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1.
"자기! 오늘은 등산 안가?"
"아..가야하는데...다리가 아파...그래도 가야겠지? 가고 나면 후회는 안하니깐...그치?"
등산을 하고 난 그날 저녁에는 다리가 매우 저렸다. 다리 저림은 잘 때 특히 강하게 느껴졌으므로 잠에 빠져드는게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누군가가 내 몸 여기저기를 두드린 것 처럼 온몸이 아팠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길을 나서는게 쉽지 않았다.
오늘도 주방 식탁에 앉아 한숨 푹푹 쉬며 '안가도 찝찝한데, 가면 힘든데.' 혼자 중얼중얼 거렸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지러진 집안을 둘러 보면서 청소하기 싫다를 외치고 집을 나섰다.
왜냐하면 나가지 않으면, 집안일을 하면서도 '나갈 걸', 점심을 먹으면서도 '나갈 걸', 애들 하원 시키면서도 '나갈 걸', 저녁 식사를 준비 하면서도 '나갈 걸', 남편을 보면서도 '나 나갈 걸!' 할게 분명 했기 때문이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걷는다. 몸살 감기에 걸린 다리마냥 다리에 힘이 없어 내 피가 골반에서 멈춰 아래로 흐르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발목에서 자꾸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다리를 움직여 본다. 소용이 없다.
증심사 입구까지 50분을 걸은 후, 무등산 토끼등으로 오르기 시작 했다. 몸살 감기에 걸린 듯한 다리 상태에 오늘은 평소보다 몇 배나 더 힘들다. 그냥 집에 있을 걸, 왜 나왔지... 또 다시 후회가 밀려 왔다.
오르는 내내 왜 나왔니, 왜 나왔니, 왜 고생은 사서 하니, 도대체 왜 이러니....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목표한 지점을 완수 했다. 증심사 상가로 내려가자마자 별다방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포장한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시며 기세등등하게 집을 향해 걸었다.
갑자기 오르는 길에는 아프지 않았던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 했다. 참고 걷기엔 너무 아팠기에 길바닥에 앉아 신발을 벗어 던지고 양말을 벗었다. 어쩐지 많이 아프더라니, 양말에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세번째 발가락과 네번째 발가락이 맞물리면서 네번째 발톱이 세번째 발가락 살에 파고 들어가 피가 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다시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집을 향했다.
밤새 비가 추적추적 하게 내리고 오전에 잠깐 멈춘 날, 이미 등산이 습관이 되버린 나는 오늘도 나가기 싫다!를 외치며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등산 가방으로 인해 어깨근육이 살짝 뭉친 듯 하다. 오르는 중간중간 손 깍지를 등 뒤로 끼고 팔을 쭉 늘려 어깨를 뒤쪽으로 밀어 본다.
또한 올라가는 내내 엉덩이 근육이 경직되는 느낌을 받았다. 오른쪽 엉덩이 측면에서 통증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오늘도 목표지점까지 도달했다.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흐린 날에 마음이 급했나 보다. 집에 얼른 들어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내려 가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살짝 뛰는 느낌이었달까? 그렇게 거의 내려 왔을 때 쯤,
앞으로 쭉!!!!!미끄러졌다. 왼발이 젖은 돌 계단의 눈으로 보기에도 반질반질 광이 나는 매끄러워 보이는 곳을 딛었고, 등산화가 아닌 평소 대충 신고 다니는 슬립온 느낌의 신발 밑창은 돌덩이에 촥 붙지 못했으니, 왼발이 허공을 찼다. 왼발에 힘입어 오른발도 힘을 쓰지 못했나 보다. 정말 순식간에 내 엉덩이는 돌 계단에 내쳐졌다.
와...엉덩이를 들썩여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강한 통증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꼬리뼈 부근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119에 전화 해야 하나 고민하며 한숨 돌리니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2주 정도 등산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왜 자꾸 여기저기 통증을 느끼면서 등산을 지속하냐고 물었다. 나도 그 이유를 몰랐기에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내 몸의 반응에 전처럼 무디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통증을 느끼며 집에 도착한 순간 성취감이 들었다면 이상하려나?
이러나 저러나 등산은 매력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