로든 영어권 국가로 갈 예정이라면, 넘치고 넘칠 정도로 영어를 학습시켜 오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가 영어를 배우고 말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도 있겠지만 한국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주변에서 모두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애들은 금방 영어 배우니깐 걱정하지 마!

 

라고, 6개월이 지난 지금 이 말은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시간 동안 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우리의 런던행은 갑자기 정해지긴 했지만, 영어유치원을 런던행이 아니더라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국어 형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합리화였던 것 같다. 맞벌이라서 영어유치원을 보내면 등하원의 문제가 있었고, 영어는 서두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육에 초점이 맞춰진 가까운 유치원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런던행은 정해졌고, 남은 시간은 대략 8개월 정도였다. 부랴부랴 영어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어유치원을 알아보니 5살에는 보내셔야죠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고, 6살인 아들이 들어갈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상담은 주로 내가 다녔는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곳부터 동네 영어유치원까지 한결 같이 비슷한 말을 들었다. 


  아이를 낳을 때도 그랬지만,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낮다면서도 산부인과는 예약하지 않으면 가기가 힘들었고,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항상 대기 타다가 들어갔는데, 영어유치원은 대기를 탈 수 조차 없는 번호표를 던져주니 막막했다.


  결국 영어유치원은 보내지 못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영국의 초등학교 아들을 보내는 것은 학대에 가까운 수준이라 생각해서 계속 방법을 찾아보았다. 집 근처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면서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영어학원이 몇 개 생겼는데, 유치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계속했었다. 학원들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거절하였는데, 다행히 한 군데에서 유치부를 만들 테니 보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8월 말 출국인 아들은 3월부터 일주일에 이틀 1시간씩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영어를 배우는 아들은 알파벳을 배우면서 즐거워했고 놀이로 배우는 것이라 더 즐거워했다.


영국 출국 전 8월 말 아들의 영어는 알파벳 대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정도에,
소문자는 애매하고, 인사와 자기 이름 소개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영어에 큰 거부감 없이, 다른 나라에 간다며 행복해하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웃음 가득하고 붙임성 좋은 아들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입을 다물고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와 있을 땐 웃음 가득하고 밝은 아들이었지만,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9월 입학 후,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Chicken"이라 불리고 "Say, Hello(처음에 안녕이라고 밖에 말을 하지 못해서 나왔던 말)"라고 말해보라는 시기가 있었다. 언어라는 것이 상호작용인데, 상호작용이 안 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작 5살(한국나이 6살) 애들이 무슨 억한 심정이 있다고 처음 보는 아들을 괴롭히겠는가? 괴롭힌 것이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에게도 "친구들이 너한테 궁금해서 그런 거야, 아님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대꾸를 하지 않아서 더욱 그런 것일 수도 있어."라며 영어가 힘들면 한국말이라도 마음껏 하라고 했었다. 적어도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영어를 잘 모르는 것일 뿐이지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아직은 낯선 영어를 아예 멀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영어는 얼마나 하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선생님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는 말만 들을 뿐이었다. 항상 "Fantastic"과 "Don't worry."만 들었다.


  9월 한 달은 영어고 뭐고, 학교의 생활방식에 적응하는데 다 썼던 것 같다. 10월이 돼서도 여전히 읽을 줄 몰랐지만 학교의 플레이 타임이 좋다며 즐겁게 등교했다. 영어를 어떻게 배우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절대 물어보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책을 한 권주며 매일 직접 읽히거나 내가 읽어주면 되는 숙제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아들에게 할 것인지만 물어보고 안 하겠다고 하면 하지 않았다. 참고로 그 책은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학원에서도 쓰는 책(옥스퍼드 리딩 트리, 일명 ORT)이었다. 


  나는 너무나 궁금했지만, 그냥 기다렸다.


  그러다가 10월 말 하프텀이 다가올 때쯤, 아들이 얼마나 학교에서 고군분투 중인 줄 알게 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9월부터 10월 중순 정도까지 학교에서 했던 과정들이 고스란히 보이는 노트였다. 나와 아내에겐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수업을 따라가고 있었다. 



  사실 별 것 아니었지만, 영어를 거의 모르던 아들이 열심히 학교 수업에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학교를 안 가겠다고 떼를 쓰거나 우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말을 잘 하진 못 해도 친구들과 노는 데는 큰 지장은 없었던 것 같다. 아들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잘 맞춰주는 편이기도 해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던 시기였기도 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어와 단어 정도만 이야기했었다. 예를 들어 자판기 앞에서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다면, "Need", "Money"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9월과 10월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위안을 삼았다. 


  9월부터 11월까지 대략 3개월을 지내면서, 아들은 영어라는 언어에 거부감 없이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국어처럼 듣고, 쓰고 말하진 못했지만 단어와 단어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숙제로 내주는 책들도 천천히 읽어보려는 시도를 더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내 발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들려주었다. 미국식과 영국식 둘 다....


  물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다만 영어는 하지 않더라도 한국어는 꾸준히 했었다. 어차피 돌아갈 한국이었기에 영어보단 한국어가 중요했다. 게다가 이때까지만 해도 영어보단 한국어가 편했기 때문에 아들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12월을 맞이하면서 아들의 영어는 변하기 시작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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