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느 박이 기생충을 만들었더라면?
지난 9월 17일 있었던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일주일 먼저 보고 왔습니다. 약 4천명이 넘는 관객들과 부산 해풍을 맞으면서 빅 스크린으로 즐기는 깐느 박의 예술 세계는 참으로 경이로웠는데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 합니다.
1. 전체적인 감상
우선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묘하게 기생충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는 겁니다. 깊은 수렁에 빠진 가족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사회적 계급을 전복시키고자하는 기본 대전제를 공유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블랙 코미디" 라는 장르와 영화 전체적인 리듬과 톤에서 약간 흡사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당초 영화가 홍보된 것처럼 박찬욱 영화 중에서 가장 웃깁니다. 과연 여기서 웃는게 맞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너무도 웃기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보고 나면 마음 한 켠에 큰 응어리가 남게 되죠.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신신당부 한 것처럼 이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소화하기 쉬운 영화냐 라고 물으시면 저의 대답은 'NO' 입니다. 굉장히 불편한 장면도 많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메타포들이 보이는데 직관적으로 바로 와닿진 않습니다. 두 세번 관람 후 어느 정도 곱씹고 분석해야지 비로소 이 작품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플롯이 가장 직관적이고 단순한 것은 사실이지만, 박찬욱 감독 답게 여기 저기 서브 컨텍스들을 많이 집어 넣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파악하려면 일반 대중들에겐 살짝 버거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보된 것 만큼 "모두를 위한 영화"는 아니라는 개인적 생각이며, <기생충>보다도 호불호를 더 심하게 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2. 이 작품의 최대 강점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캐스트 앙상블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가 지금껏 본 작품들 중 이토록 캐스트 앙상블이 완벽한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요. 마치 캐스트 전원이 연기 차력쇼를 펼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압도적인 연기를 펼칩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과하게 도드라져 주연이 묻힌다거나 하는 것도 전혀 없고,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하게 제 몫을 해냅니다.
이는 배우 개개인이 가진 역량은 물론 각본의 짜임새와 대사의 퀄리티 등 연출적 감각이 함께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 놓는다고 당연히 나오는 결과물이 절대 아닙니다. 모든 캐릭터가 실존인물같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또 전체 스토리에 있어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 아쉬운 점들
아주 간만에 박찬욱 감독의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목격한 것 같습니다. 복수 3부작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반가우실 법도 한데, 반면 전작 인 <헤어진 결심>을 좋아하신 분들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바로 그 중 한 명인데, 전작만큼의 우아함과 완급조절은 이번 작품에서 보기 힘들었다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아마 정서경 작가의 부재로 각본에 좀 더 톤다운된 차분한 터치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 보는데, 개인적으로 환갑에 접어드신 감독님이라면 한 층 더 절제되고 우아한 연출이 부각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주제 넘은 생각을 해봅니다.
반대로 이 말은 가끔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Over the Top) 연출들에서 드는 괴리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치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 세계를 보는 듯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이세계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이질감이 클수록 훨씬 더 디테일하고 유기적으로 세계를 축조해내야 할텐데, 그런 의미에서 '현실성'에 대한 밸런스가 살짝 애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4. 마무리하며
당연히 박찬욱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주는 무게감과 기대감이 있고, 그에 걸맞는 결과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직전 작품에서 어떤 경지에 오른 연출을 목격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을 완벽히 깨는 과감한 카메라워크, 히치콕 영화들을 연상케 하는 잦은 리플렉션 샷 등 내러티브적인 측면과 그 외 연출적 측면에서 박찬욱 감독이 나름 과감한 시도를 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잘하던 것들에 안주하고 내 장점을 살린 비슷한 결과물만 계속해서 내놓는 것만큼 팬으로써 더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없겠죠. 이번 작품은 제 취향을 완벽히 저격하진 못했지만, 하나 확실한 건 박찬욱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한번 마스터 클래스를 목도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중반부의 '고추잠자리'씬은 그야말로 박찬욱 감독이 왜 거장이라 불릴만 한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씬 하나에 담긴 에너지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며 이 영화의 단연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걱정되는 부분은 과연 이 작품이 얼마나 흥행을 할 수 있을지입니다. 요즘 박찬욱 감독님 본인께서 발 벗고 열심히 홍보를 뛰고 계시는데, 현재 한국 영화 시장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셔서일거라 생각합니다. 올 해 최다관객수를 기록한 작품이 500만 관객을 넘긴 <좀비딸>인데, 그 이상의 결과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장르 특성상 500만-600만만 기록하더라도 굉장히 큰 성공이 아닐까 싶은데요. CJ측에서는 더 큰 목표를 갖고 있겠지만, 여러 요인들을 감안할때 천만 근처에 가는 것조차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의 플롯을 적게 알면 적게 알수록 더 영화를 즐겁게 보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시다면 홍보 자료를 최대한 피하시는걸 추천드리며 이만 리뷰 마무리하겠습니다.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 9월 24일 극장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