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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빼꼼무비 Feb 17. 2023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리뷰

첫 단추를 잘못 꿴 페이즈 5

0. 서론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올해 미임파 7편 다음으로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고 앤트맨 감성을 굉장히 좋아해서, 소규모 스트릿-레벨 히어로에서 멀티버스 사가를 본격적으로 꾸려나가는 메인급 히어로로 올라섰다는게 크나큰 행복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마블만큼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제가 이번 영화가 마블의 <스타워즈>라는 평을 보고 "아 나를 위한 영화이겠거니"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죠. 아무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곤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로 크게 실망할 줄은 몰랐습니다. MCU의 광신도로 15년 간 살면서 가장 슬픈 날을 꼽으라면 오늘이 될 것 같네요. 잡설은 그만하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캉의 죽음

정말 예상치 못한 부분입니다. 캉들 사이에서 가장 난폭하고 잔인해 추방당한 이 버전의 캉이 전 앞으로 멀티버스 사가를 이끌어갈 메인스트림 캉이 될 줄 알았습니다. 코스튬도 가장 메인 캉같은 디자인이고요. 하지만 행크핌이 이끄는 개미떼의 습격과 와스프의 독침 몇방으로 꽤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제가 예상했던 결말은 앤트맨과 혈투를 벌이다 결국 양자 세계에서 탈출에 성공하고, 다른 어벤져를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클리프행어 장면이었습니다. 다른 어벤져는 만나지 않더라도 타노스가 스냅을 하고 끝이 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처럼, 빌런의 승리로 영화가 끝나고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작품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포스트 크레딧 장면에서 다른 캉들이 벼르고 있으니까 그걸로 된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실수도 있으나, 제 생각은 캉의 변종에 대한 소개는 <로키>로 충분했고, 앞으로는 우리가 제대로 감정이입할 수 있는 단일 빌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을 좀 붙일만 하니까 죽여버리고, 또 다음 캉을 보여주겠다는건 글쎼요...맞는 전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같은 캉이라고는 하지만 전부 다른 외형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엄연히 다른 존재들이고, 좀 더 무게감과 위압감을 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제대로 몰입할 수 있게 하려면 이번 캉을 그대로 살려서 다른 어벤져스들과 격돌시키는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중에는 어차피 얘 말고 더 악랄하고 더 강력한 캉이 어딘가엔 존재할거라는 생각에 캉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칫하면 가벼워보일 수 있고 캉이라는 캐릭터에 이입하기 힘들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전부터 계속 제기되던 마블의 일회성 빌런 문제가 되풀이되는 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부디 다음 작품부터는 쭉 함계할 수 있는 고정된 버전(배리언트)의 캉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2. 양자 영역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데이빗 다스말치안이 목소리를 연기한 벱(Veb), 새로운 여전사 젠토라(Jentorra), 그리고 텔레파식 능력이 있는 콰즈(Quaz), 그리고 심지어 특별 출연한 빌 머레이가 연기한 크라일러(Kryler) 이렇게 네 명이 가장 눈에 띄는 양자 세계의 캐릭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과 외형만 소개되었지 그들이 그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캉이 어떤 식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부리는지에 대한 그 어떤 설명이나 묘사도 없고, 그냥 캉은 빌런이니까 원주민들을 괴롭힐 것이다라는 속 편한 논리로 어물쩡 넘어가는듯 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어떤 문제로 이어지냐면, 바로 민중의 난(?), 캐시 랭이 연설하고 모든 양자 세계 사람들이 뛰쳐나와 캉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이 장면에서 그 어떤 희열이나 전율, 또는 최소한의 감정적인 동요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묵직한 연설과 함께 소시민들의 반란을 그린 장면들은 거의 클리셰에 가까울 정도로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최악 중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만큼은 아니더라도, 또 최근 스타워즈 <안도르>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초반에 캐시가 "블립"으로 인해 시위하던 사람들을 돕다 경찰에 잡혔다는 설정 외에는 이후에 어떤 이유로 양자 시민들의 반란을 이끌게 되었는지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선해서? 추후에 영 어벤져스의 멤버로 활동할 거라서? 아님 아버지가 착해서 부전여전? 마지막 3막은 캐릭터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생각과 목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모든게 부자연스럽고 삐걱거리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3. 주인공 서사의 부재

<앤트맨>에서는 좀도둑에서 히어로가 되는 과정, <앤트맨과 와스프>는 다시 딸과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히어로 활동을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아주 대단한 고뇌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진 않았어도 스캇을 스캇답게 만들어주는 소소한 서사들이 있었죠. 그런 부분들을 이번 영화에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히어로니까 당연히 캉이 양자세계에서 나가는걸 막아야 하고, 아버지니까 당연히 딸을 구해야 합니다. 스캇이 무언가 선택을 해야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캉도 물리치고 딸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어떤 기지나 재치를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은 없고 그저 모든 상황이 그렇게 딱 맞게 흘러갑니다. 심지어 "블립" 이후 베스트 셀러 작가로 행복한 삶을 살다가 히어로 활동을 다시 하게 된 계기도 딸이 만든 양자 터널에 빨려들어가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상했던 플롯은 스캇이 잃어버린 시간, 즉 딸의 성장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소중한 시간을 캉이 보상으로 내걸며 본인을 양자 세계에서 꺼내게끔 꼬드기는 구조였습니다. 예고편에서 "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수 있다. 바로 시간이지"라던지, "난 이길 필요가 없어. 우리 둘다 져야만 해" 등의 대사들이 꽤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러길 바랐는데, 그냥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모든 대사들이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뭔가 나중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이 잔뜩 힘줘서 말한 대사들이 후반부에 가서는 전부 알코올처럼 휘발되는. 참 실속 없는 형편없는 각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외에 구조적으로도 캉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무려 한시간, 첫 액션신이 나오기까지 40분이나 걸린다는 점, 시리즈에서 가장 돋보였던 마이클 페냐를 뺐다는 점, 그리고 전작들의 카 체이싱 장면, 부엌, 토마스 기차놀이 세트에서의 액션신 처럼 앤트맨만의 창의적인 액션신이 전혀 없었다는 점 등 각본, 연출, 편집까지 장점보단 단점이 너무 도드라지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됩니다. 



4. 장점


그럼에도 꽤나 심금을 울렸던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요. 

각기 다른 행동을 보이다가 캐시의 목소리 하나에 모든 가능성의 스캇들이 한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치는 모습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시각화기킨 것은 흔치 않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감정의 동요가 굉장히 컸던, 이 작품에서 감정선이 가장 폭발적이었던 장면이었습니다. 

다들 입을 모아 칭찬하시는 캉, 조나단 메이저스의 연기력도 당연히 좋았습니다. <더 하더 데이 폴>, <디보션>에서도 참 재능 있는 배우라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에서 다음 달 개봉예정인 <크리드 3>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연기가 무색하게 다음 작품에선 또 아예 다른 모습의 캉으로 나올것이고, 관객들은 또 그 캉에 정을 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너무나도 큽니다. 부디 캉 배리언트들을 소모품처럼 낭비해 단순히 조나단 메이저스의 연기 포트폴리오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만달로리안> 시리즈에서 처음 개발된 반구형 LED 스크린 "더 볼륨"을 활용해 촬영한 이번 작품

또 CG 퀄리티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최근에 VFX 아티스트들의 혹사에 따른 퀄리티 저하 논란이 불거지면서 비난을 받은 바 있는데,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모독의 말도 안되는 게임같은 CG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크게 이질감이 안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더 볼륨"에서 대부분 촬영을 했던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마지막으로 이건 어찌 보면 앤트맨 시리즈의 공통적인 장점인데 다른 시리즈보다도 캐스팅의 조화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조나단 메이저스와 캐서린 뉴튼이라는 라이징 스타들, 폴 러드와 에반젤린 릴리같은 중견 배우들, 그리고 미셸 파이퍼와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레전드 원로배우들이 어우러져 신구조화가 상당한 밸런스 있는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5.마무리


근래 가장 많은 혹평을 받았던 <토르: 러브 앤 썬더>도 열심히 옹호했을 만큼 이번 작품에 대한 혹평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쉴드치기 참 쉽지 않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재능있는 신예 제작자들을 영입하는데에 마블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기 바빠 실질적인 주인공들에 소홀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을 내놓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듯 합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예로 꼭 팀 업 무비가 아니더라도 솔로 무비로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아니 오히려 팀 업 무비보다 더 수월할거라고 생각되는데, 왜 아직까지 그를 뛰어 넘을 만한 수작을 내놓지 못하는지 조금 의아하네요. MCU가 가장 잘해왔던 스토리텔링이 점점 약해지고 관객들이 인물들에게 이입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듯 하네요. 

저는 이전에 페이즈 4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어벤져스> 시리즈로 관객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고, 페이즈 1-3에서도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면 완성도가 다 고만고만했다는 나름의 소신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달랐어야 합니다. 고만고만한 작품이 아닌 돌아선 민심을 붙잡을 만한, 강렬하고 임팩트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구심점을 확실히 잡았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잠재력이나 자질도 충분해 있었고요. SF를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저조차도 쉴드를 치기 힘든 수준의 각본은 MCU의 열렬한 팬으로써 여러모로 자괴감이 들게끔 하네요. 



아맥 3D로 재관람 후 생각이 바뀌면 또 찾아 오겠습니다. 부디 N차에서는 좀 더 장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사진 출처: Wallpaper Abyss, 유투브 IMAX 공식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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