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많은 날이 Jan 21. 2023

숨 막힐 듯 아슬아슬한 시스템

육아 일과 시간 (feat. 회사)

안절부절 아침
시스템을 맞추기 위한 미션 시작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안절부절이다.


회사 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6시 반에서 7시 사이(1시간 거리의 회사를 일찍 출발해 8시부터 일과 시간이 시작되어야 5시 퇴근을 맞춰 6시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있다),


아이들 깨어 나는 시간 7시 반에서 8시 사이. 적막한 어둠을 뚫고 환한 불빛조차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발자국 소리에 잠이라도 깰라. 노심초사 조용조용 최대한 음소거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추운 겨울 한 때는 두 아이가 잠이 예민할 때가 있어 머리도 드라이기 소리 때문에 말리지도 못하고 나올 때도 있었고 겉옷을 아이 방 옷걸이에 어 놓고 빼놓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얇은 옷 몇 벌 주워 입고 최대한 바깥 동선을 짧게 하여 출퇴근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극성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깨는 순간 아침 모든 일정이 깨져 버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집을 나서서 현관문의 소음까지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안심을 하고 출근할 수 있었다.


여보, 나 휴가 다녀올게


그렇게 회사에서의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 아내에게는 재택이 가능한 날을 빼고 회사에 다녀와야 되는 날이 되면 "휴가 잘 다녀올게" 라며 괜스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곤 한다.


2시간의 숙명


그렇게 일과가 끝나고 오후 5시(5시 이후 미팅이나 회사 연장 업무가 있는 날이면 집에 도착 시간이 늦어져 전혀 집안일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잠자리에 바로 들어가야만 한다)에 불이 나게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얼추 오후 6시가 된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첫째의 이름을 부르며 꼭 껴안아 주는 것으로 다시 육아가 시작된다. 아이는 뭐든 먹고 있으면 이쁘게도 아빠 한입 넣어준다.


뭐든 아이가 넣어주는 음식은 왜 이렇게 다 달콤한 맛이 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


후닥닥 화장실로 직행하여 군대 5분 샤워를 시전하고 바로 저녁식사를 한다. 저녁식사 때 둘째가 자고 있거나 거실에서 아직 떠듬떠듬 기지만 울지만 않는다면 우리 부부와 첫째 그리고 장모님의 식사가 여유롭다. 하지만 둘째가 울어 젖히는 날에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마음 편히 식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잠들 때 소화가 잘 안 돼서 그런지 갑자기 터지는 배 속 뱃고동 소리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첫째는 보통 또 보기 좋게 밥을 먹는 중간 응가를 배출한다. 덕분에 목욕과 머리 감기(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로 머리는 내일 감을 거야를 시전 하는 첫째에게 여러 가지 알랑방구를 껴 가며 설득하기 일쑤다)를 응가 치우며 한꺼번에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그다음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데 한 세월, 다시 잠 옷 입히는데 한 세월, 머리 묶는데 한 세월. 그런데 아직 밥을 다 안 먹었다. 맙소사! 아직도 우리 앞에 큰 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니.


다시 잘 먹을 산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미 응가와 목욕을 통해 밥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다면, 이걸 다시 먹이기 시작해 다 먹이기까지 아이와의 씨름이 이어진다. 스스로 밥 잘 떠먹었으면 좋겠지만 "밥이 너무 많다. 간식 먹자" 등 말이 많아져도 문제다.


겨우 밥까지 다 먹이면 다음 재우기 준비에 돌입한다. 둘째가 보통 자는 패턴에 첫째도 맞추려다 보니 밤 8시 침대 입실 취침을 시스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른 취침을 위해 다음 관문은 이 닦이기이다. 이를 잘 닦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튜브를 틀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유아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좀 잘 닦아주려 조금이라도 세게 문질러 주인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날이면. 상상하기 싫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서로 바통 터치를 하며 서로의 밤잠 준비를 한다. 중간중간 아이들을 챙기며 모든 게 마무리되면 가습기 혹은 제습기를 가동했다. 특히 둘째를 위한 쉬~ 소리 12시간짜리 너튜브 영상을 틀어 놓는 것으로 취침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후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우리 부부의 각고의 노력이 진행된다. 아내는 둘째가 잠들길, 나는 첫째가 잠들길(최근부터는 두 아이와 같이 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모든 퇴근 후의 일정이 2시간 안에 일어난다.


참 소중한 시간인데...

오후 8시부터의 다시 시작된 첫째 육아.


이때부터는 좀 여유롭다. 침대에서 첫째가 좋아하는 놀이(그때그때마다 다르지만 응가 놀이와 술래잡기 놀이는 변함이 없다)를 함께 한다. 중간중간 동화책도 읽어주기도 하고 잠들기 전 에너지를 껏 빼도록 도와준다. 이 시간에 온전히 첫째와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체력이다. 언제부턴가 첫째는 생생한데 나는 방전된 체력 때문에 순간 잠드는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첫째는 자지 말라며 나를 꿈속에서 다시 꺼내준다.


'너는 도대체 언제 잘거니ㅠ.'


잠시 정신이 깨어 첫째를 보고 있자니 멀리서 들려오는 둘째 울음소리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대, 고생이 많구려. 나는 그에 비해 다행인 듯 하오. 고맙소. 동지'


그렇게 9시가 지나 9시 반에라도 잠들면 땡큐다. 10시가 지나는 날이면 나는 거의 자포자기로 내가 아이를 놀아주는 건지 아이가 나를 놀아주는 건지 모를 정도다.


그렇게 두 아이가 잠에 들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부부에게 달콤한 꿀 같은 휴식이 찾아온다. 밀린 잠을 자고 싶지만 두 아이가 잠든 시간도 너무 소중하다.


'어라, 도대체 어떤 시간이 더 소중한 거야'

속으로 웃어본다.


이렇게 길고도 긴 하루가 다시 저문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는 것처럼...


그래도


이유 모를 행복감에 미소를 짓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딸들과 함께 자라는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