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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섭 Jun 26. 2024

회상(回想)

의료인으로서 삶의 흔적

직업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므로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 의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일이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맛있게 차려 주는 음식점, 더위를 잊게 하는 에어컨 설치 기사님, 서민의 발이 되어 주시는 버스 기사님 등등  수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아쉬움 없는 삶을 꾸려 갑니다.


그중의 하나인 의료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미력하나마  사람들이 질환이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해 오고 있는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모든 직업이 소중하지 않음이 없으나   의료는 기쁘거나 즐거울 때  찾는 곳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  찾아 주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명의 뒤에  죽은 사람이 많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경험이라는 귀중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깨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분야의 장인(匠人)이 되기 위해서는  수없는 실패를 디딤돌 삼아서  일정한 경지에 올랐을 것입니다.

대상이 물건이라면  약간의 경제적 손실로  감수하고 넘어갈 수 있으나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의료는  도덕적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나름 최선의 방법과 궁리를 통하여  진료하지만   초창기 부족한 경험과  경륜은  치료 결과에 아쉬움을 두고 있습니다.  초기엔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부담을 더 증가시켜 드린 경우도  적잖았다  생각하며  무력감과 초라함으로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고민은 채찍질로  한의학과 생명이라는  화두에 집중하게 하였고  어느 순간 나름 관점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마치 먼저 경험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도하거나 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고귀한 명칭이라 봅니다.


30여 년을 임상을 하고  느낀 바를 환자들에게 제시하여  따르게 했을 때 과연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가치가 부여될 것입니다.


다행인지 고맙게도  제가 나름 설정한 가치관으로 치료한 후부터  저에게 단골로 다니던 환자분들 대부분이  특별한  합병증이나  질병을 악화시킨 경우는  거의 없었음에  나름  저의 관점에 큰 오류가 없음을  보증하는 것 같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참된 의료인은  본인이 건강해야 하며  아울러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쳐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건강을 설파하면서 정작 본인이 질병에 걸리거나 단명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있지요?

어떤 현상에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왜 그럴까? 하는  본인만의 지적인 호기심이  그 물음에 답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입니다.


채워지지 않은 퍼즐 판을 항상  머릿속에  지니고 있어야만  지나가는  삶의 여정과 대화, 독서 등 여러 조건에서 얻는  숱한 퍼즐 조각들에서  딱 맞는 그 부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외쳤던 유레카도 금관의 가짜 유무를 해결하려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내내 간직하였기 때문에  잠깐 스치는 자연현상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었지요.


 오링테스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믿지 못하였었는데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시연을 하고  받아보니까  명확한 차이를 보였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원리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고  어떤 문헌을 보더라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없어서  화두처럼 시간을 두더라도 그 원리를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 물리나 화학 생물, 생리, 천문 등 여러 관심 있는 책을  살펴보다 보니  조금씩 펑크 난 퍼즐 구멍에 맞는 퍼즐 조각들을 모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인체의 여러 현상(증상, 병증 등) 등의 이해에도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또 한 번의 계기는   수족이 냉하다고 호소하던 환자에게  냉한 처방을 사용했는데  다음에 오셔서  그 한약을 복용하고 나서 손발이 따뜻해져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보통은 수족이 냉하면 더운 약을 써야 한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인데 반대로 사용하여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해프닝은  상열하한의  원인을 고민하게 하여 그 원인과 해답을 알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한의원 전화벨이 울리면 내심 긴장하게 됩니다.

고맙게도 지금은 거의 없지만  개업 초기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여  처방이 정확히 맞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불편함이 따를 수 있고  환자분들을 본의 아니게 힘들게 해 드린 경험이 있어  전화받기가 힘들었었던 그 흔적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나 봅니다.


아마도  모든 직업군에서 유사한 경험이 없진 않을 테지만 특히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의료업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으리라 봅니다.


결국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아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이  환자를 잘 낫게 하는 대의명분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만족을 위해서입니다.


의사들의 평균 수명이 61세 전후라고  알려져  일반인들보다 훨씬 적은데  그 속에 숨어 있는 스트레스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 카피 글처럼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영위하는  우리들은  건강한 삶이  당연하고  누구나 아름다운 삶을 누릴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라고 귀찮게 어른들에게 묻는  아이들처럼  하나씩 화두(話頭)를  지니고 사는 하루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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