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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많은 날이 Jan 25. 2023

아이는 부모를 이해시킨다

부모와 속 깊은 통화 이야기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라도 가까이

일주일에 한 번은 퇴근하는 길에 따로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것이 내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보통은 아내와 아이와 함께 있는 주말에 한번 영상 통화를 드리곤 했다. 응당 효도라도 이렇게 하라는 마음으로 주기적으로 전화를 드려 아이가 어떻게 크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보여드리긴 하는데, 아이들 챙기느라 급하게 통화를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요즈음 퇴근하는 1시간 거리 사이 혼자 부모님께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전화드리기 시작했다.


사실 부모님과의 전화통화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늘 잔소리로 시작돼서 잔소리로 끝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다.


"졸음 운전 하지 말거라, 건강 잘 챙기거라, 책 좀 읽어라". 등등. 듣기만 해도 귀가 따가울 정도이다.


또한 처음부터 통화를 정기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통화란 그저 안부인사 가끔 드리는 식에 간단한 통화로 대신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귀 따갑고 부담스럽고 지루한 통화 시간이 이상하게 기다려지게 되었다. 무슨 이유일까?


어릴 적 따뜻한 기억 한 모금


때론 삶이 지치고 어려울 때 옛 어렸을 적 기억의 한 페이지를 넘겨보곤 한다.


아침 일찍 가기도 싫은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가고 싶은 가족들과의 아침 목욕탕, 부모님이 주말 부부셨던 시절 멀리 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엄마, 동생과 따뜻한 이불속에 다이얼 티브이로 재밌게 보던 판관 포청천, 2 대 2 복식경기에서 단거리로 빠르게 치며 누가 더 잘 받아내나 내기하던 배드민턴 경기.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늘 내 마음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내가 우리 아이들을 볼 때 그 당시 기억을 통해 더욱 증폭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이맘때 우리 부모님도 나를 이런 마음으로 보셨던 거야'


아이는 부모를 이해시킨다


통화가 시작될 때 서로의 안부도 다르다. 엄마는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고 나는 부모님의 안부를 물으며 시작된다. 이제 부모님도 우리 부부보다 아이들이 중심이 돼가는 걸 아시리라. 그래도 나 챙기는 대화가 빠지지 않는다.


부모님은 나를 바라볼 때 자기가 헌신으로 키웠던 아들이 이미 이만큼 훌쩍 커서 육아를 하고 떳떳하게 사회 활동하는 모습이 대견했으리라. "아들,  가정을 잘 꾸려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구나" 그러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밖에서 이런저런 고생할 아들이 못내 안쓰러우신 듯 "밥은 잘 챙겨 먹고 운동 좀 하고 건강 잘 챙겨야 한다" 매번 반복되는 대화지만 이제 받아들이는 감정이 이전과 사뭇 다르다.


"두 아이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데 저희 둘(나에게 한 명의 여동생이 있다)은 어떻게 키우셨어요?"


그러면 하시는 말씀이 "지나고 나니 몰랐지. 어떻게 키우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 당연히 엄청 힘들었지. 그런데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게 너희들이 잘 커줘서 그게 고맙구나"


참 부모는 그런 것 같다. 그대들이 그렇게 고생해서 키우시고 나서 잘 커줘서 고맙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나를 키우던 방식에 원망도 많았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다가 잘 안되면 의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느꼈던 결핍이나 안 좋았던 기억을 꺼내서 원인을 찾았던 적이 있다.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더 뇌리에 강하게 남아서인가.


하지만 아이를 낳고 살아가다 보니 우리 부모님 젊었던 시절이 내 인생에 투영이 되는 듯하다. 그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를 엎어라 키우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가끔씩 퍼즐이 맞춰지듯 내 머릿속에 갑자기 회상이 되곤 한다.


그때 나는 그 큰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올려 본다


이따금 엄마랑 그 시절 아빠는 육아하는데 아무것도 안 도와줬어 라는 핀잔 섞인 우스갯소리와 아버지의 이 차장(현재 회사에서 직급이 차장이어서 아버지가 부르기 시작한 칭이다) 회사는 잘 돌아가지?라는 나 말고 회사 챙기시는 소리.


즐거운 대화 마지막에는 늘 이렇게 마무리된다.


"아들, 가끔 이렇게 아이들 없을 때도 전화 주니 고마워. 아이들 있을 때는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 못해 안타까웠는데 이렇게라도 이야기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 늘 건강 챙기고 또 보자."


부모님도 기다려지는 이 통화. 다음 주에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흐뭇한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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