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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앗따맘마 Jan 14. 2023

14살 단돈 4만 원으로 무작정 춘천 여행을 떠났다

14살 겨울의 초입 친구들과 나는 무작정 4만 원을 챙겨 춘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14살 중학교 1학년, 교육청에서 '자유학기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성적도 들어가지 않았었다. 어린 내게 시험도 안 보고 성적도 안 들어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최고인 제도였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으로 배정되는 바람에 엄마 몰래 PC방으로 등교해 놀기 바빴다.


그렇게 매일 놀기만 하던 어느 날 반복되는 일상에 서서히 무료함을 느낄 때쯤, 한 가지 설레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것. 즉흥적으로 행동하던 나는 곧바로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애들아 우리 기차 타고 여행 가보자"

워낙 즉흥적인 친구들이라 당연히 승낙할 줄 알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냉대한 반응과 함께 거절했다.


‘이 묘한 서운함은 뭐지, 괜히 섭섭하네‘ 기대와 다른 반응에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순간 오기가 생겨 끈질기게 친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야 맨날 피시방 가서 게임만 하면 재밌냐, 여행도 가고 그래야지"

거머리보다 더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친구들은 백기투항하여 함께 여행을 가게 됐고 목적지를 정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 친구 한 명이 말을 꺼냈다.

"뭘 그렇게 고민해 춘천에 닭갈비가 그렇게 맛있다며 그거 먹으러 가자 그냥"

우리는 고민할 것도 없이 춘천으로 결정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돈이 많지가 않았던 것.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우리가 무슨 돈이 있었을까. 수중에 있는 돈이라곤 인당 4만 원뿐. 그래도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다면 그깟 돈이 중요할까.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설렘은 기차를 예매하기엔 충분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왕복 15,000원 정도 했었다.




여행 당일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열차에 몸을 실은 우리는 춘천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춘천에선 뭘 해야 할지 그렇게 맛있다던 춘천 닭갈비는 무슨 맛일지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이 내 기억 속에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때부터 도화지에 잉크를 뿌린 것처럼 서서히 여행을 사랑하게 됐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야 더 재밌을까'

'반복되는 일상에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쌓아 가는 게 여행이구나‘


14살 겨울 처음으로
여행의 매력을 알게 됐다.




춘천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김유정역에 위치한 레일바이크를 타기로 했다. 겨울의 칼바람이 반갑게 인사하는 날씨였지만 낭만을 포기할 수 없던 우리는 주저 없이 레일바이크 2대를 빌려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힘들어도 웃었고 추워도 웃음이 나왔다. 친구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미쳤냐, 발 가만히 있는 거 말 되냐?” 웃으며 화를 냈고 추워서 손이 찢어질 것 같을 때도 친구들이 더 고통스러웠으면 하는 마음에 웃으면서 더 빠르게 페달을 밟았다. 남들이 보기엔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때만큼은 세상 우리가 하이틴 드라마 주인공이었다.


레일바이크를 타고 나서 찍은 사진

큰일이다. 생각보다 레일바이크가 비싼 탓에 수중에 총 3만 원밖에 남지 않게 됐고 돈이 없어서 닭갈비도 마음껏 먹지 못하게 됐다. 그렇게 우리들의 첫 끼는 5명이서 닭갈비 2인분과 공깃밥 3개가 전부였다. 그것도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가 불쌍했는지 밥은 서비스로 준거였다. 비록 양이 적었을지라도 그때 먹었던 춘천닭갈비는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봤던 닭갈비 중에 가장 맛있었다. 추억보정이 좀 들어갔겠지만.




당시에는 오줌 필터가 유행이었다..

닭갈비를 먹으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집으로 들어가야 했던 우리는 주변을 잠시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생각해 보면 춘천에서 한 거라곤 레일바이크와 닭갈비가 전부였을 정도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제일 재밌었던 여행을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14살의 춘천 여행을 선택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5명이서 2인분의 닭갈비만 먹어도 재밌었던 그 순간이 9년이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에 선명하니까. 그렇게 나의 첫 여행은 끝이 났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주변의 만류에도 다녀온 여행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해 줬다. 단순히 새로운 경험을 접했다는 것 외에도 낯선 환경에서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이질적 감정, 살았던 도시와는 다른 풍경의 모습을 두 눈으로 담을 때의 감동 등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게 여행지에서 받을 수 있는 선물이지 않을까.


여행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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