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라 쓰고 해방이라 읽는다
이별을 했다. 드디어 했다.
X는 나를 참 많이, 자기 방식대로 사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진 못했지만 그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도 엄밀한 언어가 아닌가. 언어가 통하는 사람을 갈망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그에게,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그에게 (그는 부잣집 자제로 돈이 아주 많았다) 나는 늘 판단의 대상이었다. 늘 '안전하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수 틀리면 무섭게 분노하는 그에게, 묘한 오기가 생겨 어떻게든 '기준 높은 네게도,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증명하고만 싶었다.
그렇게 일년 반을 증명하다보니 내 색깔을 잃어갔다.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알록달록하고 예측 불가한 맛이 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너무나도 잿빛의 지루한 사람이 되어있었어.
이전의 재미있고 솔직한 내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를 되찾기 위해 이별을 고했다. 몇달이고 그는 쉽게 놔주지 않았지만 맘을 독하게 먹었다. 그렇게 솔로가 됐다.
대부분의 이별은 가슴이 찢어지기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무언가를 해봐야겠다고 말하는 나의 야심찬 계획에 항상 '그거 해서 뭐하냐'고 시작도 전에 초를 치는 X도 인생에서 삭제다.
해방이다. 일에 몰두하며 한국에서의 시간을 보내다, 때마침 사둔 비행기 티켓 날짜에 맞춰 뉴욕으로 떠났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미국에서 살고 싶었지만 서른이 다 되가도록 미국 땅 한번을 못 밟아봤다. 유럽과 미국, 둘중 어디갈래 질문에 주구장창 유럽만 골라댔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른다. 역사가 짧은 나라라고 볼게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음.)
하지만 Deep down,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힙합, 90년대 알앤비를 동경하던 내게 이 모든 문화의 발상지는 꿈과도 같았거늘. 이왕 나를 되찾기 위한 여행지를 하나 선택해야 한다면 그동안 미루고 미루었던 미국 땅이었다. 딱 기다려 JFK!
사람들은 뉴욕을 세계 최고의 도시라 말한다.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곳. 그 이유는 그냥 셀프 브랜딩을 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짱이야",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 이미지와 달리 실상은 죽어도 안나오는 비자, 높은 세금과 하늘의 별따기인 일자리 찾기, 홈리스와 치안 문제, 높은 life cost까지. 가성비 참 안나오는 도시인데도 길을 걷다보면 'I Love you, New york' 따위의 낭만적인 문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 나도 당했다. 뉴욕 시의 가스라이팅은 뉴욕을 사랑하게 만든다. 아니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을지도.
실제로 보면 더 푸르고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 화려한 광고판으로 도배된 타임스퀘어 광장, 높고 화려한 5번가 건물들 사이 자리한 고딕풍의 세인트 토마스 교회, 같은 밀가루로 만든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차원이 다른 베이글. 거리를 감싸는 제이지와 알리샤 키스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 BGM까지, 여행자로서 뉴욕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뉴욕의 화려함을 압도한건 뉴요커들의 자유로움이겠지. 여기 인간들은 남들 시선은 좆까고 입고 싶은 대로, 길을걷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속에서만 읖조릴게 아니라 그냥 밖으로 질러버린다. 서른 전에 결혼해야 여자는 시집을 잘간다, 대기업에 들어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한국식 정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는 뉴요커들의 마인드를 동경했고, 욕심냈다.
뉴욕을 욕심나게 하는 건 단언컨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 인스타그램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콘텐츠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힌지 데이트'다. 힌지는 미국에서 많이 쓰이는 소개팅 앱인데, 우리나라야 지인 통해 소개 받는 일이 흔하지만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그 빈도가 낮은 편이라고.
무튼 내가 봤던 릴스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여행을 떠나 깐 현지 소개팅 앱으로 만난 남자와의 데이트 썰. 누군가는 그 관계가 발전해 가슴 아픈 long distance relationship을 하다 결국 삶의 터전을 옮기고, 미래를 함께하는 과정을 릴스에 담더라.
아무튼 여행 중에 만난 완벽한 타인과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완벽히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란 이방인과 케미스트리를 공유하는 일은 어찌보면 그 때 내게 가장 필요했을 일탈이었을지도 모른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며 만나게 되는 한국 남자들은 과거 연애의 실패로 체득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적용하며 계산기를 야무지게 두들겼다. 물론 남자들이 가정을 꾸리면 ATM기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냐. 하지만 사랑도 결혼도 계산적이고 싶진 않더라. 시기에 등떠밀려 하는 결혼보다, 아직은 미치게 사랑해서 평생의 짝을 만나는 일이 더 고팠다.
때마침 힌지로 만난 남자와 진득하게 연애하고 올해 약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고등학교 친구의 말을 듣고는 플러스 알파로 공신력이 생겼다. 안 깔 이유가 없었다. 안그래도 기계치인 나는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며 겨우겨우 설치에 성공하게 된다. 물론, 나는 존나게 남미새다.
설치하자마자 미친듯이 몰려드는 라이크에 괜히 우쭐해졌다. 나 여기랑 좀 잘맞나? 진짜 뉴욕,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