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절망 편
마닐라 공항에서 환승을 하던 중 주머니를 더듬어보니 지갑이 온데간데없다. 비행기에 두고 내렸나. 어디쯤 떨어진 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 4개의 카드와 운전면허증, 현금, 단골 식당 쿠폰까지 몽땅 증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리를 떠나기 전 잘만 되던 심카드도 작동하지 않았다. 휴대폰도 먹통인 상태로 자정 넘어 공항에 떨어진 답도 없는 이방인이었다. 다행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입국 전 온라인으로 비자도 발급했고, 픽업 택시도 미리 예약해 뒀다. 늘 지갑 안에 보관했던 집 키도 이번엔 웬일인지 가방에 두었다.
4월부터 감사 일기를 써보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감사하게 될 줄이야. 이런 심각한 수준의 덜렁이에게 국제 미아가 되지 않게 일말의 예지력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지에서 날거지로 돌아다니지 않게 집에 돌아갈 때쯤 잃어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낙 잘 싸돌아다니니 지인들은 나의 안위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고요한 호수 같은 여정은 가까이서 지켜보면 대환장 쓰나미 파티다. 4분 차이로 첫 해외여행날 출국 비행기를 놓쳤었고, 기차를 타고 가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이 두 차례 있었으며, 휴대폰과 에어팟도 두 번씩 잃어버렸다. 출국 전날 잃어버린 탓에 그대로 휴대폰 없이 국경을 넘은 적도 있었다.
한국은 안전과 편의로는 세계 최고 국가다.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 어쩔 수 없이 작은 일에도 파들짝 놀라는 온실 속 화초로 자란다. 그 정신머리로 세상 밖에 나오면 ‘그렇게 약해빠져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래’, 하고 잊을만하면 벌어지는 고난과 역경에 뺨을 찰싹찰싹 맞는다.
브라질에서 자란 내 친구는 내가 파티에서 휴대폰을 도둑 맞고 울고 있을 때, ‘괜찮아, 칼빵은 맞지 않았잖아. 휴대폰만 가져가서 다행이야.’라는 얼토당토않은 위로를 해주었다. 이해는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집 앞에서 타고 있던 차를 강도당했었으니까.
3년 전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어두운 밤 광장에서 세 명의 괴한에게 뚜드려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를 목격했었다. 그때 나의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재킷에서 응급 처치 키트를 꺼내더니 상처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뭘까 이 신박한 준비성은?
미국 버지니아에 한 홈파티를 초대받았을 땐, 친구가 그 집에 강도가 찾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때 친구는 집에 있던 장총 한 자루를 들고 나와 그놈 머리에 겨누고 꺼지라 외쳤다고 한다.
모험이란 게 원래가 결코 장밋빛 세상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불 밖 세상은 무법지인지라, 그곳에서 내딛는 한 발 한 발은 그만큼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게 한다. 대신 한 가지 장점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다음 찾아오는 역경에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처음 해외 생활을 할 땐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이젠 그냥 허 이 똥멍청이가 또?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성장의 경험은 결코 행복하고 온화한 순간들만 켜켜이 쌓여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슬퍼도 보고 아파도 보며 외부의 시련에 대한 역치를 높일수록, 사람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너무 편안하고 안락하기만 한 공간은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자극제가 되지 못한다.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 맞다. 지불한 값으로 하는 일이란 하루하루 내가 똥멍청이임을 증명하는 것.
이번 일을 겪고 확실히 느꼈다. 앞으로도 나는 분명 칠칠이 덜렁이일 것이라는 것. 금번의 충격 요법으로 당분간은 소지품을 각별히 주의해 챙길 것이란 것. 어찌 되었든 지갑 없이도 길거리에 나앉지 않는 생존력에 위안을 얻을 것이라는 것.
똥멍청이가 거친 세상을 나는 데 필요한 건 안전한 담장이 아니다. 그보단 이 어리바리 앞에 닥칠 문제들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좀 더 강력한 똥멍청이가 되어 나선 담장 밖 세상은 단언컨대, 그만한 가치가 있다. 항상 내가 잃은 것 이상의 해결책을 돌려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