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일기 10.

선한 데 지혜롭고.

by Staff J

"저 이거 확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AP 담당하시는 분께서 들고 온 Invoice 에는 두 개의 은행 계좌가 병기되어 있었다. 두바이로 나가는 기업 계좌와 미국에 있는 개인 계좌. 기업간 거래에 개인 계좌를 쓴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라 자초 지종을 물어봤다.


미국에 송금을 했는데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해외영업팀에 문의를 해보니 해외 거래처가 현재 감사를 받는 중이라 원래 거래하던 계좌가 동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계좌 말고 UAE 계좌를 알려줬고, 거기에 보냈는데 또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이 개인 계좌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주고 받은 e-mail을 forwarding 해달라고 해서 처음부터 검토를 했다. B 모씨와 주고 받다가 어느 순간에 W 모씨로 바뀌고, 그러면서 계좌번호는 K 모씨 꺼로 대체가 되어 있었다. 약 15번에 걸친 e-mail을 보면서 느낀 점은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이렇게 빌드업을 착실히 한건가? 그러려면 우리와 해당 거래처와 있었던 내용을 다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알 수 있다고? 그리고 큰 기업 직원 치고는 돈 받는 것에 매우 열심이네. 메일 보내고 그 다음 날 바로 받았냐고 reply를 요구하고.


송금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 쪽으로 60% 정도 기울었다가 아무리 그래도 개인 계좌를 쓴다는 점이 껄끄러워서 해외 영업팀에 직접 찾아갔다. 쭉 설명을 들었는데, AP 담당자가 이야기 해 준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이 걸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risk가 너무 크다고 이야기 했고, 해당 기업에 정리된 Invoice를 수정해서 발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정도는 이미 두 번이나 송금했다가 되돌아 온 것에 대한 확인 차원에서 적절한 요구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기술연구소 직원이 빨리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서 갑자기 정리된 invoice를 첨부해서 메일로 보내왔다. 지난 주에 이걸 받아서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재경 입장에서는 이렇게 급히 돈 달라는 직원이 제일 짜증난다. 계획에 들어 있던 거라면 계획대로 할 거니깐 기다리면 되는데 왜 그러는 거지 라는 마음이 들고 계획에도 없던 거라면 계획에도 없던 돈을 들고와서 지금 막 지급해 달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이 자기 돈도 아니면서 돈 쓰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한다고 비판할 만 하다. 그래도 이거는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해결되지 않는 40%가 있어서 기술연구소 직원에게 질의를 했다.


"차장님께서 주로 거래하시는 곳인데 이상한 점 못 느끼셨어요?"


처음에는 완강하게 빨리 대금 지급을 해야 다음 번 일에 차질없다고 주장하다가 몇 번 이야기 하더니 슬쩍 불안감이 들었나 보다. 중간에 담당자 e-mail이 outlook으로 바뀌었다고... 그래서 본인이 전화를 해 보고 알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은행에 지급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 다음날 해외영업 담당하시는 분이 메일을 보내왔다.


"XXX said they never changed remittance account. "K모씨" is not a valid XXX bank account.."


기술연구소 담당자가 해외 업체와 통화를 했고, 계좌를 바꾼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들었고, 그 사실이 해외영업팀에 전달되었고, 그게 다시 AP 담당자와 나에게로 전달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메일에는 공인된(?) invoice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 Invoice에는 우리가 원래 보냈던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뭐지, 이거 우리가 원래 보냈던 계좌인데...'


어쨌든 우리는 송금을 해서 해당 건을 마무리 했고, 지금도 그 기업과 잘 거래하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사기꾼들이 기업도 해킹하고 은행도 건드리고 해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한다. 하... 진짜


일을 할수록 성악설이 맞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상하면 확인해야 한다. 이게 지혜로워 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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