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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aosha Mar 24. 2023

험난한 Y1 적응기, 영어습득 2부

3개월이 지나며 달라지기 시작한 아들의 영어!

  지난 1부에 이어, 12월이 되면서 아들은 영어를 조금씩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알파벳 밖에 모르던 아들이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야 '주어+동사+목적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들은 문장을 통째로 외워서 말하고 있었다. 


Let me see. 또는 It's not working.


처럼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어느 정도 문장을 갖춰서 말하기 시작했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넷플릭스, BBC에 있는 Bluey, Hey Duggee, Number Blocks를 엄청나게 봤다. 본 걸 또 보고 또 보고 질릴 정도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학교의 수학시간에 손을 들고 답변을 하기 시작했고, 학부모 참여 수업에서는 엄마를 등에 업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더더욱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을 표현했다. 긍정적이고 붙임성이 많은 아들은 이를 계기로 친한 친구들이 더 생기게 되었다.


  학부모 참여 수업에서 느낀 것이 있었다. 수학시간이었는데, 아들이 먼저 문제를 풀자 담임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어려운 문제를 내주면서 "Challenging"하고 지나갔다. 담임 선생님이 세심히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못 풀거나 힘들어하는 친구들은 선생님 나름대로 도와주고 있었다. 사실 이보다 더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누군가 더 잘하고, 못하고에 개의치 않고, 누군가 잘했다고 하더라도 눈에 띄는 방식의 칭찬도 없었다. 모두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하는 교육으로 보여졌다. 물론 우리나라의 아이들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어려운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준이다. 


  여하튼, 아들의 영어는 12월부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물론 글을 보고 이해하며 쓰는 것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때부터는 학교에서 보내주는 책을 나나 아내가 읽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읽기 시작했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무엇인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단어를 외웠지만, 아들은 단어를 체득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문장의 형식을 고민하며 작문이나 말을 했지만, 아들은 당연한 것처럼 말을 했다. 그리고 혼자서 영어로 중얼중얼거리면서 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말했던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다."는 이야기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12월이었다. 그리고 Spring Term을 맞이했다. 대략 3주 정도를 쉬는 방학이다. 이렇게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 더욱더 아들이 영어를 배우기를 바랐지만, 그건 부모의 마음일 뿐이다. 아들은 3주 동안 영어와 멀어지고 있었고, 한국어를 더 많이 쓰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 시기에 유난히 영상을 많이 보게 해 줬던 것 같다. 이때부터는 애니메이션의 수준이 더 올라갔다. 포켓몬스터와 소닉, 퍼피구조대였는데,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보여줬다. 처음에는 듣기도 힘들고 어려운지 한국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응, 영국이라 전부 영어네."라고 하며 보게 했더니 계속 반복하며 학습 아닌 학습을 하게 되었다.


  1월 초가 되고, 학교에 나가면서부터 친구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어울리게 되었고, 주말에 플레이데이트까지 하게 되어 내가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될 판이 되어버렸다. 


  올해 3월을 맞이해서 학부모 참관 수업을 아내가 다녀와서 하는 말이 "담임선생님 말이 너무 빠르고, 계속 놓치는데, 똥구멍(=아들)은 알아듣고 하더라!"라며 놀라워했다.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영어에 노출되는 극한 환경이라서 이렇게 됐다라고 생각한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영어뿐이니....


  처음 동공이 흔들리던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영어에 흥미를 가지며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제로 영어를 공부하게 해 볼까 고민이 많았지만, 아내와 나는 그저 지켜보기로 했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어떻게든 영국에서의 1년이 아들에게는 행복한 시간이길 바라면서, 영어보다 네가 즐거우면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6개월이 걸렸다. 


  아들은 한국이라면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받았을 텐데도 내색없이 이 시간을 견디며 학교에 다녔고, 이제는 남은 6개월 아니 1년을 더 즐기면 된다. 아들에게는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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