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과 선배를 찾았던 과거의 나에게’
‘나는 사수가 없어서 내가 다 해야 해.. 힘들다’
‘경험도 없는데 이 많은 걸 다 하라고?’
‘그 선배는 알려주는 게 하나도 없어! 좀 잘 알려주는 사람 없나?’
‘저 사람은 왜 저 모양 저 꼴이야? 한심하다’
‘내가 저 사람 보단 낫겠다’
불과 몇 해 전까지의 나는 ‘좋은’ 사람이나 ‘좋은’ 선배를 찾아 헤맸다.
내가 ‘좋은’이라고 수식어를 붙인 세상 어딘가 있을 그들은 분명 한없이 부족하기 짝이 없던 나를
뭐든 채워줄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했기 때문이었다.
나조차 나를 잘 몰랐고 살아오며 ‘내가 좋은 지 안 좋은지’도 모르면서 기본도 없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이 될 추상적인 그 누군가를 찾아서 만나기를 고대했었다.
만나기만 한다면 그 사람들의 노력과 가치관, 인내와 고통의 시간으로 빚어진 가치 있는 경험을
통째로 얻으리라 생각했었다.
이는 소위 ‘테이커(Taker)’의 마인드를 가졌었다는 말이다.
내게 ‘좋은’ 사람과 선배의 기준이 뭐였을까?
인사이트가 넘쳐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어둠을 밝혀주는 사람.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나에게 모든 걸 나눠주는 사람.
돌아가지 않아도 될 업무의 삶의 지혜와 팁을 아낌없이 들려주는 사람.
내가 모르는 걸 모두 알려주는 선배.
어려워하는 나에게 따뜻하게 격려의 한 마디를 해주는 선배.
안타깝게도 이 여섯 가지를 겸비한 ‘좋은’ 사람과 선배는 만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나는 겸손하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았으며, 모난 구석을 부정하면서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모난 사람이었기에 ‘좋은’ 이들이 수 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알지 못했다.
여태까지 그들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나에게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선배였을까?
부끄럽게도 ‘아니었다’이다.
이유와 핑계가 수 없이 많고 사연은 차고 넘친다. 내가 그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나누고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는 시점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내 많은 것들을 부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기에 그랬다.
나의 시간과 경험도 소중했지만 겸손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감사한지 몰랐다.
그래서 더 고통 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좋은’ 사람, ‘좋은’ 선배가 내 안에 있었다. 마치 ‘틸틸과 미틸’이 모험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새장 속 파랑새를 발견했던 것처럼.
사수가 없어서 일을 못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도, 경험이 없는데도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잘 알려주지
않는 선배를 만났다고 불평하는 것도, 타인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도, 내가 더 낫겠다 싶은 오만함 가득했던
것도 모두 내 안의 나와 마주하지 않아서였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좋은’이라는 수식어는 타인이 나를 그렇게 봐주기를 바라는 나의 욕구 때문이었고,
그 욕구가 제대로 성립되려면 내가 바뀌어야 했던 것이다.
그 파랑새는 때론 비난, 모멸감, 비인격적 대우와 모욕, 질투, 따돌림, 불합리, 자책, 자기 학대와 멸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으려 하면 찾으려 할수록 파랑새는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려 하면 할수록 더 멀리 파랑새를 찾으러 길을 떠나야 할 것만 같았다.
매일매일이 고단하고 지친다고 생각하던 서른 중반의 어느 날, 종교적 관점을 떠나 어느 책에서 ‘천국과 지옥이 내 안에 있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푹 하고 들어왔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글이었지만 그날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유치하다고 생각하던 ‘파랑새를 찾아서’가 오버랩 됐다.
‘나’라는 세상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온 세상이 지옥처럼 보이겠구나, 내가 막연히 다른 곳에는 있지도 않을 파랑새를 찾고 쫓을수록 절대 만날 수 없겠다는 자그마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좋은’ 사람과 선배가 되고자 한다면 그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되겠다는 의지로 지금 하고 있는 일, 환경, 시간, 사람을 대한다면
분명 그렇게 된다고 믿는다.
삶을 정반대의 시선으로 바라봐 왔던 나조차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되었고,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접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파랑새는 있다.
내 안에 있으니 너무 먼 모험을 떠나지 말고 나를 마주해봤으면 한다.
내가 ‘좋은’ 사람, ‘좋은’ 선배가 되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