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를르 Jan 06. 2023

살만한 이유가 있는 날

안부인사

신정을 맞아 오랜만에 친척들이 전부 모였다.

그동안 코로나로 모임을 하지 않아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그 사이 뉴페들도 생겼다.

사촌 동생들의 아이가 명이나 태어난 것이다.  


집안에서는 귀염둥이 둘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다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반갑기도 하고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기분 좋은 모임을 가졌다.


다만 딱 한 분이 안 보인다.

큰어머니다.


큰어머니는 10년 넘게 파킨슨병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계신다.

3년 전 모임 때는 힘겹게라도 참석은 하셨었는데

이제는 모임에 나오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혼자 움직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앉아 있을 힘도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야 하는 삶.

심지어 음식도 섭취가 안되어 관으로 영양분을 주입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계속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시로 하신다고 했다.  

    

근데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마 나도 그랬을 것 같다.


매일 내가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를 반문하는 삶이라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드실까.


모임이 다 끝나고

친척들다 같이 큰어머니댁으로 세배를 갔다.


아버지 형제들 중

학창 시절 큰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워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맏며느리로 오랜 기간 시댁어른을 모시며

제사 때마다 가장 많이 고생하신 분이 큰어머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큰어머니 댁에 도착해서 세배와 안부인사를 드렸다.


평소에는 눈도 못 뜨고 하루종일 누워 잠만 잔다던 큰 어머니께서

그래도 반가우셨는지 의자에 앉아 또렷이 우리들을 쳐다보셨다.  

비록 말씀은 못하시지만 표정은 밝아보였다.


간병을 하던 딸들도

"오늘 우리 엄마 기분 엄청 좋은가 봐. 눈도 잘 뜨고 멀쩡히 잘 앉아있네"라며 좋아했다.


내가 인사를 드리자 친척 누나들이

"엄마. 저 까불이 왔어. 기억나지? 맨날 큰집에만 오면 뭐 하나씩 깨부수던 장난꾸러기 있잖아. 저렇게 점잖아졌어"라며 나를 놀렸다.

큰어머니는 내 과거 행적이 기억나셨는지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왠지 너무 슬픈데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큰어머니가 겉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속으론 무척 좋아하고 계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매일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을 텐데

큰어머니의 희생과 고를 기억하 이들이

리서부터 찾아와 반갑게 안부인사를 건넸던 오늘 하루는

그래도 왠지 살만한 이유가 있는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큰어머니께 직접 말씀은 못 드렸지만

언젠가 이 말은 꼭 전해드리고 싶다.


큰어머니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큰어머니의 존재 덕분에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참 행복했요.

그동안 너무 멋지게 인생 잘 사셨요.

그저 오래오래 저희 곁에 있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전과 20범 할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