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그런 생각한 네가 이상한 것 같음."

by 연주

2022년 10월 8일


교문 앞에서 만난 졸린 눈을 한 아들은 나에게 자신의 책가방을 주었다.

"엄마! 봐봐! 다 흘렸어! 그래서 선생님이 '교사용 알림장' 주셨어. 내일 알림장 비닐에 넣어서 학교 오래."

학교 소풍 다녀온 아들이 마시다 만 오렌지 주스를 가방 안에 흠뻑 흘리고 온 것이다. 알림장, 물티슈, 체험하고 챙겨 온 피자까지 싹 다 젖었다. 가방 아래가 흥건하다. 나는 어이없는 이 상황이 웃겨서 똥꼬쟁이! 한마디 해주고 바로 태권도 학원으로 보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욕조에 넣고 세제를 부은 후 물을 틀었다. 물소리를 들으며 가방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불현듯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버스의자에까지 흘린 거 아닐까? 그러면 버스기사 아저씨한테 한 소리 들었겠는데? 알림장도 싹 다 젖어버렸던데, 선생님한테 칠칠맞지 않다고 혼났을 수도. 졸린 눈이 아니라 의기소침한 눈 같았어! 혼나서 기분이 안 좋아서 그 눈을?


책을 읽고 있던 딸에게 물었다.

"딸!! 네 오빠 아까 기분 안 좋아 보였지?"

"어???... 응!"


태권도 학원 하원길에 만난 아들을 만나자마자 물었다.

"너 혼났어? 주스 흘려서? 버스의자 위에도 흘린 거야? 알림장 젖어서 혼났니?"

"무슨 말이야? 왜 혼나?"

"혼날 수도 있잖아!"

"그게 무슨 혼날일이야? 주스 흘린 게 혼날일은 아닌데."

아...


집에 돌아와서 세제물에 푹 불려 논 가방을 빨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2년 만에 빤 이 가방. 이 가방이 이리 쨍한 파란 색인줄 이제야 알았네.

"자기야. 나는 혼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혼날 일 아니래. 대박이지? 우리 세대 참 힘들게 학교 다녔다. 그렇지?"

"그런 생각한 네가 이상한 것 같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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