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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제사상에 피자와 콜라 초코바 올리는 여자

며느리 생활을 끝났지만, 시제사에 정성을 다하는 여자 

얼마 전 시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올해로 돌아가신 지 꼭 5년이 되었다. 작년에 시아버님도 돌아가셔셔 나의 17년간의 며느리 생활은 끝이 났다. 남편과 상의하여, 명절 제사는 없애기로 했지만, 기제사는 하기로 했다. 제사라는 것이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행위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라도 가족끼리 모여 돌아가신 분들 추억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겠나 싶어, 제사에 소임과 의미를 다해 본다.


제사 전날부터 남편과 함께 장을 봤다. 필요한 음식들, 용품들을 꼼꼼히 메모해 두고, 움직였다. 파워 J인 남편은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동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나 역시 동선에 맞춰서 필요한 것을 메모했다. 야채청과를 지나 정육 코너와 수선 코너를 지나고, 신선식품과 생필품 코너로 순서로 최적화하여, 계산대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려서 장보기 미션을 클리어했다.


순간적인 에너지를 많이 써서 그런지, 긴급하게 커피를 수혈했다. 집에 가서 정리를 하고, 다음날 있을 제사를 위해 기본적인 준비들을 해놓았다. 고기 산적을 재워 놓고, 녹두를 불리고, 생선 전을 해동했다. 예전에는 제사 지내는 것이 할 일도 많고, 그렇게 어려웠는데, 체득이 되었는지 단시간에 해내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분주했지만, 천천히 커피 한잔을 내렸다. 오늘 제일 수고하는 나를 위해서 달달한 라테 한잔을 만든다. 이윽고 근처 사는 시누이가 왔고, 둘이서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이제부터는 둘 다 멀티플레이어가 된다. 각자 할 일을 나눠서 하면서도, 입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전을 부치면서, 탕국을 끓이면서 수다가 끝이 없다.  나중에는 시누이에게 시댁을 험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수다를 떤다. 일종의 노동요라고 할 수 있겠다. 장시간의 노동요에 지쳐갈 무렵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불린 녹두를 갈아 녹두소에 넣으며, 시누에게 말했다.


"언니! 근데, 녹두가 안 줄어 어쩌면 좋지!"

"안 그래도 네가 많이 할 것 같아서 마음 단단히 먹고 왔다. 난 네가 적당히 조금만 한다는 말 안 믿어~ 사돈어른들도 챙겨드리고, 여기저기 나눠먹고 좋지 뭐~"


역시 정여사(친정엄마의 애칭)의 말대로, 큰손이길 자부하는 정여사 보다 내가 손은 더 큰듯하다. 녹두전이 산을 이루고, 깻잎 전은 속이 모자라 남은 깻잎은 장아찌를 담그기로 했다. 얼추 제사 음식 준비는 끝이 나고 있었다. 이제 과일을 씻고, 제사상을 세팅하면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빠졌다. 바로 밤이다.


남편은 예전부터 밤 까는 일을 싫어했다. 보통 제사 지낼 때, 남편들에게 밤 까는 일을 시키지만, 남편은 밤 까는 일을 싫어해서 우리는 무조건 깐 밤으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햇밤을 사다가 쪄서 껍질을 벗겨 올리면 어떻겠냐고 했다. 역시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물에 불린 밥을 칼집을 내어 쪄내면 껍질이 터져서 속껍질과 함께 완전히 이쁘게 까진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밤은 입을 제대로 쩍 벌리지 못했고, 껍질을 벗기려 하니, 깨져서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이 삶은 그대로 올리기로 했다. 이래서 요행은 바라는 게 아닌가 보다. 남편은 무엇보다 아쉬워했지만, 부모님은 부드러워 찐 밤을 좋아하실 거라며, 웃었다. 그렇게 제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만의 제사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제사상에 어머님이 좋아하셨던 몇 가지 음식을 추가로 올렸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피자와 콜라 그리고 초코바를 좋아하셨다고 했다. 맛이 좋아서였기도 했지만, 큰 며느리로서 할 일도 많고, 아이들도 많아서 늘 에너지가 부족하셨는데, 피자와 콜라를 먹고 순간적인 에너지를 얻으셨다고 했다. 아마도 어머니께 피자와 초코바는 자양강장제와 같은 역할이었던 것 같다. 평생 종종걸음이셨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덧 우리만의 제사상이 완성되었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어동육서등의 순서는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우리가 놓고 싶은데로, 생전에 어르신들이 좋아하셨던 음식 위주로 담았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소고기 탕국과 삼겹살 가득한 녹두전, 어머님의 좋아하셨던 깻잎 전과 생선 그리고 피자 등등 돌아가신 분들을 추억하며, 나름의 정성을 다했다. 


17년 며느리 생활은 작년에 끝이 났다. 그러나 제사는 시부모님 살아 계셨을 때 하던 그대로 만들었다. 치아가 안 좋으신 시부모님 생각해서, 도라지도 최대한 얇게 여러 번 자르고, 국 고기도 편으로 썰고, 생선 전에 가시도 최대한 걸렸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습관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내가 시부모님을 추억하는 방법인듯하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절하면서, 가족들 건강하게 잘 지켜주시고, 손주들 잘 크게 해 달라는 인사를 드렸다. 돌아가신분들께 너무 큰 과제를 드리는 것 같아,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 의리라면 그 정도는 들어주시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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