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디즈니 보고있나
밤 11시 영화였음에도 꽤 관객이 많았습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IP 자체가 인기가 많아서도 있겠지만 전작의 팬층이 상당히 두터웠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맥스관을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번 작품은 마치 소니가 MCU에게 날리는 일침과도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선 멀티버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본 서사가 정말 깔끔합니다. 그 어떤 플롯 홀이나 의문점 하나 들지 않았고, 그 방식마저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는 느낌보다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관객에게 전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턱대고 극의 스케일을 확장 시키는 과정에서 복잡한 플롯에 캐릭터 개개인의 서사가 묻히면서 극의 긴장감과 텐션을 잃어가는 요즘 MCU와는 전혀 다릅니다.
작품을 보고 나면 지금까지의 스파이더맨 작품들이 작아 보일 정도로 모든 작품들을 아우르는 상당히 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스코프를 줌 아웃해서 훨씬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해야할까요. 시야는 더 확장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메인 캐릭터들의 서사는 훨씬 더 탄탄해지고, 감정선은 극대화됩니다. 이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완벽히 잡은 작품을 떠올리자면 그나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MCU가 13편의 영화로 한 일을 단 두 편의 영화로 일궈냈다는 점이겠죠. 그만큼 선택과 집중이 정말 뛰어난 작품같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웬의 서사에 훨씬 더 무게를 둡니다. 저번 작품에서는 마일즈와 피터 B 파커의 멘토-멘티 관계가 메인이었다면 이번에는 그웬과 마일즈의 서사를 중점적으로 파고드는데, 과하지 않고 적당한 로맨스 덕에 더 아련하고 애절하며 메인 플롯을 중심으로 로맨스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마일즈보다 그웬이 최애 캐릭터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저도 모르게 그웬의 서사에 더 몰입하게 되더군요.
비주얼은 전작을 훨씬 뛰어넘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작에선 지구-1610에서만 극이 이루어져 한 가지 스타일의 작화가 주를 이뤘다면, 이번 작품에선 멀티버스를 넘나들 때마다 작화의 톤이 크게 확확 바뀝니다. 지금 다시 예고편을 보면 한 컷 한 컷 어떤 차원에서의 장면이었는지 확실히 분간이 가능할 정도인데, 더 놀라운 점은 각 차원에 속한 캐릭터들의 톤과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는 겁니다. 워낙 다채롭고 개성이 강해서 오밀조밀하게 정말 잘 만든 하나의 포토 콜라주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어느 장면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더라도 한 컷 한 컷 전부 프린트해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미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딱히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만 VFX 부분에서는 그 어떤 관객도 실망시키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특히 그웬의 차원에서 캐릭터들의 감정선에 따라 화면의 톤이 바뀌는 연출에서 여러번 입틀막하며 감탄했습니다. 직접 보시면 아마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스터에그는 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미친듯이 놀라운 떡밥은 없지만 중간중간 관객들의 감탄사가 들릴 정도로 적당히 잘 뿌려져 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MCU와 직결되는 떡밥보단 대부분 소니 스파이더맨 작품들을 잇는 떡밥들이라는 힌트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스터에그를 찾는 과정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N차를 거듭할 수록 좀 더 많이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또 중요한 점은 순전히 팬서비스를 위한 억지 떡밥들이 아니라 작품의 플롯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 장면은 엄청난 클리프행어입니다. 당장 3편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여운이 많이 남는 엔딩입니다. 당초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파트 1과 파트 2로 계획되었다가 부제가 비욘드 더 유니버스(Beyond the Spider-Verse)로 바뀌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3편은 2편의 엔딩에서 바로 픽업해서 빠르게 극이 전개될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호평일색의 초기 관람평이 이해가 가는,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역대급 속편입니다. 최고의 코믹북 영화라던지 최고의 히어로 영화라는 등의 극단적인 호평에는 살짝 갸우뚱 할 순 있어도 최고의 스파이더맨 영화 중 하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내년 오스카 애니메이션상 수상은 거의 확정적이고, 작품상 후보까지 점쳐지는 미친 작품입니다.
비주얼을 떠나서도 필 로드와 크리스 밀러 듀오는 스티븐 맥필리와 크리스토퍼 마커스 듀오에 버금가는 최고의 스토리 텔러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들이 <한 솔로> 제작 중간에 아예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기보다 각본가 크레딧으로라도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네요. 실사 영화에 있어서 감독으로써의 역량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마블 스튜디오가 기용해야 할 각본가 1순위가 아닌가 싶네요. 부디 하루 빨리 이들의 첫 실사 코믹북 영화가 세상 밖으로 나오길 고대해봅니다.
현재 3차 관람까지 한 상태인데, 한국 개봉에 맞춰 상세 리뷰를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출처: Vanity Fair, 유투브 공식 트레일러 직접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