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수고로움
1. 외로움과 수고로움
회사 근처에서 5일간 숙식을 한 적이 있었다. 생수 500ml 30개와 초코파이 한 상자, 그리고 콜라 한 병이 내가 필요한 전부였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외롭긴 했지만 몸은 편했다. 출퇴근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때되면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씻겨야 하고 재워주기도 해야 한다. 공부를 봐줄때도 있고 같이 놀 때도 있고.
극단적으로 간단하게 표현하면 외로움과 수고로움 사이에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2. 토익
토익 시험을 봐야했다.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뭘 가져가야 되는지 뭘 가져가지 말아야 하는지 시험 시간은 얼마나 긴지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했다. 요즘은 토익 볼 때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신분증만 가지고 시험을 봐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검색하는데 둘째가 와서 아빠 나랑 놀아줘~ 라는 명령어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빠 이거 좀 봐야되니깐 조금 있다가 하자. 라고 했다. 둘째가 화면을 쭉 보더니 연필이 필요하네 내가 빌려줄께~ 라고 하더니 자기 새연필을 가져와서 연필 깎기로 깎기 시작했다. 다 깎은 뒤에는 다른 연필 2자루와 지우개까지 빌려주었다. 아빠 시험 잘 보라고..
토익 시험 당일 연필 세자루와 지우개 그리고 신분증을 챙겨서 갔다. 이름 마킹하고 서명하고 기다리는데 연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연필에 둘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나이 먹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토익이나 보러 다니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질 뻔 했는데, 아들 이름 새겨진 연필을 보는 순간 더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말자 라고 다짐하고 더 집중하자 라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
3. 아들 둘
아들 둘 아빠라고 하면 위로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힘들겠다고. 맞다. 육아를 하다보면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그 힘듦이 기억나지 않게 하는 때도 많다. 그리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부모로 만들어 주고 아빠라고 불러주는 게 참 감사하다.
유치부 아이들을 보면서 딸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긴 하지만, 난 우리 아들 둘이 훨씬 좋다.
4. 보호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아이들의 완벽한 보호자가 될 수 없겠구나 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첫째는 나보다 스키를 잘타기 시작했고 나보다 수영을 더 잘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피아노를 더 잘 치기 시작했고, 나보다 게임을 더 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이기구도 더 잘타기 시작했고... 난 이제 멀미나는데...
우리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못살게 될 가능성이 과거 어느 시점보다 높아진 지금, 아이들이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는게 있을 때 더 많이 가르쳐 주고 더 많이 준비시켜 주고 싶은데, 그게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까봐, 아이들과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까봐 걱정이 된다.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녀석들 밥 벌어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할텐데 라는 걸 언제쯤 안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